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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Sep 28. 2024

토요일 아침 국밥 그리고 스벅



토요일 아침 국밥 그리고 스벅


 1. 


 괴롭게 잠을 깬다.

괴롭다는 것은 악몽과 함께 밤을 보냈다는 다른 말이다. 



혼돈스럽다.

눈을 뜨려고 십여 분 고민한다. 혼돈스러운 머릿속에서 아마도 어제저녁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이 진 것도 영향이 있다. 하지만 축구는 아주 일부이고 실제는 환자 때문이다. 병원에 있는 환자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악몽, 괴로움이 반복이다.

이 생활, 환자를 보는 것이 20년 넘었지만 언제나 환자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은 내 몸, 마음을 더 헛헛하게 한다. 물론 이 헛헛함은 고민과 괴롭던 환자가 좋아지면 어느 순간 한 번에 없어져 버린다.



눈을 떠도 창밖은 깜깜하다.

추분이 지났다는 것은 눈을 떠서 창밖의 어둑함으로 정확히 알 수 있다. 순간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토요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오늘 근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어디로 훌쩍 떠나도 되고, 느지막이 점심까지 늦잠을 퍼질러자도 되는 시간이다. 물론 그런 것이 필요하다. 나도 사람이고 쉬어야 하기에. 한 달에 평균 여덟 번 있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중에서 나는 적어도 절반은 완연한 주말을 즐기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운명이다.



혼란스럽다.

머릿속에선, 눈을 감으면 모니터 화면, 환자 혈액검사와 흉부 사진들이 겹쳐 보인다. 버텨내는 순간이 계속된다. 얼마 전부터 내 입안이 따끔함이 자주 느껴진다. 입안이 헐었는지, 몸 안 어디가 고장 나서 입안에 증상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마음의 헛헛함이 입안으로 전달됨이 아닌가 하다.




 2.


 집을 나선다.

아직 어둠이 햇살보다 더 많아 보인다. 

토요일 아침 시작은 모두가 더 느리기 때문에 햇살도 더 느려 보인다. 



방향은 병원과 반대 방향으로 나선다.

병원 출근은 주로 걸어서 가지만 오늘은 차를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 나선다. 차 시동은 거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기름은 절반 이상으로 차있는 계기판이 보인다. 하지만 내 머릿속, 뱃속 에너지와 마음은 이미 바닥을 향해 기어가고 있다. 



배가 출출하다. 우선 내 배를 채워야 한다.

운전대 방향을 정확히 잘 잡았다. 6시 35분에 나서서 문을 여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역시 오늘도 내가 가는 순대 국밥집으로 자연스럽게 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절반은 국밥보다 초록병을 꼭 쥐고 연신 잔을 따른다. 아침 해장술인지, 새벽, 아침까지 이어지는 음주인지 모르지만, 국밥에 딱 맞는 초록병은 맞다.

순간 나도 국밥 하나, 그리고 이슬 하나 주세요 말할 뻔하였다.

이슬을 빼고 국밥 하나를 주문하고, 주문과 동시에 딱 1분 만에 나오는 국밥을 허걱지겁 먹었다. 역시, 언제 와도 이곳 국밥집은 내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국밥 안에 들어있는 순대, 내장, 그리고 뜨끈한 국물이 뱃속뿐 아니라 머리, 마음까지 조금 채워주면 좋으련만, 아쉽지만 머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밥을 먹었으니 이제 디저트다.

토요일 아침, 2층 스벅을 잠시 전세 내었다.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지만, 경첩의사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 혼자만 생각이다.

호젓한 공간, 그리고 적당한 시원함과 잔잔한 재즈 음악도 나온다. 글쓰기에 완성맞춤 공간이다. 노트북을 켜는 순간 아차 싶었다. 배터리가 바닥이어서 꺼지기 직전이다. 바닥으로 시선을 두리 번 하여, 간신히 콘센트를 찾았다. 휴.



국밥으로 탄수화물과 적당한 동물성 기름으로 내 위장 안을 채우고 기름칠하였다. 그 탄수화물이 소화, 흡수되어 머리도 전달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카페인이 필요할 차례이다. 뜨끈한 카페인이 한 번 더 위장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더 빨리 퍼져나간다.

완벽하다.

힘도 나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두어 시간 전 괴롭게 잠을 깨던 시간에서 이제는 조금 나아지고 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마디에도 힘이 들어가고 머릿속도 함께 힘이 나고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다. 휴. 동시에 노트북 배터리도 한자리 숫자에서 두 자리로 올라가고 있다. 





 3.


 결국 시간은 지나간다.

절대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진리다. 




모두를 무섭고 긴장하고, 나라,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였던 코로나도 언제 그 시절이 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동시에 나도 나이를 먹게 된다. 

30대 체력은 너무 그립고 언제 그런 시간이 다시는 못 온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그리운 30대 체력을 걱정할 것보다 이제는 얼마나 더 떨어질 50대 체력이 더 걱정이다. 여기서 내 신체적, 정신적 나이 모두 멈춰버리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에.

잠시 탄수화물, 동물성 기름 그리고 카페인으로 머릿속 혼란스러움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였지만, 다시 혼란스럽다. 두 시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내 몸도 버티고 마음도 함께 버텨내야 한다. 

그 시간을 버텨내고, 이겨내야지 살아나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다시금, 조만간 또 올지 모르지만 이곳에 올 예정이다.

마음이 헛헛하고 탄수화물과 카페인이 동시에 필요한 순간, 그때에.



버티면서 살아야 한다.

나도, 나 자신도, 그리고 물론 환자도 함께 버텨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나간다. 

살아서 밝은 세상으로 나간다. 


꼭,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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