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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경 Nov 21. 2024

초로기 알츠하이머

죄송합니다.

쾅 쾅 쾅

쾅 쾅 쾅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소리에 다급하게 일어났다. 새벽시간에 옆집에 피해를 주면 안 되는 일이다. 간신히 설득해 다시 방에 앉히고 재워 드렸다. 새벽 기도를 가겠다고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던 시어머니 동고동락 한지 어느덧 5년 처음에는 옷장에 있는 물건들을 바닥에 모두 꺼내 펼쳐놓고 무엇을 찾느라 쉴 새 없이 뒤지기 시작하셨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신다.


어떤 날은 저녁을 먹고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지갑에 있는 돈이 없어졌는데 내가 가져갔다고 하신다. 저녁을 주지 않고 혼자만 먹었다며 배가 고프다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한다. 새벽에 습관처럼 교회로 기도하러 가는 전도사 20년 시어머니 향년 59세 어느 날 파출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새벽 기도를 끝내고 집 가까운 곳에서 사역하는 어머니가 길을 잃어버려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해 집으로 인근 파출소에서 연락을 주신 것이다. 남편과 어머님을 모시러 가는데 둘은 서로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전쟁이 시작된다. 사계절 상관없이 옷을 껴입고 외출을 하려는 것 한 여름 날씨다. 열 겹이 넘게 입은 옷을 하나가 남을 때까지 간신히 벗기는 일은 투쟁에 가깝다. 1층에 사는 이웃 권사님께 겨우 잠시 맡기면서 숨을 돌린다. 그때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손목에 미아방지팔찌를 확인한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 건물에 있는 데이케어센터까지 두 손을 잡으며 그곳에 보내고 저녁을 먹기 전에 여섯 시에 어린이집 하원하듯 모시고 온다.


셋째를 출산한 다음날 아침, 병실에 누워있는데

전화 한 통화를 받은 남편의 얼굴이 어둡다.

대변을 본 채 옷도 벗지 않으려고 하고 목욕을 거부하신다고 형님께서 어머님 목욕은 어떻게 시켜드리냐는 문자를 받고 답장을 이미 해 드렸지만 목욕도 못 시켰고 이제 대변까지 옷에 한 상태이다. 데이케어센터에 저런 상태로 보낼 수는 없는데.. 결국 출산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나는 산부인과에서 집으로 향한다. 목욕시키고 새 옷을 입혀 데이케어센터에 보내드리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 채 병실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셋째가 백일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리시고 자지러지게 우는데 관심이 없다. 눈에 초점을 잃으신 어머니 얼른 아기를 안고 놀란 나는 달래느라 마음이 콩닥거린다. 혹시라도 잘못되었을까 봐 마음이 어지럽다. 아기를 돌보는 사이에 순식간에 사라진 어머니

아기를 아기띠에 둘러 안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택시를 잡아타고 뒤에 아기와 이곳저곳 갈만한 곳을 찾아보지만 아무 데도 보이질 않는다. 택시에서 다시 집으로 이동해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밖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마다

내 손목을 뿌리치고 사라져서 파출소에서 찾은 것이 지금 몇 번째인지 같은 상황의 반복이다.

집에서도 문을 열고 쉽게 가출해서 사라져 버리기에

안에서 잠그는 문을 설치한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문이 안에서 잠겨있는지 수시로 확인했는데 그날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아침에 사라지셨는데 파출소에서도 연락이 없고 남편이 돌아와 이곳저곳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그날, 밤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눈물이 소리 없이 계속 흘렀다. 거의 지쳐서 주저앉아 있을 즈음 집에서 아주 먼 다른 구 파출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상착의가 바로 어머님이셨다. 겨우 도착해 어머님을 모시고 왔고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신발도 신지 않고 계속 앞으로만 보행하는 것이 이상해 파출소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차로 가도 30분은 넘는 그곳에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 계시던 어머니 다행히 찾았다. 안도보다 두려움이 컸다.


그날 밤 혼자 결심했다. 나는 조용히 선택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가까운 곳에 요양원에 연락했다. 두세 군데 미리 알아보긴 했었지만, 남편의 반대로 계속 미루기만 했던 곳 자리가 있는지 여쭈어보고 본인은 직접 보낼 수 없다는 말에 어머님을 택시에 간신히 태워 요양원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밟았다. 보내 드리고 집으로 왔다.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내가 요양원에 보내 드리길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가족은 해체 되지 않았을까, 요양원에 가서 뵈면 집에 가고 싶다며 울며 매달리는 어머님을 뿌리치느라 한동안은 자주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의 7년.. 발작이 심해 한동안은 침대에 묶어 두셔야 가능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병실에서 시어머님은 초기 알츠하이머의 모든 증상의 절정에 다다르다가 뼈만 앙상한 채 숨을 거두셨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님께 죄송하다고 마른 눈물을 닦았다.


다섯째가 태어나 팔 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고 다섯째가 일곱 살이니 만 7년이 되었다. 남편은 평생 교회에 헌신하셨지만 병든 어머님의 끈질긴 고통의 모습을 보며 신은 부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오히려 나는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 땅에 태어나 모든 사랑의 수고와 희생을 선택하신 모든 어머님들의 삶의 애도를 전합니다




삼다(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나눈 글을 소개합니다. 이번에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3월까지 4학기로 마무리짓는 삼다의 여정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움이 깊어갈수록 제 안의 이야기들을 진정성 있고 깊이 있고 울림이 있는

글을 쓰게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저도 응원받고 싶습니다.^^ 응원과 댓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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