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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Aug 22. 2021

퇴사자의 세기말스러운

포토에세이 zoo is noT enOUGH #7 스와콥문트


한 막의 끝에는 여운도 좀 있고 예고도 있어야 다음 막이 기다려진다. 마음과 몸을 추스리기에도 바빴던 나는 뭘 따지고 잴 여력도 없이 마구잡이로 막을 내려버렸다. 그래서인지 다음을 기다리기는커녕 갑자기 찾아온 막간에 어안이 벙벙했다. 4년을 넘게 이었던 막을 끝내고 마음속 흙먼지가 가라앉자, 막간 동안 숨어있던 현실의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괴로운 속박을 벗어 자유를 얻었다는 흥분이 잦아들고 나면 새로운 익숙함이 자리를 잡는다. 말하자면 원 없이 즐기는 자유가 새로운 일상의 자리를 꿰차는 거였다. 익숙해진다는 건 신경안정제처럼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는 의미였다. 차분해서 나쁠 건 없지만 문제는 비어 가는 곳간이 현실적으로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가는 거라 배웠지만 스쳐갈 월급도 없을 때는 아예 다른 위기감이 찾아왔다. 과자 한 봉지를 사더라도 과연 내가 이것을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인가, 거짓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여러 번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은행금리를 1퍼센트라 치면 수십억 원이 통장에 현금으로 예치돼 있을 때 월급만큼의 이자가 매달 나온다. 이걸 생각하면 퇴사와 동시에 수십억 원의 현금이 날아간 셈이니 한 푼에도 손이 떨릴 수밖에.


금요일을 환장하고 불태우는 이유는 월요일에 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하면서 불금을 즐기는 이유였다. 일정하게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안정감을 주는 거였다. 게다가 생산적 활동을 하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데서 느껴지는 소속감은, 톱니바퀴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회사의 부속품이라 불평을 쏟아내게 하더라도,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상기시키고 자기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매일이 불월불화불수불목 같아서 불금의 희소성이 사라지면 그 자리를 공허함이 메꾸게 된다.  가고 싶은데도 없지만 오라는 곳도 없을 때 느껴지는 잉여스러움과 외로움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새로운 시작을 그려보는 순간에는 온갖 즐거운 상상을 펼칠 수 있다. 몇 시간씩 유튜브로 봐도 지겹지 않은 비행기 칵핏에 앉은 파일럿을 그려보았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동물에 둘러싸인 동물원 사육사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상상에 현실적으로 다가서면 1억 원이 넘는 기회비용이나, 취업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나이까지 걸림돌이 되는 실제적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즐거운 상상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결국은 지난 이력서를 만지작 거리며 그간 만들어낸 행적을 따라 뭘 할 수 있을지 타협하게 되는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에서 잠깐 고백하자면 아프리카의 국가도 몰랐던 무지함에 이어 혼자 있어도 얼굴이 화끈 거리는 두 번째 사건이 있었는데, 서점에 예쁜 손글씨로 쓰인 자기 계발 코너의 안내판을 보고 맞춤법 실수로 자기 개발을 잘못 써 놓은 줄 알았던 것이었다. 서점씩에서나 일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모른다며 바보 같다고 키득거리기까지 했다. 지가 세상 똥 멍청이인 줄도 모르고. 어쨌든 이걸 '개기'로 계발서와 사이가 점점 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좀처럼 자기 계발서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만약 지혜롭게 퇴사하는 방법이라든지 무작정 퇴사가 빚어내는 감정의 변화를 계발서를 통해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렇더라도 그때의 선택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다. 차라리 지금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차피 또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될 거 한 번이라도 더 놀 궁리를 찾지 않았을까.


막간을 이용해 떠나게 된 아프리카 여행, 반쯤의 흥분과 익숙함이 공존하던 시기. 이번 편에는 스피치코프 Spizkoppe '뾰족 솟은 돔'으로 가기 전, 하룻밤 머문 스와콥문트 Swakopmund로 가는 풍경을 담았다. 스산한 날씨와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느껴지는 세기말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침낭을 개고 배낭을 싸고 텐트를 접었다. 아직 챙겨야 할 빨래가 남아 있고 치워야 할 쓰레기가 남아 있었다. 캠핑사이트를 둘러싼 돌 담에 넣어놓은 속옷을 가지러 모래 바닥을 휘휘 저으며 다가갔다. 떨어진 물건이 모래에 파묻힐 수 있어서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후욱~'

급한 바람이 불었다. 모래 바닥으로 빤스를 내동댕이쳤다. 모래가 서걱거리는 속옷을 입는 건 생각만 해도 찝찝했다. 신속히 달려가 빤스를 소중하게 집어 들고 급한 손짓으로 모래를 털어냈다. 사막 태양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는지 어느새 바싹 말라 있어 찝찝한 상상이 펄럭 펄럭 털려 나왔다. 남은 짐들을 깡통 같은 차에 구깃구깃 집어넣었다. 캠핑 사이트에 머물러 있던 자취들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직장인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회사의 중책이 맡은 사람처럼 갖중압감에 눌려 아등바등거렸다. 결국 지금은 신기루처럼 흩어질 일이었는데 말이다. 덜 힘들어하고, 날 더 위하고, 좀 더 적당히 해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와콥문트로 향하는 흙 길 위에 차를 얹어 속도를 높였다. 돌멩이가 팝콘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사막의 풍경은 순간 낯선 모습으로 변해있다. 빗금무늬가 새겨진 울룩불룩한 지형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곳 구석구석 파고 들어갔다.


