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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경 Nov 18. 2024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세상의 모든 딸에게


춥다, 나는 혼자다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충분히 따뜻하지만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부재의 현전'

(in the Presence of Absence)과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 라르스 스벤젠의 외로움의 철학 중에서 -


벌써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바뀔 거라고 했지만 겨우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 가는 것 같아 쓸쓸하다. 여전히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로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감염병으로 팬데믹 상황이었을 때 읽었던 책이 청미 출판사에서 나왔던 라르스 스벤젠의 외로움의 철학이었다.


"외로움을 드러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부끄럽고 어딘가 수치스럽고 스스로를 못난 사람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외에 없고, 외로움을 드러낸다는 건 일종의 치부적 형태로 작용해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상징 같아 보인다. "


"난 좀 많이 외로운 것 같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정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듯 몹시 수치스러웠다. 끈질기게 싸워 내야 하는 외로움을 삼키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실체가 없는 감정이지만, 분명히 외로움은 나를 구속했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외로움이 동력이 되어 글을 쓰고 싶었다.

어릴 적 또래를 만나려면 산골에 가까운 시골이라 걸어서 한 시간 거리를 가야 했다. 엄마까지 일찍 돌아가셨으니 정서적인 결핍이 컸다. 봄에는 쑥을 캐고 여름에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길 옆에 핀 네 잎클로버를 찾겠다고 두리번거렸다 가을에는 산을 오르기도 했다. 펑펑 눈이 내린 겨울날에는 언덕을 올라서 눈썰매를 타곤 했다. 혼자 놀다 보면 해가 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니 혼자서 하는 모든 것에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혼자이기에 겪었던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겪는 내 안의 공허함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군중 속에서도 느껴지는 외로움이 뭘까? 나의 오랜 고립이 결국 신을 찾고 만나는 통로가 되기에 이르렀다. 외로움이라는 근본 감정 안에서 일으키는 원인을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직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치우쳐 스스로가 외롭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감정을 표현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자신에게조차 감정을 감춘다. 외로움의 감정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수많은 타인과의 교류, 성과, 정보, 쇼핑등 외로움을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잡하고 어지러울수록 평화를 잊은 세상을 신의 필요를 깨닫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세상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식 여섯을 낳았다. 배우자도 있다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긴 했지만 내 곁에 계속 누군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나를 본다.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은 일생을 거쳐서 수행해야 하는 과제 일까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순례길 같은 것일까 나를 뛰어넘어 그 너머에까지 다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구나 조금씩 알아간다. 태어나는 순간 불현듯 알게 되는 감정이고 사회적 동물이기에 오히려 외로움은 위안받고 다루어야 될 소중한 사안이며 외로움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드러내지 않았을 뿐 누구나 외롭기 때문이다. 매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이들의 요구와 집안일 조용히 있을 수 없는 시간들이 외로움으로 몰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팬데믹 상황 때에는 극에 달해서 새벽 다섯 시면 기필코 일어났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의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틈만 나면 혼자 있기로 작정했다.  슬그머니 외로움이 고개를 들면 책을 읽고 글을 적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이 안정되어 누리는 사치스러운 무엇도 아니고, 치유되어야 할 병도 아니며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만나 온전히 살아내고 고스란히 겪어 낼 숙명 같은 것이다.


"C. S. 루이스가 썼듯이 우리는 완전한 자각에 이르자마자 외로움을 발견한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뭐라도 알려면, 우리 자신을 알려고만 해도, 타인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겐 우리를 필요로 하는 타인이 필요하기도 하다."


외로움은 더 이상 벗어나야 할 것이 아니다. 변화를 맞기 위한 과정의 연속일 뿐 나를 필요로 하는 아직은 닿지 않은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발효된 외로움의 온기가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이라는 시집을 이 가을 선물로 주고 싶다.

​외롭다고 말하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너머로 던져버려

엄마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너머에 있는 고요나,

잠잠한 침묵에 귀 기울이면 정말 네가 얼마나

너 자신을 세상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뿌리 깊게

그 시간들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건지 알게 될거야

그런 순간들이 결국 너를 강인하게 만들어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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