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예 May 19. 2023

명예를 회복하길 원하는 당신에게, 쿠크다스

쿠크다스 멘탈은 이제 그만

어릴 때부터 고급 취향, 고급 입맛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고르기만 하면 비싼 걸 고르는 바람에 그랬다. 이상하게 고르면 고를수록 더 비싼 걸 고르게 됐다. 안목이 성장했던 것 같다. 아무튼 ‘고급’이란 말을 듣는 게 좋았다. 내 마음에 드는 것과 좋은 것이 동일하다는 게 좋았다.


과자에도 내 기준에 고급레벨이 있었다. 고급과자의 특징 중 하나는 작고 비싸다는 거였다. 대체로 개별 포장이 되어있다는 점도 고급과자다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과자들이 봉지나 빈약한 플라스틱 깍에 빈틈없이 끼어있을 때 고급과자는 자기만의 비닐을 갖고 있었다. 파손 방지를 위해서 비닐 안을 널찍하게 쓸 순 없었지만 자기만의 방이 있는 셈이었다. 이런 과자들은 과자류, 파이류보다 쿠키류가 많았다. 기성과자 중에서 쿠키라고 이름 붙는 것들은 초코칩 쿠키 같은 오리지널에 가까운 맛이거나,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과자 중 한 종류를 기성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 중 고급 쿠키는 많지 않았다. 이제 시간이 흘러 많은 고급 쿠키류들이 출시되었지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내가 고급쿠키라고 생각하는 건, 쿠크다스다.


‘과자의 명작’ 타이틀을 완전히 잃어버린 쿠크다스

이제는 쿠크다스 하면 ‘쿠크다스멘탈’이란 말이 먼저 떠오른다. ‘쿠크다스멘탈’이란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작은 충격에도 으스러지는 쿠크다스의 특성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쿠크다스의 진짜 타이틀은 따로 있다. 바로 ‘쿠키의 명작’이다.


쿠크다스는 쿠키의 명작입니다.


쿠크다스는 고급 쿠키로 포지셔닝되어 나온 과자였다. 레시피 근원지도 화려한 고급 제과류가 떠오르는 나라, 프랑스다. 쿠크다스는 프랑스 디저트 비스킷  중 랑그드샤류에 속한다.(이상하게 이름은 벨기에 아스 ASSE지방의 쿠키란 뜻이다.) 프랑스어로 ‘랑그’는 혀, ‘드’는 ~의, ‘샤’는 고양이란 뜻이다. 즉 ‘고양이의 혀’라는 뜻인데, 랑그 도샤의 길고 납작하고, 얇은 두께가 고양이 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또 한 번 고급스럽다. 귀족 부인의 품에 앉아 털을 고르는 페르시안 고양이의 모습이 떠오른달까.  


쿠크다스=연약함, 나약함

하지만 ‘쿠키의 명작’이란 이름은 이제 먼지가 앉아버렸다. 쿠크다스의 여러 특징 중 잘 부서진다는 것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강화되었다. 그래서 쿠크다스는 연약함, 나약함의 상징이 되었지만, 사실 이 특징은 쿠크다스의 강점이자 차별점이다. 별로 씹을 것도 없이 입에서 바스스 바스러지는 그 식감이 고급쿠키의 결이기 때문이다. 기성 과자 중 이런 식감의 과자는 거의 없다. 버터링도 쿠크다스는 못 따라온다.

하. 이전에 우리는 이 식감을 분명 ‘부드럽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역시 잘 부서진다”며 빈정거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참 안타깝다. 쿠크다스의 소속사(?) 크라운제과도 쿠크다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 것 같다. 쿠크다스를 깔 때 부서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붉은색 줄을 뜯어서 까는 방식을 개발하고, 특허까지 내고, 열심히 홍보하는 걸로 보아 진심으로 연약한 쿠크다스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쿠크다스는 이미 ‘연약함’의 대명사가 됐다. 이제는 멘탈이 약한 사람뿐 아니라 실력은 충분하거나 장래가 유망한데 몸 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든지 부상이 잦아 경기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쿠크다스가 별명으로 붙는다.


검색하면 나오는 다양한 쿠크다스멘탈 짤


나의 쿠크다스(멘탈) 친구들

친구들 중에도 자신을 인간 쿠크다스, 쿠크다스 멘탈의 소유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 중에 나약한 정신을 가진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공통점을 찾자면 이들은 다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늘 한 발짝 먼저 다가오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필요를 갖고 있는지 살피고, 되도록 그 필요를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다. 다정한 이들은 상처받기 쉽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끌어안으니까. 그가 가시 돋친 상태이건 아니건 간에. 난 이 친구들의 다정함을 인정해 주고, 높여주고 싶다. 상처받을 걸 두려워하면서도 타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너는 아주 용기 있고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명예를 회복하길, 쿠크다스

더 이상 쿠크다스가 나약함, 연약함의 상징이 아니면 좋겠다. ‘쿠키의 명작’으로서 명성을 되찾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쿠크다스를 봤을 때, 쿠크다스의 맛이 먼저 떠오르기 바란다.  사르르 부드럽게 부서지고 달콤하게 번지는 그 품격 있는 맛을 기대하며 쿠크다스를 집어 들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쿠크다스 멘탈인들이여. 나는 너무 나약하다고, 너무 쉽게 상처받는다고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다정함을 연약함으로 여기지 않길. 다정함은 가장 고귀한 당신의 훌륭한 품성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쿠크다스와 세상 모든 쿠크다스인들을 응원한다.


쿠크다스! 넌 연약한 과자가 아니라 쿠키의 명작이야!

쿠크다스인들이여! 여러분은 연약하지 않아요. 세상을 좀 더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귀한 사람들이에요!


쿠키의 명작, 쿠크다스.

쿠크다스가 명예를 되찾는 날을 고대한다.

이전 05화 내 서랍 속엔 언제나 후레쉬베리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