체지방 한 자릿수의 보디빌더처럼 우람한 빗금무늬의 근육을 연상시키는 지형들이 나타났다. 산도 아니고 땅도 아닌 이상한 지형에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드려다 보았다. 수천 개의 지층이 겹겹이 쌓인 바위가 기괴하게 뒤틀어져 생긴 협곡이었다. 가로 세로는 말할 것도 없고 온갖 다양한 각도로 구부러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넓은 지형 모두가 퇴적층이라는 뜻일 텐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쌓여야 이렇게 될 수 있는지 쉽게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악착같이 꽁무니를 쫓아오던 이무기 같은 흙먼지를 쫓아내고 났더니 탁 트인 풍경이 품으로 달려왔다. 황금 들녘이 눈동자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농사할 수 있을 만큼 비옥해 보이는 땅은 아니었다. 듬성듬성 솟아 있는 나무는 축소판 모델 하우스의 모형에 꽂힌 나무처럼 작게 느껴졌다.


데피니션이 훌륭한 근육 같은 지형
안 비옥해 보이는 황금 광야를 향해 도로가 뻗어있다.



떠돌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습기를 잔뜩 머금은 회색 구름이 위협적으로 낮게 깔리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오늘 묵을 거처를 찾아야 했다. 아직까지 생각해 놓은 숙소가 없어 마음이 급해졌다. 허술한 틈새로 빛이 내려오는 걸로 보아 해가 간신히 걸려 있다는 걸 가늠할 수 있었다. 곧 어두워질 터였다. 모래 위에는 높다란 전신주들이 기다란 전선을 울러 매고 흐느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스와콥문트로 향하는 가속페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여기 사람 사는 곳은 맞니?"

"그러게.. 어찌 이렇게 한명도 안보이냐.."

"너무 으스스하다"

"오늘 잘 곳도 아직 못정했는데 큰일이다"


우리는 스와콥문트의 으스스한 분위기에 몸서리쳤다. 미드 워킹데드 세트장 같았다. 광대뼈가 반쯤은 드러난 좀비가 쏟아지는 내장을 질질 끌며 어슬렁거릴 법한 분위기였다. 잿빛 구름은 곧 비까지 쏟아부을 기세로 연신 차끈한 바람을 휘날리고 있었다. 인적이 없는 길 위에서 자전거를 탄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검푸레한 저녁은 아이의 페달질을 어디론가 재촉하고 있었다. 간간이 불이 켜진 집들이 보이긴 했지만 사람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북적이던 휴가철을 놓쳐버린 해변가 마을의 쓸쓸함이 묻어났다. 이런 곳에서 숙소를 찾을 수 있긴 할까, 걱정이 밀려왔다.


지도 위에 표시된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형편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았지만 적당한 곳을 찾아 드디어 게스트 하우스의 철문 너머로 몸을 숨겼다. 문 안쪽은 바깥의 을씨년스러운 세상과는 다른 차원이 펼쳐졌다.  안락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커다란 집을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주인 할머니는 무척 친절하고 따뜻했다. 부엌에는 이미 저녁 준비를 마친 노부부 여행자가 앉아 계셨다.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는데 아직도 다정하게 여행을 즐기시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의 풍랑을 함께 겪은 후 즐기는 여정이라니 낭만적이었다. 거실에는 노트북으로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사이좋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콧잔등에 빗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세기말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최애 사진 중 하나


아침 햇살을 받은 게스트 하우스는 밤에 본 것보다 더 예뻤다. 빗방울이 맺힌 텐트들이 마당 구석구석 자리 잡은 게 보였다. 안전한 울타리만 빌린 알뜰족들인 셈이었다. 어젯밤에 못 본 1인용 텐트도 울타리 밑에 있었는데, 우리보다 더 늦게 도착한 사람인 것 같다. 스피치코프로 떠날 채비를 하는 와중에 누가 있을까 궁금해 수시로 곁눈질을 했다. 한참 뒤에 텐트가 꾸물꾸물하더니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조그마한 체구의 20대 중반의 백인 여자였다. 밤새 추위를 피하기 위해 꽁꽁 여민 외투와 산발이 되어 버린 머리가 꽤 초췌해 보였다. 그럼에도 초췌함을 무색하게 만드는 빛나는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향해 여정을 떠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의 끝에는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하고 빌어주었다. 이 여행의 끝에는 나도 빛나는 눈빛을 머금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밤새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목적지 스피치코프로 향할 준비를 했다. 가는 길에 짬을 내서 물개 서식지 케이프 크로스 cape cross에 들르기로 했다. 피크닉을 할 요량으로 고추장을 뿌린 샌드위치도 준비했다. 고추장의 풍미와 고향의 감성이 어우러진 훌륭한 조합이다.


그러고 보니 남아공 워터프런트에서는 고도비만 물개 한 마리를 먹일 고깃값을 안 준다고 따가운 눈총을 쏜 아저씨가 있었는데. 써늘한 날씨이긴 했지만 기대를 품고 다시 길 위에 차를 얹었다. 계속.






듄 7을 둘러싼 여행자들의 트럭 위로 루프탑 텐트가 있다
듄 7 전경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바다 위 하늘이 을씨년스럽다.
인적 드문 마을에서 느껴지는 미드 the walking dead 기억
밤은 유난히 더 어두운 것 같았다.
포근했던 게스트 하우스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zoo is noT 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터프(tough)리카 아프리카'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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