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Sep 11. 2024

오른쪽으로 달리세요

런중일기 13. 왼쪽으로 지나갑니다

달리기 전에는 자전거를 탔다. 그때 살았던 집 근처에 따릉이 대여소가 설치되자 따릉이를 적극 애용했다. 버스 세 정류장 거리의 도서관을 갈 때에도, 한강을 보러 가고 싶을 때도 따릉이를 탔다. 속도가 빠르고 가벼운 자전거가 탐나기도 했는데, 자전거 보관이 어려운 데다가, 비싸 보이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쉽게 사고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뒤에는 자전거 구매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따릉이는 꽤 멋진 이동 수단이었다. 심지어 따릉이로 자전거 연습을 하고 제주도 3박 4일 자전거 여행을 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만의 애로사항을 알기 어려웠다. 좁은 길에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 페달을 잘못 굴리면 다칠 수 있다는 것, 밤에 까맣게 입고 타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갈림길에서는 수신호가 필요하다는 것, 내리막길은 항상 조심하고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하지만 매우 귀찮은 것, 차도에서 달릴 때는 항상 뒤에 오는 차를 유의할 것 같은 주의 사항을, 자전거를 타면서 배우게 되고, 자전거 도로를 막는 보행자가 있으면 답답해하기도 했다.


그러다 자전거에서 내려와 러너가 되면서 달리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알게 된다. 횡단보도에서는 자전거 속도를 줄여야 하지만 줄이지 않는다는 것과 맞은 편에서 오는 자전거 헤드라이트는 꽤 눈이 부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도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리려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어야 하고, 걷거나 서 있는 사람들을 피해 둘러 달리는 것도 에너지가 꽤 소모된다는 것이다. 



걷는 사람의 입장, 러너의 입장, 라이더의 입장을 모두 경험해 봐야 모두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한강길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몰라서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알고 있다면 내리막길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올 것이고,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속도를 줄일 것이다. 앞지를 때는 '지나갑니다'하고 소리 내줄 것이고, 헤드라이트는 아래를 향할 것이고, 숨이 헉헉대는 러너가 있으면 셋이 걷던 길을 한 줄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이 불편한 적이 있었다. 어느 곳은 미끄러운 곳도 있고,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다닐 때는 작은 돌부리처럼 느껴져서 팔에 힘을 주며 오가기도 했다. 그러다 양쪽 눈을 다쳐 앞이 뿌옇게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해 보니 세상에는 다양한 정도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점자 블록은 나만의 노란 지름길이 되어 주었다. 어떤 사람은 앞이 아예 안 보일 수는 있지만, 어떤 사람은 흐릿하게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 차이의 장애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아픈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더더욱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른쪽으로 걷고, 왼쪽으로 앞지르는 정도의 서로를 위한 배려 말이다.


2024년 5월 26일 월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이전 12화 윤슬과 볕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