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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Aug 25. 2023

손 떨면서 봉합하다

'학생, 손 안 떨어도 돼!  편하게 하세요!'



손 떨면서 봉합하다




1.

'학생, 손 안 떨어도 돼!  편하게 하세요!'

 

 수술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를 가운데 두고 집도의, 보조의사 그리고 의대학생이 있다. 운전자 교통사고로 배가 극심하게 아프고 혈압이 떨어지는 환자가 왔다. 뱃속에 2리터 가까운 피가 났으나 신속한 수술로 출혈 부위를 잡고 환자는 큰 고비를 넘겼다. 수술은 이제 마무리 단계다. 아직 정식 의사 면허가 없지만 의대생은 병원실습에 학생으로 수술에 참여한다. 아직 배우는 의대생 신분이기에 실상은 수술에서 간단한 기구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긴장하고 집중 정도는 수술실안에 가장 최고일 것이다.

 


혈압이 뚝뚝 떨어지는 환자 복부 정중앙을 개복한 후 뱃속 출혈 부위를 잡고 이제 다시 단단히 복벽을 층층이 봉합한다. 수술이 잘 마무리되면서 처음에 긴장했던 수술실 안 분위기도 안정화되고 있다.

 

마지막 피부 봉합을 학생에게 기회를 주었다.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대여섯 배 시간이 더 걸리지만 그래도 학생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물론 학생은 이전에 학교에서 피부 모형에 여러 번 봉합하는 실습을 배우고 온 상태였다. 그러나 모형이 아닌 실제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에 직접 봉합한다는 사실에 내가 건넨 니들 홀더를 잡는 순간부터 손을 떨기 시작하였다.

 

마치 프로야구 첫 데뷔 전에서 볼을 남발하는 신인 선수를 보는 것 같았다. 땀을 삐질 흘리며 어떻게든 포수 미트 한가운데 공을 집어넣으려 하였지만 자꾸 볼만 거듭 집어넣는 상황과 흡사하였다. 투수는 볼을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에 넣어야 하고 니들홀더를 잡은 손은 정확히 피부를 맞춰 봉합해야 한다.

 

 


생각보다 사람 피부는 질기다. 특히 복부 피부는 굵은 바늘을 사용해 봉합하더라도 순간 힘을 세게 주어야 날카로운 바늘이 피부를 통과한다. 봉합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즉 피부 봉합 부위를 무균적으로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고, 피부끼리 정확히 맞추고, 피부에 걸리는 장력을 최소화, 피하조직 노출 최소화시켜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100% 모든 봉합에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환자는 한두 시간 전에 복부 안쪽 출혈 부위를 잡는 수술을 위해 일부러 날카로운 메스로 피부를 절개창을 만들었다. 이미 깨끗하게 만들어진 피부 절개 부위를 다시 맞추는 과정이기에 조금은 수월한 봉합이 된다. 한 가지 더 다행인 점은 내가 이미 위, 아래 두 부위를 봉합해 놓아서 양측 피부가 잘 맞춰진 상태이다.

 

 버티컬 매트리스란 피부 봉합 방법을 통해 이 환자의 마지막 피부를 봉합한다. 그러기 위해 바늘이 총 네 번 피부를 뚫어야 한다. 처음 외부에서 피부를 뚫고 피하층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반대로 피하층에서 피부 밖으로 나간다.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 후 마지막으로 봉합사 매듭을 만든다.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 기구를 사용해 바늘이 피부를 뚫는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이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다.

 

나는 이십 년 가까이 니들홀더를 손에 잡고 푸는 것을 수없이 했기에 자연스럽다. 불을 끄고 떡을 써는 한석봉 어머니처럼은 어둠 속에서 봉합을 못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고 정확히 봉합을 하는데 자신이 있다. 내 앞에 있는 의대생은 처음 하는 피부 봉합이기에 손뿐 아니라 심장도 콩닥콩닥 뛰는 상황일 것이 분명하다.


니들 홀더를 잡은 학생의 손이 떨고 있다.


