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성묘를 마치고 올라왔다. 처가에 처자식을 두고 나 혼자 기차를 타고 시골까지 다녀왔다. 막힐지도 모르는 귀성길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장시간 운전을 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타고서 보고 싶던 강의도 보고 책도 보고 그러면서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성묘를 위해서 온 어떤 친척이 차를 태워주셔서 성묘하는 곳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지방의 아파트에서 공사를 하는 분이었는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으레 사는 곳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나에게 지금 사는데는 좋으냐고 물으셔서 편하고 살기 좋다고 했다. 조경도 잘 되어 있고 커뮤니티에서 식당도 있어 편하다고 했다. 그러자 되 물으시기를,
- 아파트에 식당이 있으면 직원들이 먹는거냐
-> 아니요 그게 아니라…
- 그럼 식당에서 뭘 하냐?
-> 그게..
- 주민들이 재료를 갖고 와서 요리해서 나눠먹는 거지?
-> 그게 아니라 급식처럼 어떤 업체가 들어와서 일정 금액을 받고 식사를 제공하는 거에요.
그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강남 아파트건 제주도 땅이건 각종 기관을 다 장악해서 이제 망하는 수순으로 갈 거고 아무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 안하고 모른다는 주제의 대화를 시작했다. 대충 맞춰드렸다.
성묘를 마치고 나면 일반적인 산촌 + 농촌 마을이다. 산 비탈을 경작해 일부 물길 옆으로 밭을 만들고 거기서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 분은 나오는 길에 왼편을 보며 ‘야 여기다 전원주택 지어서 살면 좋겠다‘ 하셨다. 나는 조심스레 우리 아파트에도 노인들이 많이 사는데 그분들도 자연 환경과 편리한 주거 환경 및 주변의 가까운 큰 병원과 문화 시설을 보고 여기에서 노후를 보내러 많이들 오신다고 했다. 내가 노인이라면 이렇게 살기 불편한 곳에서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싶지는 않을 텐데. 그 분은 지난 번에는 무덤 옆에 집을 짓고 싶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동네로 약간 내려 오셨지만, 여전히 시골에 살고 싶으신가보다. 그 분이 물으셨다.
- 왜 그런데 그 아파트에 노인들이 그렇게 많냐.
-> 글쎄요. 원래부터 거기서 쭉 살던 분들도 많은 것 같고요, 주변에 건너 들어보면 신축이 편하다던데 일단 살아보자 하고 오시는 분도 계신 것 같고요. 근데 아이들 있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살아요.
나는 다음 일정을 위해 원래 시골의 읍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차를 내렸다. 외삼촌네 식구가 픽업을 해주셔서 외할머니 병문안을 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를 뵙고, 이제 역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다시 올라오려는데,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셨다. 나는 원래 계획과 달라지는 것이 싫고 괜히 신세지기도 싫어 감사하지만 기차를 타고 바로 올라가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 몇 차례 권하셔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동행했다. 여기서도 지금 어디 사는지를 숙모님이 물으셨다.
- 어디에 있지, 옥수동? 금호동?
-> 아 저 판교 살다가 지금 ㅇㅇ동으로 이사 왔어요.
3초간 적막이 흘렀다. 너무 예의가 없이 동네만 말했나, 서울시 강남구 ㅇㅇ동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야 했나, 어딘지 모르시나..? 그래도 노원구 사시면 서울에 웬만한 동네는 아시지 않을까. 아무렴 어때. 그리고 아이들 몇 살인지 호구조사는 애초에 끝냈는데, 숙모님이 이렇게 물었다.
- 애기들은 어디 보내고 유치원?
-> 아, 둘 다 아내 직장 어린이집 보내요.
- 친정에서 와주시기는 가깝니?
-> 전에는 3호선 타고 신분당선 타고 왔어야 했는데, 이제는 3호선만 타면 되어서 오히려…(여기서 말이 끊겼다)
- 아~ 정말 고생이시겠다. 힘드시겠네 (아뇨 괜찮아졌다니까요!)
-> 오히려 이사하고 전보다 더 거리가 짧아져서 괜찮은 것 같아요.
- 그래 그 유치원 보내는 거는 생각을 좀 해봐~ 어린이집 보다는 유치원이 낫지. 근데 첫째 유치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 보내려면 아내가 챙기기에 정신은 좀 없겠다~
-> 아 근데 워낙 직장 어린이집이 세 끼 다 챙겨주고 여기가 특히 좋은데다, 집앞에 영유가 있기는 해서 등원은 어렵진 않은데요 그게 효과가 그만큼 있을지가 고민이에요. 근데 아파트에 작은 키카 같은 곳이 있어서 보면 주변에 같은 영유 보내는 엄마들끼리는 다 아는 거 같더라구요. 저희는 다른데 보내니까 그건 좀 좋아보이기는 하네요 ㅎㅎ (하고 넘기려고 했다)
- 어유 그래~ 아내가 애 키우면서 주변에 아는 사람들 없으면 외.로.워. 아파트 사람들끼리 친해져봐 아무리 남편이 잘해줘요 수다도 떨고 그래야 풀리지
->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랑 친해질 새가 있나요, 다들 뭘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바쁘게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일단 우리가 시간이 없는데…) 아 근데 아내도 직장 동료나 동창들 만나서 애들 모아서 놀기도 하고 저도 지난번에 세 식구 모아서 풀빌라 다녀오고 그랬어요
- 아니 뭐 그래도 주변에 친척이라도 있으면 좋잖아. 동생 얼른 애 낳아서 같이 놀게 하고 그래
-> 집이 좀 거리가 멀어서요 아무래도 애를 낳더라도 모이기는 쉽지 않긴 하네요
- 그 아내가 오빠나 동생은 없어?
