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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경 Nov 20. 2024

숨어있는 집

퇴고를 하면 글이 달라진다.

숨어 있는 집 (퇴고)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릴 적에 나를 찾을 때까지 숨어 있던 장소다. 못 찾겠다 꾀꼬리 할 때까지 숨죽이던 곳이다. 술래가 찾을 수 없던 그곳에 볕뉘가 슬며시 들어와 오후의 햇살을 눈부시게 비추곤 했다. 아늑했던 숨바꼭질 시간으로 간다.


우리 가족이 찾은 집 주변의 동네 길을 따라 걸으면 간판에 숨어 있는 집이라고 적혀 있다. 들어가 보니 치킨이 주 메뉴다. 낮에는 칼국수를 팔고 밤에는 치킨을 판다. 기름에 갓 튀긴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그 밤의 정취를 감상한다. 모든 문이 개방되어 있는 1층이다. 조명은 은은하고 사운드는 깊고 강렬하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적당히 소란스럽다.

자녀들과 선택한 숙소는 그동안 살고 싶은 2층 짜리 단독 주택이다 마당이 넓은 함덕해변이 가까운 단독 주택 사선으로 지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이다.

2층에 들어서면 나무목재로 집의 크기에 맞게 수제로 맞춘 낮은 장식장의 가구들이 벽면을 두르고 있다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오브제들이 진열되어 있다.

주방에는 온갖 살림집처럼 각종 양념과 예쁜 그릇들이 놓여 있다. 식기세척기는 물론이거니와 싱크대 배수구로 음식물이 들어가 저절로 갈려져서 따로 음식물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발을 눌러 음식물을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면 그만이다. 침대를 덮는 타올 재질의 침대요가 깔려 있는데 여름의 날씨에 맞게 최적의 부드러움과 쾌적함을 선사한다. 대형 티비는 일반집에서는 보기 힘든 영화관 크기에 가깝다. 방은 세 개고 안방에는 스타일러라고 옷을 넣으면 다림질이 되어 새 옷처럼 바뀐다. 가져온 원피스와 옷들을 그곳에 넣고 아침이면 오피스로 출근하는 커리우먼처럼 꺼내 입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피아노와 2층 침대가 놓인 방도 있다. 아이들과 동선이 긴 집에서 숨바꼭질도 한다. 슬라이딩이 부드러운 옷장에 숨기도 하고 베란다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커튼뒤에 숨기도 한다. 2층 침대에 이불을 덮고 없는 것처럼 누워 있는다.

욕조는 짜인 틀이 아니라 덩그러니 화장실에 따로 놓여 있어 미술 작품처럼 근사하다. 5분 거리의 함덕 해변을 걷거나 뛰어가면 작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산을 오른다. 해변 주변으로 즐비한 카페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여름, 머무는 그 집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참 많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건축자재들이 눈에 보이고 묵직하고 두터운 교합들이 만들어낸 색의 조합들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사선 안에 놓인 공간 속 그림 한점,

새로운 공간은 그렇구나

또는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내밀한 흐름 6박 7일 그곳에서 책 한 권을 읽는다.


여름은 그곳에 오래 남아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 간다. "


라고 쓰인 한 문장을 찾았다. 어떤 건축가가 설계한 곳에 사람이 드나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공기가 흐른다라고 표현한 것도, 건축을 배우기 위해 낸 졸업작품이 휠체어 생활이 가능한 소형주택 설계도였다는 것도 신선하다.

가족 중에 휠체어 타는 가족분이 계시냐는 물음에


"휠체어가 들어가면 전체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서요."

라고 답하는 뮤라이 슌스케 건축가의 대화를 읽으며 구도가 그려지고 공간이 느껴졌다. 한 번도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건물에 무엇이 들어가는지에 따라 설계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오래 두근거렸다.


