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후레쉬베리로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세 번째 서랍장을 열어 애정 하는 은박지 포장에 핑크색 글씨가 쓰인 사랑스러운 과자를 꺼냈다. '후레쉬베리' 초코파이와 카스타드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오랜 세월 중간자 자리를 진득하게 지키고 있는 친구. 나는 후레쉬베리를 좋아한다. 프레시가 아닌 후레쉬라서 입술이 '우'하고 모아지는 게 기분이 좋고, 다소 촌스러운 듯 변함없는 통통한 글씨체와 패키징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힘센 초코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고 영롱한 딸기 맛으로만 일궈낸 이 상큼한 맛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오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파이류들은 초코에 기대 있다.(초코파이, 오예스, 빅파이, 찰떡파이 등등) 하지만 후레쉬베리는 독립 과자다. 초코를 의지한 적이 없다.(내가 아는 한) 하다못해 카스타드도 초코맛이 나온 적이 있는데 후레쉬베리는 복숭아, 바나나 정도로 일관성 있게 과일군들과만 짧은 만남을 가졌다. 후레쉬베리는 곧은길을 가는 친구인 것이다. 파운드케이크 같은 위아래 뚜껑과 그 사이에 있는 (과일) 퓌레 생크림의 조합은 늘 변함없었다. 참 믿음이 가는 과자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후레쉬베리를 파는 곳이 은근 별로 없다는 점이다. 초코파이처럼 흔하게 보인다면 마치 나만의 스타가 모두가 좋아하는 이가 되었을 때처럼 뿌듯한 아쉬움을 느낄 테지만 그래도 지금보단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유명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
좋아하는 간식을 서랍 속에 두길 추천한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고민 끝에 쏙 꺼내먹는 간식은 그냥 툭 가져다 먹는 간식보다 더 소중하게 맛있다. 소중한 기분이 포인트다. 무언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에 여러 개를 까먹는다든지 과하게 먹으면 안 좋겠지만 하루 한두 개는 귀여운 기쁨 아닌가. 내가 애정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곁에 두는 건 행복의 순간을 늘리는 일이다. 한편으론 기댈 곳이 많은 삶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이유 없는 우울한 감정을 후레쉬베리에 기대서 떨쳐냈다. 후레쉬베리, 단종되지 말아 줘. 계속 내 서랍장에 소중하게 남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