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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Apr 07. 2023

큰어머니 배를 가르다.

메스 주세요!



큰어머니 배를 가르다.


갓 4년 된 의사 사촌동생에게 엄마를 맡기다.



엄마가 아프시다.

아마도 내가 어린 시절부터 몰래 속앓이를 해오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몇십 년을 참고 참다 팔순을 얼마 앞둔 얼마 전 검사를 하고 나니 간에 담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방 소도시에서 어디 큰 병원에 가서 더 정밀 진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암담하였다. 잘은 모르지만 간을 수술할지 모르고 곧 팔순이 되는 엄마가 간 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버티실지가 걱정이었다. 순간 생각이 났다. 조카가 어디 대학병원에 외과 레지던트로 근무 중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부랴부랴 검사 결과지를 챙겨 사촌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정확히 14년 전 이야기다.

당시 외과 전공의 4년 차였던 나를 믿고 큰어머니가 내가 있는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고 팔순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간절제수술을 하셨다.





" 메스! "   vs   "메스 주세요..."


 

사촌 형의 오랜만의 전화이다.


 서로 아주 친해 안부전화를 자주 하는 사이가 아니기에 나에게 친척들이 전화가 오면 대부분 누군가가 아픈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의 전화도 역시 큰어머니, 사촌 형의 어머니의 건강에 관련된 이야기다. 이미 오래전 나의 손에 배를 맡긴 큰어머니이기에, 자연스레 나는 큰어머니의 주치의가 된 것이다. 다행히 아주 큰 건강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큰어머니의 배를 생각하면 나는 가끔 십여 년 전 가슴 쓸어내리던 추억에 잠겨본다.


 흔히들 VIP 신드롬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느 분야든지,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가족이던지 지인들의 처치, 대우에 있어서 오히려 더 신경을 쓰는 경우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나, 상황들이 더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메스를 든 외과의사에게는 VIP 신드롬, 가족의 몸에 메스를 가져간다는 것은 아마도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황이 것이다.

  





‘메스’

외과의사가 수술을 시작하는 말이다.


마취과 선생님이 모든 마취를 완료한 후 환자의 수술 부위의 소독이 끝나고 수술 부위를 중심으로 소독포를 주위로 덮은 후 정식 수술이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년 전.


외과 치프(4년 차)였던 나는 교수님이 들어오기 전에 수술 준비를 하고 수술의 시작을 알리는 메스를 들고 수술 부위인 복부를 개복을 하는 것이 보통 수술의 시작이었다.


그날은 나의 말은 ‘메스’라는 짧고 힘 있는 단어가 아닌


‘ 메스 주세요 ’

라는 말이 입으로 나왔다.


바로 내가 손에 잡은 메스로 배를 가르는 환자는 나의 큰어머니이기에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걱정 가득한 치프의 목소리였다.


 당시 나의 시골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시는 큰어머니의 간좌엽절제 수술의 시작이었다. 당시 큰어머니께서는 수십 년간 앓고 참아오시던, 간내 담석으로 인한 반복적인 담관염의 반복으로 늦게나마 나에게까지 알게 되어 조카가 외과 치프로 있는 병원의 수술대에 오르신 것이었다.




[ 간내 담석, 담관염

 : 흔히들 담석이라고 하면 담낭, 즉 쓸개의 담석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간 안의 담도에 있는 경우를 간내 담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간내 담석은 담관 안에서 문제를 일으켜 단순한 경우 소화불량이나 고열이 자주 발생하고 심한 경우 황달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만일 더 심한 증상을 만든다면 담관염이나, 간농양, 심한 경우 패혈증까지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치료는 약물만으로 간내 담석을 해결하기는 힘들고 간절제 수술을 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


 외과 치프였던 나는 건네받은 메스로 큰어머니의 배를 가르기 시작하였다. 수십 년간 고통을 안겨주었던 간내 담석을 없애버리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간내 담석은 담석만을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큰어머니께서는 이미 수십 년간 앓아온 담석으로 인한 담관염으로 좌측 간이 위축되고 간내 담관이 크게 확장되어 있는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 개복을 한 후에는 간절제를 위한 간주위 구조물을 일부 박리하는 과정을 거친 후 본격적인 간절제가 시작이 된다. 나의 손으로 큰어머니의 배를 개복한 후 간 주위 구조물을 순차적으로 박리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집도의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나는 속으로 ‘휴~ 다행이다’를 말하며 교수님과 함께 이제는 수술의 제1 조수로서 본격적인 수술을 시작을 하였다. 교수님과 함께 큰어머니 배 안의 간 주위 구조물을 조금 박리 후 본격적인 간절제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큰 문제가 발생을 하였다. 바로 수술 부위를 집중적으로 비추는 수술실 무영등의 고장이다. 정말 몇 년에 한 번 일어날까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배 안처럼 깊숙한 부위이며 여러 명의 머리를 맞대고 하는 수술이기에 밝은 빛은 필수이다. 무영등은 없지만 모두 다 마음의 눈을 더 크고 밝게 뜨고 수술을 계속하였다. 역시나 어둠은 수술의 진행을 자꾸만 더기에 하기에, 급하게 임시 이동형 무영등을 가지고 비추면서 꾸역꾸역 수술을 진행했다.