함덕 해변을 가기 전 만춘 서점이 있다. 만춘 서점은 같은 크기의 건물 두 개가 나란히 있다. 한 곳은 인문학 한 곳은 실용서 위주였다. 그곳에서 여러 책을 샀다. 서점을 가기 위해 제주도에 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사 온 책 한 권은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다. 피로사회를 쓴 저자이다. 제주도를 쉬러 간 목적에 부합했고 시간의 향기는 나를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오직 사색적 삶을 되살리는 것만이 인간을 노동의 강제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활동 그 자체는 일종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래도 동물 이상의 존재인 것은 사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색하는 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지속적인 것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사색적 삶은 인간을 더욱 완전하게 만드는 삶의 형식이다. 사색적 삶 속에서 추구되는 진리의 사색은 곧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 모든 사색적 계기가 소실된다면 삶은 일로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행위로 퇴락하고 만다. 사색하는 머무름은 노동으로서의 시간을 중단시킨다. ˝

시간의 향기_한병철


그곳에서 우리는 내내 여름 해변을 즐길 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러 식당을 찾아가서 끼니를 때운다. 아침에는 가까운 한식뷔페에서 직접 계란프라이를 하거나 토스트를 구워 먹든지 라면을 끓이던지 잘 조리해 둔 반찬과 국을 취향대로 마음껏 먹는다. 그동안 움츠려 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바라듯 마음껏 먹고 마시고 노래한다. 밤에는 폭죽놀이를 감상하고 미술관에 들어가서 미술작품도 감상한다. 날마다 카페 프리패스권으로 커피를 마시고 잘 구워진 빵을 먹었으며 바다를 조용히 바라본다. 개인 상점 옷 가게에 가서 옷을 사고 소품 가게에서 만지작 거리다가 사 온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이도 바닷가로 달려가 열심히 수영을 하다 스스로 돌아오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사색을 위한 숨어 있는 시간이다. 제주도에 가기 위해 가장 고민한 책 한 권,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책 속 문장에서도 쉰다. 책을 읽으며 온전히 느린 시간 속으로 유영하며 헤엄친다.


어떤 여행은 어떤 떠남은 숨어있다. 은밀하게

그 작은 틈으로 들어가 한껏 숨을 내뱉고 서 있는 것이다. 길게 후 하고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숨을 길게 쉴 수 있는 공간과 사색이다. 일상을 살아낼 다른 공간에서의 휴식 가만히 나를 잊어도 좋을 만큼 편안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 권의 책 그것이면 충분하다. 원치 않았지만

술래가 나를 찾았다. 숨어 있는 집에 다시 가고 싶다.

 



글쓰기 공동체 삼다(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에서 수필을 초고를 쓰고 다시 퇴고를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글이 되는 퇴고를 통해 초고글을 삭제하기도 첨부하기도 합니다. 아직은 배우는 입장이라 부족하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숨어 있는 집(초고)

 

숨어 있는 집이다.

그것은 치킨 집이었다. 치킨집인데 카페 같았다. 아이들과 치킨을 뜯으며 그 밤의 정취를 감상했다. 1층이었는데 모든 문이 개방되어 있고

조명은 은은하고 사운드는 깊고 강렬하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적당히 소란스럽다.

자녀들과 내가 선택한 숙소는 그동안 내가 살고 싶은 2층 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마당이 넓은 함덕해변이 가까운 개인 주택이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이다. 2층에 들어서면 나무목재로 집의 크기에 맞게

수제로 맞춘 가구들이 벽면을 장식장으로 두르고 있다 장식장 안에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오브제들이 진열되어 있고

주방에는 온갖 살림집처럼 각종 양념과 예쁜 그릇들이 놓여 있다. 식기세척기는 물론이거니와 싱크대 배수구로 음식물이 들어가 저절로 갈려져서 따로 음식물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발을 눌러 음식물을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면 그만이다. 침대를 덮는 타월 재질의 침대요가 깔려 있었는데 여름의 날씨에 최적의 부드러움과 쾌적함이라 집으로 돌아 와서 그 재질의 이불을 사보려고 했는 게 결국 찾지 못했다 침대요를 훔쳐 오고 싶었을 정도였다.