 결국 학생 손 위로 내 손을 겹쳐서 니들 홀더를 잡아주고 네 번에 걸쳐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것을 하였다. 마지막 매듭까지 마무리한 후 가지런히 봉합된 피부를 보았다. 동시에 학생 이마에 송골송골 맺은 땀과 안도의 한숨 소리가 살짝 들렸다.

  


 

[ 니들 홀더  needle holder : 수술 과정에서 실과 연결된 바늘을 꽉 잡아 주어 봉합하는데 사용하는 기구를 말한다. 한쪽 끝은 바늘을 물어주는 부위가 있으면 반대쪽은 손잡이 부분이 된다 ]

 





 


2.

 내가 한 첫 봉합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처음 환자 동맥혈 채혈 순간은 또렷이 기억난다. 동맥혈 천자는 환자 손목 외측에 깊숙이 있는 요골 동맥에 주삿바늘을 찔러 동맥혈을 채혈하는 일이다. 동맥혈 가스 분석을 통해 환자의 산소 상태, 산-염기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술이다. 피부, 피하층 한참 아래에 있는 동맥은 작기도 하지만 정맥과 다르게 실제 눈에 보이는 혈관이 아니다. 한쪽 손가락을 이용해 동맥을 촉지하고 반대 손에 쥔 주삿바늘을 깊숙이 동맥을 찔러야 한다.

우선은 이론적인 학습을 하고 실제 학생끼리 실습을 한다. 친구끼리 서로의 손목을 내어주며 환자의 고통을 느껴봄과 동시에 시술을 미리 습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역시나 초보자들이 쥔 주삿바늘은 더 아프고 혈관을 여기저기 피해만 간다. 그래도 착한 동기 친구는 한 번 더 손목을 나를 위해 내주어 동맥혈이 송골 맺히는 성공의 맛을 나에게 선물해 준다.

 

 내가 의사면허를 취득하기 1년 전, 마지막 병원 실습을 하는 과정이었다. 이 동맥혈 채혈을 도무지 실제 환자에게 성공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우울해하는 나와 친구. 그때 해성과 같이 나타난 모 치프 선생님. 치프 선생님이란 레지던트 중 최고 연차 선생님으로 곧 전문의가 될 전공의 선생님이다. 실제 하는 일의 양이나 능력은 치프 선생님이 병원 내 해당과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나와 친구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 치프 선생님은 해성과 같이 나타나서 실제 환자에게서 동맥혈 채혈의 기회를 주셨다. 기회뿐 아니라 이전에 동맥혈 채혈에 대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주셨다. 친구와 나는 한 번의 바늘 침투로 동맥혈 채혈을 성공하고 서로 기뻐 환호하였다. 그 환자는 의대생인 내가 바늘을 찔렀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다만 그 순간의 기쁨과 강렬한 기억은 지금의 내가, 외상외과의사가 된 커다란 밑거름이 분명하다.

 





 

3.

 명품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스승을 통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을 거친다. 그래야 어디에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가 된다.

 의대생은 6년간 수업, 병원 실습 그리고 국가고시를 거쳐야 의사면허를 부여받는다. 최근 실상은 의과대학이 단순 의사면허만을 위한 학원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도제식 교육과 실제 먼저 그 길을 통해 거쳐간 선배 의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중요하다.


의료법에 의대생은 병원실습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전공분야 실습에서 지도교수의 지도, 감독을 받는 의료행위는 허용된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누구나 다 경험 많고 나같이 경력 20년 차 외과전문의에게 수술을 받기를 원할 것이다. 20년 차 외과전문의는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은 절대 아니다. 20여 년 전 동맥혈 채혈을 성공했다는 그 황홀하고 강렬한 기억, 외과 전공의 시절 처음으로 맹장수술, 충수돌기절제수술을 집도하였던 순간, 경험들이 모여서 된 것이다.


그날 수술에 함께 참여한 의대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흔하지 않은 실습 경험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에 참여한 순간을 잊지 않고 명심하겠습니다.
 많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 의대생이 의사로서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나 혼자 생각한다.

'이십 년 전 그 치프선생님께서 나에게 준 감동을 이렇게 베풀면 되는 것이겠지?'


'이렇게 감동(?)을 주어도 이 학생은 나중에 외상외과는 안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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