  

 처음 개복의 순간부터 너무나 긴장을 한, 외과 치프인 나는 집도의 교수님으로 잠시 한숨을 돌렸으나 무영등의 고장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새 하야 졌던 머리는 이내 곳 제정신을 차리고 수술을 집중하였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큰어머니를 고생시켰던 간내 담석은 염증을 수없이 반복하여 간좌엽을 아예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수많은 돌을 품은 간좌엽이 무사히 잘라져 나오는 순간 내 안의 마음도 이제 평온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간절단면의 지혈이다. 교수님은 간 지혈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후 나에게 말씀하였다.


‘ 큰어머니 배 잘 닫아드려라 ’ 그러면서 수술방을 유유히 떠나셨다.


 그렇다. 이제 남은 과정은 치프인 나의 몫이다. 지금 다시 되돌리면 처음 메스로 배를 여는 순간보다 마지막을 내가 해야 하는 순간이 더 긴장이 되었다. 간절제면을 다시 한번 지혈이 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배안 전체적인 것을 마무리하고 복벽을 닫는 마지막 수술 과정을 진행하였다. 복벽의 한층 한 층을 정성스럽게 닫아주고 수술을 마무리하였다. 이후 큰 무리 없이 큰어머니는 잘 회복을 하셨고 시골 고향으로 잘 내려가셔서 지금도 잘 지내시고 계신다.





‘ 속 많이 아프지? 많이 아플 때는 저기 담배라도 피우거라... ‘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께서 수십 년을 속앓이를 하는 큰며느리에게 보다 못해 고통을 참기 위한 방법으로 담배를 가르쳐주며(?) 하신 말씀이다. 나중에 큰어머니는 나에게 담배 이야기와 더불어 할아버지께서는 어디서 구했는지 아편(?)이라는 것도 구해다 주셨다는 말을 한다.


 큰어머니와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족사를 좀 이야기하려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배 안에서 간이 수없는 염증을 반복하여 쪼그라드는 동안 가까스로 담배로 버텨 온 큰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구 남매를 두셨다. 아주 갓난아기를 한 분 하늘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정확히는 십 남매를 가진 대가족이 될 수도 있었다. 아버지 형제 분들의 나이는 나는 정확히는 모르나, 확실한 것은 나의 가장 막내 작은아버지와 큰어머니의 큰딸, 나에게는 가장 큰 사촌누나가 동갑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막내 작은아버지는 막내 고모와 쌍둥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할머니와 큰며느리는 그 옛날 같은 시기 즘에 산모, 출산, 육아를 하였다는 것이 상상이 된다. 그 옛날 어디 분유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기에 쌍둥이를 낳은 할머니의 젖이 모자라서 큰어머니의 젖을 막내 작은아버지에게 물렸다는 나에게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 조카,  네가 배 수술 안 했으면 진작에 죽었을 텐데...

지금도 밥은 잘 먹고 소화도 잘 된다.

이제 허리 아픈 것 좀 고쳐주라. ‘


 지난 명절에 큰어머니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큰어머니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신다. 똑같은 멘트가 이미 사오 년째 같은 반복을 보인다. 내후년이면 아흔을 바라보는 큰어머니이다.

딱 14년 전 팔순을 바라보는 환자인 큰어머니의 수술은 나에게 의사 생활의 가장 큰 부담이자 보람이 아닐 수가 없다. 지금은 구순을 훌쩍 넘기셨고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내신다.

  


나는 속으로 이야기한다.


‘ 사람은 밥 힘으로 사시는 것이에요.

그렇게 수십 년간 속을 아프게 하였던 것이 없으니 밥도 잘 드시고 너무 좋지 않으세요?


제가 주로 보는 과가 다른 쪽이라서 허리 쪽은 잘 모르지만,

밥 잘 드시면 허리도 나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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