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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Mar 07. 2023

가족을 살려주는 의사 친구.

2022년, 올해의 카톡 [ 가족을 살려주는 의사 친구



1.


"친구야! 너는 무슨 과 의사니? "


 또 물어본다. 이 친구는 내일모레면 나와 인연이 30년이 되는 친구인데, 도대체 나에게 몇 번째 질문인지 모르겠다. 너무 자주 물어보아 어떤 경우에는 한 번에 알아듣기 쉽게, 내 전공이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같이 한번 들어서 잊어버리지 않을 과를 전공하였다면 친구가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친구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나는 외과 전문의란다.

외과는 주로 복부 수술을 하는 의사를 말하지. 또한 외과 의사란 환자 치료에 있어 수술적 치료를 치료의 방법으로 할 수 있는 의사를 말하지. 다시 정리하면 나는 복부를 주로 치료하는 의사이고 필요에 따라 수술도 하는 의사란다. "

"쉽게 말해 흔히 말하는 맹장염 수술, 충수돌기염 수술을 하는 의사란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한다. 나의 세부전공, 외상외과의사.


"외과 전문의도 다양한 세부 전공들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외상외과라는 것을 한단다.


외상외과라는 것이 생소하겠지만, 쉽게 말해 여기저기 많이 다친 중증외상환자들을 보는 외과의사지. 머리부터 가슴, 배, 골반 그리고 팔다리를 심하게 다친 환자를 주로 보고 치료하는 역할을 하지. 나의 원래 전공인 복부이지. 한 마디로 딱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주로 복부의 외상환자를 수술을 포함한 치료를 주로 담당하며, 그 밖에 중증외상환자들의 전반적인 것을 치료하는 외과 전문의란다."


이번에도 역시 친구는 내가 말하는 것의 절반을 이해하는 눈치다. 물론 나도 내가 하는 일을 딱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난감하지만, 그래도 친구니까 이해하였을 것이라 믿는다.






2.

  아침부터 조용하지만 느낌이 싸한 일요일이다. 조용한 일요일 당직을 했으면 하였으나, 역시나 십 년 차 외상외과 의사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외상센터 핫라인을 통해 전화가 세차게 울렸다. 한 시간여 거리의 시골 마을에서 트럭을 운전하는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중증외상이 의심된다는 전화이다. 곧 이어서 들리는 혈압을 비롯한 활력징후, 및 배도 많이 아파하고 이마에 출혈도 심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트럭, 배, 그리고 머리 역시나 책에 많이 나오는 중증외상이 발생할 수 있는 안 좋은 조합니다. 나의 전문 분야인 배에 다시 집중하며, 119 대원에게 초기 처치를 잘해서 빨리 이송을 부탁하였다. 예정 시간보다 훨씬 빨리 환자는 도착하였고, 나랑 처음 마주친 환자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정해진 순서대로 혈관 확보, 혈액검사 그리고 이어 CT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환자의 배 안이 상상이 되며, 수술실 상황을 먼저 알아봤다. 다행으로 현재 하고 있는 수술이 없어 바로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CT 검사의 소견은 내가 처음 환자 배를 만지면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다행히 이마에 심한 출혈은 있으나 뇌출혈은 없는 것은 환자에게 천만다행인 상황이다.

그다음 과정은 루틴, 정해진 대로 최대한 신속하고, 그러나 정확히 해야 한다. 금식이 안 되어 있는 응급환자 마취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다. 마취 과정에서 흡입성 폐렴의 위험성이 커서 조심해야 한다. 물론 배 안에 장이 터지고 피가 나는 상황을 빨리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다. 또한 환자 보호자를 불러 수술에 대한 위험성, 방법 등을 설명하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 서명받아야 한다. 환자의 아들과 며느리가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응급실로 와서 설명을 하고 동의서에 서명하였다.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급하여, 모든 것은 수술이 마무리된 후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고 간략히 말하고, 대신 최선을 다해 수술하겠다고 말하였다. 다행히 준비 기간 동안 환자가 잘 버텨줘서 수술실까지 크게 위험하지 않은 상황으로 들어갔다. 나의 설명을 듣는 아들과 며느리는 어느 보호자보다 더 애절하고 간절해 보였으며, 특히 며느리는 마치 딸이 어머니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3.

'카톡' 알림이 울렸다. 의대 졸업반 학생들과 한참 식사 중이었다. 그중 한 학생이 내가 하고 있는 외상외과를 관심이 많다고 말하여서 더욱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다.

삼십 년 지기 친구 문자다. 오래된 친구이기에 몸에 종기 하나라도 나면 의사 친구인 나에게 편하게 물어본다. 얼마 전에도 등에 무언가 났다고 혹시 대상포진이 아니냐고 묻는다. 이번에도 시시콜콜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내용을 보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장 파열에 얼굴 함몰 환자가 내 여동생 시어머니라네. 수술 집도가 내 친구라니... "


문자를 보고 한동안 놀람과 흥분되었으나 애써 태연히 답했다.


"내가 잘해줬다"


한참 뒤 다시 친구는 한 문장을 보냈다.


"가족을 살려주는 의사 친구가 되었구먼..."


친구가 문자 하나로 나를 감동시켰다.


친구가 의사라는 건 알았지만 지금껏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매번 설명해도 제대로 몰랐다. 이제 친구도 내가 권역외상센터에서 촌각을 다투는 중중외상환자들과 매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 하는 일을 알았을 뿐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을 치료하고 살려주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나에게 가족을 살려주는 의사 친구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카톡이 왔을 시점이 수술 후 2-3일 즈음된 시점이었다. 실은 그 카톡을 받고, 나름 신경 써야 하는 vip라는 부담이었지만, 다행히 환자, 친구 여동생의 시어머니는 그 후 과정이 잘 회복되고 건강하게 퇴원하였다.


퇴원 후 환자와 아들, 그리고 내 친구의 여동생인 며느리와 함께 외래로 왔다. 나는 그냥 태연히 진료를 보고 잘 회복하여 다행이며 차는 폐차되었으나 몸이 더 튼튼하여서 잘 회복하였다고 농담과 격려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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