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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Mar 15. 2020

사회적 거리 두기

Social Distancing은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소호 크로스비호텔 지하 극장

지금까지 밝혀진 코비드 19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비누로 손을 20초 이상 닦거나 알코올 함유 손소독제를 사용할 것. 그리고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를 두는 것이다. 미국 질병본부 CDC가 권장하는 사회적 거리는 6피트 이상, 약 1.8미터 이상이다. 즉 타인과 같이 있을 때 2미터 이상 떨어져서 머무르라는 말이다. 효과적인 예방책이 등장해 다행이지만, 좀 슬프게도, 이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금까지 반갑고 좋아할수록 가까이서 대화했던 인간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 예방법은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서로 거리를 두지 않는 모임에서 급격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비교적 경계 없이 모이는 곳. 대표적인 장소가 종교 기관이다. 뉴욕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맨해튼에서 업스테이트 뉴욕으로 출퇴근하던 변호사가 감염 여부를 모른 채 유대교 성전에서 열리는 예배와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면 서다. 그 뒤로 그 지역 뉴 로셀의 유대인 커뮤니티에 집단 감염이 시작되었고 그 커뮤니티와 접촉한 뒤 다른 커뮤니티로 돌아온 사람들을 통해 계속 전파가 되었다. 종교 커뮤니티는 일례일 뿐 사람들이 속한 집단은 다양하다. 회사, 학교, 가족, 동네, 취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모여 친밀감을 쌓는다. 하지만 Community transmission이라는 감염 패턴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자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등장했다. 악수도, 포옹도, 인사 키스도, 속삭임도 모두 경계 행동이다. 뉴욕에선 보통 인사를 나눌 때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데, 이제 사람들은 약간 장난을 치듯 팔꿈치를 치거나 발을 부딪히며 인사를 한다. 몸을 굽히는 한국식 인사가 오히려 대안적인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체감한 건 어제 아파트 지하 세탁실에서 빨래를 할 때였다. 언제나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앞집 할아버지와 마주쳤고 자연스레 '하이, 하와유?'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들리지도 않는 조그만 목소리로 뭐라고 한 뒤 입을 다무셨다. '혹시 거리 두기?'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할아버지 건강 관련해 이미 앰뷸런스가 오는 등 응급사태를 목격한 적이 있어 말을 아끼고 미소만 주고받은 채 헤어졌다. 건강이 안 좋은 노인들이 감염될 경우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이니 노인 분들의 불안이 이해가 간다.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인지라 앞으로 이런 상황들이 빈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끼리야 어느 정도 선을 지킬 수 있다지만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택근무를 지원하지 않는 곳이라 서로의 책상에서 묵묵히 일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무실 다음으로 내가 제일 많이 가는 곳은 극장이다. 미국의 큰 극장 체인 중 하나인 AMC의 정기 멤버십인 A-LIST를 유지하고 있어 매달 한 번 이상은 극장에 간다. 매달 25달러의 회원료를 영화도 보지 않은 채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다. 영화 팟캐스트를 하고 있고 영화 트렌드를 알아야 하는 사이드잡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극장 방문을 피하긴 힘들다. 극장 의자 간 간격은 매우 좁은 데다 극장은 밀폐된 공간에 가깝다. 극장 측도 회원들로부터 질문 이메일이 쏟아졌는지 어제 드디어 대표의 공식 발표 이메일이 도착했다. 어떤 관이든 50퍼센트의 점유율을 유지할 것이며 500명이 넘는 관은 좌석 수가 어떻든 250명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50퍼센트라면 이론상으로는 관객이 서로 한 좌석 건너 앉는다는 셈인데 사회적 거리가 유지되는 걸까? 줄자로 거리를 측정해 감염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볼 수도 없어 난감하다. <아웃브레이크> 같은 전염병 소재 영화에서 극장을 통해 감염되는 장면이 등장해 그 공포감이 더 높은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독감 시즌에도 극장에 다닥다닥 앉아 영화를 봤지만 독감에 걸린 경우가 없었는데 이번에 그렇게까지 주의해야 할까? 영화 애호가의 욕심이 어떻게든 이 감염의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아, 영화를 보고 싶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단 말이다!

사람 적었던 어느 날의 휘트니 뮤지엄

극장 다음으로 즐겨 가는 곳은 식당이다. 임대료가 세계적 순위권 안에 드는 뉴욕 (특히 맨해튼) 식당의 특징은 테이블이 아주 가까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옆 테이블 말이 들리는 건 기본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면 옆 테이블과의 비좁은 사이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지속적인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앞사람, 옆사람, 서버와 2미터를 떨어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뉴욕 식당은 상당히 왁자지껄하다. 음식을 입으로 먹고 있긴 한 건가 싶게 모두 너무도 열심히 말을 하고 있다. 이런 시끄러운 식당 분위기는 서울에서도 흔하게 경험했기에 나는 익숙해하는 편이고 좋아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런 문화의 정 반대 지점이다. 지금 당장은 식당 예약이 줄고 배달이 늘어난다. 넓고 우아한 식당이나 살아남을까. 선술집과 비슷한 작은 식당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맞이해 굿바이다.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MOMA 무료입장이 가능한 금요일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몰려와 관람객 밀도가 높아지는데 이제 이런 날은 피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공부나 일을 할 수 있는 뉴욕 공공 도서관의 브라이언트 파크 중앙 지점이나 링컨 센터 지점에서도 이용자가 2미터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사람이 편리하게 함께 이용할 수 있었던 공공 서비스 기관이 가장 바이러스에 취약한 공간으로 변모한 셈이다.

우리 충분히 떨어져 있습니까? 어느날 밤의 뉴욕 지하철

2미터를 기준으로 내가 좋아하는 뉴욕의 공간을 재고해보니 센트럴 파크같은 공원 빼고는 갈만한 곳이 없다. 당장 지하철을 타고 2미터 유지하는 것도 무리, 무리다. 결국 현실적으로 최소한이나마 경계 거리를 유지하며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서로 간에 말은 줄어들고(모르는 지하철 승객끼리도 말문 터지면 쉽게 대화를 나누곤 한다), 지하철 버스킹 문화도 사라질 것이며, 6피트가 안 되는 짧은 사회적 거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마스크를 쓰곤 하겠지. 누군가 실수로 내 몸에 접촉을 한다면 흠칫 놀라 손소독제를 마구 뿌리게 될까?

바이러스 시기의 괜한 잡상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이 감염력 높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인 구두와 접촉성 몸짓 표현을 제한하고 있어 씁쓸한 마음이다.


예전에 영어를 배우면서 미국인의 사회적 거리에 대해 주워들은 적이 있다. 아주 친밀하지 않은 타인과 1미터 정도를 유지하는 게 사회적 관습이라고 했다. 그 말을 했던 선생은 뉴욕 식의 가까운 사회적 거리가 미국의 기본 양식이 아니라서 적응이 힘들다고 말했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2미터는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사회적 거리일까? 서울에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할 때마다 타인들과 몸을 밀착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기분은 안 좋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던) 나 같은 사람은 도시의 삶은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바이러스가 지속되는 한 이 사회적 거리도 지속되고 도시의 새로운 습관이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바이러스 #뉴욕 #영화보고싶어 #돈패닉 #사회적거리 #socialdistance  

 

공원은 안전하겠죠...(봄인데 어째서 가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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