-> 아.. 남동생이 있는데, 그러니까 처남하고 처남댁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지금 영주권을 받았고 아이 둘도 미국에서 낳아서 생활권이 미국이에요. 일년에 한 번 정도 며칠 보고 그래요.
5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 어우 이런데 와봤어? 주말에 드라이브도 좀 다니고 그래~ 연애할 때 오고 그러잖아 안와봤어?
-> (여기를 왜 오나요 재미없게… 이런데 차 끌고 오는 건 마치 ’여친 생일 선물로 올리X아 로렌을 사주세요. 잊지 못할 기억이 될거에요’ 라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걸요) 아하 네 여기는 안와봤네요 조금 멀어서
여기에다 대고 그럼 나는 주말에 뭘 했었는가에 대해 솔직히 — 반얀트리, 신라호텔, 파라다이스시티, 소박하게는 화담숲, 최근에는 도곡메타세콰이아로드페스타에 양재천을 따라 걸어가서는 나윤권 라이브를 들었다고 —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대신 파이브가이즈도 아직 먹어보지 못한 사촌에게 강남역에 가면 요새는 오래 안 기다리고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여기 저기 간판을 보면서 따라 읽기도 하고 여기 맛있겠다 여기는 와봤는데 하고 알려주시는 숙모가, 여기가 어디의 어느 리냐고 묻자 네이버 지도를 켜서 이 동네의 상위 행정구역을 찾아 말씀드렸다. 아 물론 햄버거 같은거는 아이들에게 주면 안된다 하시는 숙모님에게는, ‘패티에 거의 간이 안되어서 있고 원하는대로 소금이랑 후추를 뿌려먹는 식이라서 두 살 아이에게 주기에도 아주 적절한 고기완자 전‘이라고 설명하면서, 내가 왜 이런 피곤한 싸움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들었던 것 같다.
드디어 우리는 식당에 들렀다. 메뉴당 13,000원 균일가 혹은 9,900원 메뉴도 있는 합리적 가격대의 메밀국수 및 전과 수육을 파는 집이었다. 숙모님이 말하셨다.
- 여기는 맛있고 다 좋은데 가격이 좀 비싸ㅎㅎ
-> 아… 음… 그게 그래도 요새 서울시내 물가 생각하면은 그래도 여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 우린 애가 셋이잖아ㅎㅎ 다섯 식구 있으면 이렇게만 먹어도 꽤 나와ㅎㅎ 근데 이이가 요리를 잘해서 집에서 많이 먹어
하시고는 외삼촌이 결혼 기념일을 위해 차린 상을 보여주셨다. 알록달록한 식판 5개에 다섯 식구 몫의 스테이크(라지만 뭔가 인정하기는 어려운 고기 구이)를 구워서 소스를 뿌린 것. 숙모가 뿌듯한 표정에 눈을 반짝이며 얘기하셨다.
- 근데 이거 파스타는 시킨거잖아 ㅎㅎ 자기가 한게 아니고
-> (아니 그럼 파스타까지 삼촌이 하셔야 하는건가요…) 아무래도 스테이크 5개를 시간 맞춰 적절히 구워내는 동안 파스타까지 신경쓰다가는 면이 불어버릴 수도 있고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쯤하면 아셨을까요. 숙모가 파스타를 같이 하셔야 하는거에요)
나는 스테이크를 먹는다면 붓쳐스컷이나 하다 못해 텍사스 로드하우스라도 가는 그림을 생각했는데, 다섯 식구가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저 방법 밖에는 없구나, 우린 네 식군데… 아닌가, 내가 돈을 더 버는게 빠른가? 아닌가, 그래도 요리를 배우는게 나을까? 그 찰나에 생각했던 것 같다. 뭔가 그 어려운 상을 차리고도 파스타를 주문했다며 타박을 듣는 삼촌의 모습이 슬픈건지 아니면 저 밥상이 슬픈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숙모가 물었다. ‘너도 요리 좀 하고 그러니? 요리 해 먹고 그래야 좋지 맨날 사먹을 순 없지~‘
그 말에 나는, 내가 신혼때 아내에게 해주면서 인스타에 박제해 놓은 여러가지 요리 사진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뒤,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지금 어린 애가 둘이어서 겨우 집안 치우고 둘다 맞벌이하고 지내는 상황에서 정말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항변이라도 하는 듯 사진을 계속 넘기며 요리에 대한 해설을 주워섬겼다.