대형 티비는 일반집에서는 보기 힘든 영화관 크기에 가까울 만큼 크다 방은 세 개였는데 안방에는 스타일러라고 옷을 넣으면 다림질이 되어 새 옷처럼 나와 가져온 원피스와 옷들을 그것에 넣고 아침이면 꺼내 입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피아노와 2층 침대가 있는 방도 있었다. 아이들과 동선이 긴 집에서 숨박꼭질도 하였다. 찾기 힘든 옷장이 숨겨져 있기도 했었다. 베란다 밖으로 나가 커튼뒤에 숨기도 하고 2층 침대 이불을 덮고 없는 것처럼 누워 있기도 하였다. 욕조는 짜인 틀에 가둔 게 아니라 덩그러니 화장실에 따로 놓여 있는데 미술 작품처럼 근사하다. 5분 거리의 함덕 해변은 걷거나 뛰어가면 작은 언덕 같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해변 주변으로 즐비한 카페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여름, 그때 그 집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참 많았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건축 자재들이 눈에 보이고 묵직하고 두터운 교합과 어우러지는 색의 조합들,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사선 안에 놓인 공간 속 그림 한점,


6박 7일 동안 그곳에서 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여름은 그곳에 오래 남아. 함덕 해변을 가기 전 만춘 서점이 있었다.

만춘 서점은 건물 두 개에 책을 나열하고 있었는데 한 곳은 인문학 한 곳은 실용서 위주였고 그곳에서 나는 또 여러 책을 사 왔다. 서점을 가기 위해 제주도에 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사 온 책 한 권은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였다. 피로사회를 쓴 저자이기도 했다. 제주도를 쉬러 간 목적에 부합했고 시간의 향기는 나를 위로하기에 적합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내내 여름 해변을 즐겼을 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러 식당을 찾아가서 끼니를 때웠고 아침에는 가까운 한식뷔페에서 직접 계란프라이를 해서 먹든지 토스트를 구워 먹든지 라면을 끓이던지 아니면 백반을 먹던지 취향대로 마음껏 먹었다. 그동안 움츠려 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바라듯 마음껏 먹고 마시고 노래했다. 함께 아이들과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도 부르고 밤에는 폭죽놀이를 감상하기도 했으며 미술관에 들어가서 미술작품도 감상했다. 아침 카페에 아이들과 앉아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었으며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기도 하였다. 가까운 개인 상점 옷 가게에 가서 옷을 사기도 했으며 소품 가게에서 소품을 만지작 거리다가 사 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이도 바닷가로 달려가 열심히 수영을 하다 스스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공간의 집을 건축하는 설계도를 그린 건축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일본 요미우리작가상을 받은 작품이다.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 간다. "

그 별장에 도착한 건축가의 시선이다.

제주도에 가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지만 내가 가장 고민한 것이 있다면 책이었다. 평소에도 책을 손에 내려놓지 않는 나에게 제주도에 가서도 읽을 책이 없다는 것은 마치 국제공항에 혼자 남게 된 미아 같은 심정이랄까 책을 다자녀를 키우는 나에게 일종의 쉼이자 내가 숨을 쉬는 틈이다.

구석구석 가만히 다가가는 섬세한 문학을 읽으며 별장에 도착했을 때 창문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어떤 공간에 누군가가 드나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가끔 나도 내가 드나들고 걸어가는 그곳에 활기가 일어나고 공기가 흐르는 곳으로 바뀌길 바란 적이 있다. 내가 그런 숨을 내뿜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길 바랐다. 지금은 제주도에 다녀온 기억을 더듬을 때 모든 시간들이 좋았지만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그 작품을 읽으며 온전히 그 느린 시간 속으로 유영하며 헤엄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어떤 여행은 어떤 떠남은 숨어있다. 은밀하게

그 작은 틈으로 들어가 한껏 숨을 내뱉고 서 있는 것이다. 길게 후 하고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숨을 길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일상을 살아낼 다른 공간에서의 휴식 가만히 나를 잊어도 좋을 만큼 편안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또 한 권의 책 그것이면 충분하다. 숨어 있는 집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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