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소곡주, 경상북도 예천군 삼강주막
비바람이 거칠게 내리쳐 한 치 앞도 내보기가 힘든 어느 날,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나는 아빠의 18번 노래를 모르고 있었구나. 갑자기 18번 노래가 궁금해진 나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넌지시 여쭤보았다.
아빠의 18번 노래는 가수 노사연 씨의 ‘바램’이란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라며 콧노래를 부르신다. 아빠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나이가 들수록 익어가는 시간들이 감사하다고 했다. 그 뒤로 아빠와 여행을 떠날 때에는 18번 노래를 들으며 길을 나섰다.
아빠와의 우리 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예전보다 아빠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내게는 뜻깊은 여행으로 남을 이 여행은 마지막에 무엇을 남겨줄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다, 옛 우리 술을 마시던 선조들의 삶까지 상상해 보았다.
지금이야 소주다, 맥주다, 막걸리다, 양주다, 샴페인이다, 와인이다 다양한 술로 희로애락을 즐기지만, 어쩌면 옛적에는 온 동네가 우리 술을 마시며 길었던 하루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우리네 삶과 동거 동락한 우리 술, 그중 1,500년 역사를 지니고 익어가는 우리 술 한산소곡주를 찾아 충남 서천 한산면으로 아빠와 향했다.
한산소곡주는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혀 만들었다는 우리 술이다. 한산소곡주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제 궁중에서 마셨다던 기록을 토대로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그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오래된 역사만큼 술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다.
조선시대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가 소곡주에 취해 과거를 보지 못했단다. 그만큼 매력 있던 술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현재 한산소곡주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3호 우희열 명인을 포함해 한산 지역 일대 70여 곳 양조장에서 빚고 있다.
한 마을에서 같은 이름으로 70여 가지가 넘는다니, 모두 ‘한산소곡주’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맛과 개성은 집집마다 제각기 다르다. 때마침 한산소곡주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아빠와 함께 아침부터 발길을 재촉했다. 매년 10월경 축제가 열리는 한산시장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2018년, 올해로 4회를 맞은 축제는 서천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축제장에 들어서니 앙증맞은 두 마스코트 인형이 아빠와 나를 반긴다. 소곡주의 발효와 증류 과정에서 모티브를 딴 ‘누룩’과 ‘화비’다. 축제가 열리는 시장 한가운데는 한산소곡주갤러리도 있다. 64곳 양조장에서 빚은 한산소곡주를 구입하고, 시음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64곳 양조장 중 식품명인 제19호 우희열 명인의 한산소곡주는 2014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곳이다. 현재 나정연 전수자가 이어 소곡주를 빚고 있으며, 1층에는 한산소곡주 박물관도 마련되어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의 한산소곡주는 알코올 13도, 18도, 43도, 총 세 가지 소곡주를 비롯해 고도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백제 소곡주와 18도 한산소곡주를 증류한 43도 불소곡주가 있다.
종일 한산소곡주 구경에 온 마을이 우리 술 대축제로 흥겨운 서천군에서 아빠와 보낸 하루, 오늘처럼 매일이 축제 같았으면. 오랜 시간 함께 한산소곡주처럼 익어가는 아빠와 내가 되었으면, 이 바람을 담아 오늘은 아빠와 한산소곡주 한잔 곁들여 본다. 그렇다고 앉은뱅이처럼 많이는 말고. 딱 한잔만.
아빠와 일 년간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다니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양조장은 이리도 많은데 주막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양조장은 술을 빚던 곳이라면, 주막은 술을 좋아하던 이들에게 술을 팔던 곳인데, 주막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주막을 찾다 보니, 의외로 주막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극에서 보면 ‘주모! 여기 술!’ 외치던 주막이 이리도 찾기가 어려울 줄이야. 옛 생활유산이자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있던 주막의 흔적은 이미 온데간데 사라진 지 오래란다. 주막이 이러한데 주모는 어떠할까. 수소문 끝에 마지막 주막 터와 주모가 살았다는 경북 예천군 삼강주막을 찾았다.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삼강나루를 왕래하던 이들과 보부상들을 위한 쉼터였던 이곳은 조선 말기 전통주막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1900년경에 지어진 주막은 1934년 대홍수에 사라졌다, 마을 어른들의 증언으로 2008년 복원되었단다.
삼강주막이 이렇게 남게 된 이유는 주모의 도움이 컸다. 2006년까지 유옥련 할머니가 주모로 일했던 대한민국 마지막 주막이 바로 이곳이란다. 한글을 몰라 주막 벽에 빗금으로 외상을 확인하던 자리가 온전히 남아 있는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90년간 주막을 지켜온 한 주모의 삶이 주막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천천히 아빠와 함께 주막 주위를 둘러보니 나루터가 눈에 띈다. 조선시대 문경새재로 연결되었다던 나루터 주변으로 유유하게 강물이 흐른다.
홀로 남은 허름한 주막이 터를 지키고 있지만, 나룻배를 타고 한양을 향하던 바쁜 일손들이 얼마나 이곳을 스쳐 지나갔을까? 조용히 눈을 감고 강가에 부는 바람을 느껴 보았다.
이 여유와 이 순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빠와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부끄럽다는 핑계로, 엄마 편을 들던 서른 중반의 딸이 아빠에게 팔짱을 끼고 여행을 다닌 지난 일 년, 우리 둘 사이의 추억이 나루터에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갔다.
이번 여행 어땠어요? 라고 물어보면 아빠는 연신 고마웠다고 좋았다고 했다. 뭐가 그리 고맙고 좋았을까? 내가 더 고맙고 좋았는데… 말처럼 내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 삼강주막에 돌아와 아빠와 마실 막걸리를 주문했다. 주전자에 가득 찬 막걸리를 잔에 가득 따라 보았다.
막걸리에는 인생의 모든 맛이, 조상들의 이야기가 아빠와 나의 여행의 맛이 담겨 있었다. 달콤하고도 새콤하고 텁텁하고도 씁쓸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오묘한 맛을, 누구와 마시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맛을 말이다.
아빠와 내가 마셨던 술맛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오랜 시간 기다리고 발효되어 숙성된 우리 술처럼, 우리 사이도 그렇게 한층 더 깊어지고 함께 우린 맛이지 않았을까? 이 술이 이 여행이 끝이 아니길, 아빠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같이 한잔합시다!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1118
오픈: 매일 10:00~17:00(주말 휴무, 사전 문의 후 체험 및 이용 가능)
전화: 041 951 0290
홈페이지: www.sogokju.co.kr
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1173번길 21-1
오픈: 매일 10:00~18:00(월요일 휴무, 사전 문의 후 체험 및 이용 가능)
전화: 041 951 5856
홈페이지: sogokju.1500hansan.com
주소: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27
전화: 054 655 3035
홈페이지: www.3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