-> 이건 지삼선
-> 이건 오코노미야끼
-> 이건 감자전, 체에 감자를 갈아 전분을 내려서 했어요
-> 마늘을 바른 통삼겹 구이 (외사촌인 여자애가 헉, 우와~ 한다)
-> 연어 아보카도 샌드위치. 구운 통밀식빵에 홀그레인 머스타드, 마요, 체다치즈, 토마토, 물에 담가둔 양파, 훈제연어, 레몬즙, 아보카도, 크림치즈. 아 하는 김에 과카몰리도 했어요.
-> 토달볶, 두부 청경채 볶음…
-> 토마토 퓨레를 직접 만들어 한 토마토소스 파스타 …
그래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느냐. 안다, 그리고 해봤는데, 지금 못하는거다. 그냥 야근하고 주담대 갚고 둘째 아이 똥기저귀 갈고 목욕 시키고 설겆이 하고 빨래 돌리며 생존하고 있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밥먹고 나서 체하고 토한다. 근데 무슨 드라이브냐. 무슨 한가한 소리냐.
밥이 나오자, 숙모는 내 앞에 있는 파김치를 배추김치 썰 듯이 세로로 세 토막 내서 파란 부분의 두 덩이를 덜어가셨다. 아니 파김치는 파뿌리부터 잎까지 먹어야 식감이 사는건데 이걸 토막내다니. 요리에 관심이 없으신 게 분명했다. 입짧은햇님 방송도 한 번 안 본 사람인게 틀림없는 듯, 이건 파김치를 담은 사람의 의도조차 무시하는 처사였다. 삼촌이 너무 안됐다. 나는 어릴적 나에게 참 잘 해준 삼촌이, 대학시절 요트를 즐기면서, 낚시와 술과 캠핑을 즐기면서 사셨던 멋진 삼촌이, 단지 머리는 벗어지고 배가 나왔을지언정 정말 선한 분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사시는게 너무 안되게 느껴졌다. 숙모가 덜어간 파김치가 다 떨어지고, 벨을 눌러달라고 하시자 나는 ‘이거 먼저 드세요’ 하고 내 앞에 있던, 파뿌리가 지배적으로 놓인 접시를 드리고는, 외삼촌과 숙모 앞의 빈 파김치 접시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그 부분 마저 다 떨어져 가는 것을 저만치에서 보자마자, 파김치 리필을 요청했는데, 직접 가져오셔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는, ’더 가져올게요’ 하고서 두 그릇을 집어 그 각각에 리필을 해왔다. 그릇을 가게 종업원에게 건네고서 리필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식탁에 가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첫 번 째 파김치 접시를 숙모와 외삼촌 앞에 놓자마자 역시 숙모는 그 파김치들에 가위를 대어 다시 가로로 3등분 했는데 이제는 삼촌도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했으나 여지없이 파김치는 3등분이 되고 말았다. 숙모님은 내 쪽으로 가위를 들이밀며 말했다.
- ‘여기도 잘라줄까?‘
나는 황급히 접시를 잡아서 가져오면서,
-> 아아, 괜찮아요. 저는 이대로 먹겠습니다.
하고는 원형을 보존한 파김치를 이 식당 진입 이래 처음으로 — 파대가리부터 잎까지 — 먹을 수 있었다. 음 이맛이지. 삼촌은 얼마나 오랜 세월 원형의 파김치를 고대했을까 — 오늘 우연히 삼촌께 전화를 걸어 차를 얻어타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 내가 원형 그대로의 파김치를 먹는다는 행위를 비로소 행동으로 보이기 전까지 말이다. 그렇게 대학시절 파전과 막걸리를 즐겼을 삼촌이 온전한 파김치의 맛을 몰랐으랴. 나의 작은 저항이 삼촌에게 작은 힘이 되었기를 바라며 우린 식사를 마쳤다.
가까운 기차역에 내릴 즈음, 삼촌은 나에게 당신이 일구고 계신 밭과 농막에 언제든 아이들 데리고 놀러오라고 하셨다. 주말이면 늘 계시기 때문에 편하게 오라고. 사실 주말에 이런 시골의 농막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면 아내는 뭘 이런 곳에 데리고 왔냐고 할 것이었다. 아이들은 좁은 농막에 불편하다고 울거나, 동화책을 하루에도 삼사십권 씩 읽어 제끼는 첫째 딸은 5분 보고는 여기 심심해! 하며 집에 가자고 할지도 모른다. 삼촌은 왜 그 편벽한 곳에 농막을 가꾸고 밭을 일구어 특용작물을 심는가. 나는 오늘 집에 돌아오면서 조금은 그 동기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삼촌의 탈출구였다. 주말이면 이 곳에 내려와 주중에 가정생활로 지친 마음을 다시 이 밭처럼 일구고 가꾸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숙모 말에 따르면 삼촌이 파김치를 잘 담근다고 했지. 나는 바란다. 담근 파김치는, 삼촌이 혼자 농막에서 라면을 갓 끓인 다음에, 어슴프레 해가 지는 산마루를 보면서, 백열등을 켜고 나서, 원형 그대로 파대가리부터 씹어서 드시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