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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Feb 25. 2023

크리스마스 선물 : 의사는 거들 뿐

 '환자 치료의 팔 할은 보호자 몫, 의사는 거들 뿐'



크리스마스 선물 : '환자 치료의 팔 할은 보호자 몫, 의사는 거들 뿐'




1.

“아빠, 슬의생 드라마에서 주인공 외과의사들은 모든 수술을 다 성공하고 모든 환자들을 다 살리네요. 아빠도 그렇지?” 초등학생 아들이 말한다.


순간 무슨 대답을 할지 망설여지면서


“그래, 아들아. 아빠는 모든 환자들을 다 살리지는 못하지만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단다.”

“아빠 같은 외과의사가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환자 스스로가 이겨내고, 환자 보호자 도움을 받아야지 환자가 잘 회복하고 살아난단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아들에게 지난해 크리스마스 캐럴과 쿠키 선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건장한 30대 청년이 급하게 구급차를 타고 들어왔다. 큰 사고라고 말하였으나 다행인지 골반 일부와 다리에 골절만 있었다. 중증외상 환자를 주로 보는 외상외과의사에게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환자는 아니지만 모니터 화면에 남편의 부러진 골절 사진을 보는 아내의 눈 밑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져 있다. 응급실에서 검사와 처치 후 병실로 입원을 기다리고 있던 중 환자 의식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머리 손상도 없었고 머리 CT 상에서도 이상이 없는 상황에 너무 당황스럽고 이상하였다. 책에 아주 구석에 조그만 글씨로 쓰여 있는 골절로 인한 합병증인 뇌 지방색전이 발생한 것이다. 골절 부위에서 떨어져 나간 지방 방울이 폐나 말초부위 혈관을 막아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지방색전증이라고 한다. 그중 뇌에 발생한 뇌 지방색전증은 아주 드물고 아직 정립된 치료법도 없는 희귀한 합병증인 것이다. 쉽게 말해 골절로서 발생한 합병증으로 뇌 지방색전증은 너무나도 드물고 한번 발생하면 발생한 환자나 받아들이는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까지 암담할 수밖에 없다.






2.

암담함이 앞을 가리고 있더라고 치료를 막을 수 없다. 아니 치료를 하는 것이 의료진의 의무이자 해야 할 것이다. 의식 회복을 위한 치료, 골절에 대한 치료도 해야 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이어간다. 하지만 뇌의 여러 혈관을 막아버린 지방 덩어리는 안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의식, 계속 반복되고 심해지는 경련이 반복되었다.


가족들의 간절함과 스스로 이겨내려는 환자의 의지, 더해서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환자는 아주 조금씩 회복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골절 수술도 무사히 마쳤지만 의식도 회복하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숨을 쉬고 있다. 하루 몇 분간의 면회시간에 가족이 와서 손을 잡고 불러보아도 환자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내는 핸드폰에 녹음해온 네 살 딸의 캐럴을 환자에게 들려주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누워 의식을 회복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빠에게 들려주는 꾀꼬리 같은 딸아이의 캐럴송이다. 딸아이 캐럴을 들려주어도 환자는 전혀 반응이 없다. 집에 있으면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사랑 듬뿍 주는 딸아이인데,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 캐럴 노래는 흘러나오지만 반응 없는 환자를 바라보는 보호자, 의료진 모두 살짝 눈물이 맺혔다.







3.

크리스마스이브.

누구나 다 들떠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시간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짧은 면회시간에 조금이라도 남편을 오랫동안 보기 위해 부인을 뛰어서 중환자실로 뛰어들어왔다. 매번 짧은 시간에 남편 손을 잡고 'OOO! ' 'OOO 아빠! '하루 있었던 일, 딸아이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슬그머니 종이가방을 하나 중환자실에 놓고 간다. 안에는 의료진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쿠키가 가득 들어있다. 직접 만든 쿠키를 하나하나 정성껏 봉지에 싸서 스티커가 붙어 있다.


‘남편의 힘든 시간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OOO 보호자 올림‘ 가방 가득 담긴 쿠키 봉지 모든 것에 하나하나 직접 쓴 글씨가 쓰여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한 크리스마스를 중환자실에 계속 있어야 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썼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였다. 남편의 힘든 시간이란 글자에는 펜이 더 꾹 눌려 쓰여 보인다.


가족의 간절한 바람. 딸아이의 캐럴, 쿠키를 보고 먹은 의료진의 노력. 모두의 힘이 합해져서 환자는 조금씩 호전되었다.


해가 지나 환자는 회복하여 일반 병실로 옮기고 점차 재활치료도 열심히 받고 더 회복하였다.



ps. 두해 전 12월,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다.

이 환자, 그리고 가족은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더 많이 회복되고 좋아져서 사랑하는 가족 모두 함께하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조용히 오늘도 혼잣말을 해본다.


'환자 치료의 팔 할은 보호자 몫, 의사는 거들 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

'왼손은 거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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