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11]
[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옛날' 그림책의 복간 소식을 반기며
요즘 대세는 단언컨대 ‘뉴트로(Newtro)’ 아닐까. 뉴트로는 복고를 뜻하는 ‘Retro’와 새로움을 의미하는 ‘New’를 합쳐 ‘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뜻의 신조어다. 지난 2018년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 센터가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9」(미래의창)에서는 이미 뉴트로를 2019년 소비 트렌드의 대표 언어로 소개했다. 뉴트로는 2019년을 넘어 올해에도 모든 분야에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책 분야는 어떨까? 유년 시절의 추억을 담은 그림책에도 뉴트로 열풍이 분다.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 명작」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약 30년 만에 이 그림책을 다시 만난 반가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디즈니 그림 명작」의 복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예약 주문을 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림책을 마주한 나의 첫 감정은 다름 아닌 ‘향수’였다. 어릴 시절, 닳을 때까지 꺼내 읽던 그림책들. 나의 꿈과 함께 커가던 이 그림책을 다시 만난 건 정말이지 ‘꿈’같다고나 할까?
디즈니는 이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옛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955년 제작된 애니메이션 ‘레이디와 트램프(Lady and the Tramp)’는 이미 지난해 영화로 제작됐다. 1962년에 나온 ‘101마리 달마시안’도 곧 실사판 영화가 나올 예정이라고. 엠마 스톤이 악역 크루엘라를 연기한다고 하니, 기대된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가서. 그림책의 사전적 의미는 총 세 가지다. ▲첫째, 그림을 모아 놓은 책. ▲둘째,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 ▲셋째, 그림본으로 쓰는 책.
하지만 그림책 독자의 범주를 ‘어린이’로만 한정하는 것은 마치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와 같다. 실제 그림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가 되어 보니 그림책을 찾는 어른들도 꽤 많다. 실제 작가부터 출판사까지 어른들이 찾는 그림책이 호황이라고 많이 얘기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왜 그림책을 읽을까?
◇ 그림책도 뉴트로 사랑받는 이유… '어른의 여정'에 함께하는 동반자라서
먼저, 1980~1990년대를 살아온 3040세대 엄마들의 요구 때문 아닐까 싶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학력+구매력+교육열'을 갖춘 엄마를 ‘맘코노미(Momconomy, Mom+Economy)’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이 엄마들은 과거 단순히 자녀들에게 그림책을 읽어만주던 수동적인 태도를 벗어나, 그림책을 기반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강의하고, 제작하고, 출판하는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둘째, 그림책의 무한한 가능성과 성장동력이다. 실제 출판시장의 문이 많이 열린 가운데, 그림책 작가와 출판도 상승세를 보이는 추세다.
셋째, 코로나19에 지친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그림책의 힘을 빼놓고 말할 수 없겠다. 최근 ‘어른들의 그림책 읽기’와 관련한 도서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제 그림책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닌, ‘나’를 찾아가는 인생 여정의 매개체이자 어른이 된 나의 마음을 다독이는 고마운 선물이라는 것.
요즘 내가 읽는 그림책은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사토 와키코 글과 그림, 2016년, 한림출판사) 다. 이 책은 빨래하기를 아주아주 좋아하는 엄마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걸 빨아버리는 이야기다. 심지어 집에 찾아온 도깨비도 빨아버리는, 아주 강인한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991년에 출간됐다.
주위는 온통 도깨비 천지였습니다.
모두 더러운 도깨비들이었습니다.
도깨비들이 합창하듯 말했습니다.
“빨아 주세요. 씻겨 주세요!”
“그려 주세요. 예쁜 아이로 만들어 주세요!”
“어제처럼 또 해 주세요!”
엄마는 힘차게 말했습니다.
“좋아! 나에게 맡겨!” -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중
최근 여러 사회 이슈로 골치 아프고 마음이 심란해서일까? 마지막 대목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통쾌함을 느낀다. 그림책 속 ‘우리 엄마’ 같은 영웅이 나타나 혼란스러운 세상을 깨끗이 빨래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들 못 믿겠지만 우리 집엔 세탁기가 없다. 나와 남편은 벌써 7개월째 ‘세탁기 없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아기 빨래는 매일 나의 몫. 지친 몸으로 퇴근해 아기 빨래(특히 똥 기저귀)에 고단할 때, 나 대신 육아를 도와주는 양가 어머님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는다. 옛 그림책을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탓이다. 이게 바로 뉴트로 열풍이 부는 진짜 이유 아닐까?
그림책 분야에 부는 뉴트로 열풍이 좀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국 그림책의 뉴트로를 바라본다.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 명작」 복간에 이어 「어린이 한국의 동화」도 복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물론 그 소식을 듣자마자 주문했다).
한국 그림책이 뉴트로 열풍을 타고 복간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다시 받길, 한국 그림책이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사랑받길. 이런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그림책을 지금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책방지기로,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칼럼니스트 오윤희는 생일이 같은 2020년생 아들의 엄마입니다. 서울 도화동에서,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커피와 빵, 책방과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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