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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게

생명과 아름다움

by 박수경


평소랑 다르지 않았다.

다만 눈이 소복이 쌓였던 아침이었다. 아파트 상가에 꽃집 겸 카페가 오픈했다. 아들을 넷을 낳고 그토록 바란 딸을 임신하고 있던 시기였다. 카페 오픈이벤트로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주신다고 했다. 내게 꽃은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졸업식 날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포장지에 곱게 쌓여 하나의 다발로만 보던 꽃이었다.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다양한 색과 다채로운 종류의 꽃이 바스켓에 들어 있는 것을 눈으로 보며 감탄했다. 충동적으로 꽃과 화병을 구입했다. 한아름 안겨준 꽃을 안방 침대맡 꽃병에 꽂아놓았다.

그 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추운 겨울밤을 달콤하게 녹여 주었다. 임신을 했지만 커피를 좋아해 딱 하루 한잔은 마시기 위해 아침마다 플라워카페를 갔다. 그곳에 그날마다 다른 꽃의 향연을 보노라니 태교가 절로 되었다. 어느 날 꽃집 사장님께서 내게 플라워클래스를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침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던 나는 꽃집을 홍보하는 것과 더불어 난생처음 플라워 클래스를 받게 되었다.


카라, 카네이션, 옥시페탈룸, 레몬트리, 리시안셔스 이름을 불렀다. 꽃을 보는 것과 내가 직접 꽃을 만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완성된 꽃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꽃을 정성스레 다듬고

꽃의 이름을 배우고 꽃의 얼굴을 마주하며 다른 식물들과 조화를 생각해 보며 구도까지 그려보았다.

직접 만드는 일은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꽃의 아름다움에 관해 직접 내게 가만히 다가와

마치 자신의 일부를 꺼내 보여주듯 비밀스럽게 사귀자고 했다. 자신이 가진 신비를 가만히 만질 때마다 감추었던 것을 드러냈다. 절화라도 아직 물속에 자신의 신체의 일부 줄기를 담가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는 꽃 한 송이는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상의 빛을 뿜으며 존재를 알렸다.


메리골드, 리시안셔스., 스토크, 클라란스 장미,

클레마티스, 투베로사, 유칼립투스, 라벤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듯 꽃들은

내게 말을 걸어왔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컨디셔닝, 사선컷팅 기초 스킬을 익히는 방법부터

결혼식에 신부가 드는 부케를 배우는 중급과정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계절마다 꽃은 내게 일상의 빛이 되어 주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에는 리스나

생화 트리에 장식하고 은은한 촛대에 불을 밝히는 테이블 장식을 통해 계절을 충분히 느끼고 만끽했다.

처음 꽃다발인 핸드타이트를 배울 때는

줄기를 잡아 한 가지씩 원을 돌리며 움켜잡는다

그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잘 되질 않았다.

조금씩 줄기를 잡는 손이 익숙해지면서

잡은 듯 놓은 듯 조금씩 원심력을 이용해 쓱쓱 한아름의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작품을 탁자 위에 놓고 사진을 찍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과 아름다움에 마치 내가 한껏 단장하고 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묘한 기쁨도 차올랐다.

꽃의 소재로 만들 수 있는 기법은 무한대로 뻗쳐 나갈 수 있었고 꽃의 향연에 넋을 잃기도 그 사랑스러움에 매료되기도 했다. 꽃의 유혹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고 대단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애정을 갖고 관심을 쏟으면

그만큼의 농도로 나에게 기쁨으로 화답했다.

내가 찬양하는 그것이 내게로 와서 나의 일부가 되어 주었다. 모든 것이 결국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구나, 알게 되었다. 미치도록 사랑하기, 열정적으로 품에 안기, 소멸될 때까지 사랑하기, 곁에 있기 모든 열심과 수고를 거듭해 볼수록 자연에서 얻은 것은 나에게 곱절로 되돌려 주었다.

신의 축복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던 시간이었다.

가만히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리 없이 온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꽃과의 교감은 그 어떤 것보다 깊고 황홀했다.

지금도 때때로 내게로 온 꽃에게 너의 탄생에 대해 묻는다. 네가 시들어 가는 그날에 네 죽음에 내가 끝까지 함께 했음을 잊지 말라며 너의 호사스러웠던 계절에 내가 너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며 사람에게서는 배울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준 꽃들에게 감사하다.

내게 함께 있는 것이 곧 모든 것이라는 깊은 지혜를 들려준 꽃에게 찬사를 바친다.

우리에게 새로운 원천을 제공해주는 식물을 이해하려고 그들 자리에 서보려고 애쓸 때 우리는 더 인간다워진다. 식물이 우리의 불멸성을, 잃어버린 능력을, 눈먼 에고가 고삐를 틀어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다시 작동시켜주기를. 아니면 그저 우리를 매혹하고, 놀라게 하고, 뒤숭숭하게 마음을 흔들어주기를 바라자. 우리가 식물 덕에 느끼는 이 감정들은 어쩌면 본래 식물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식물의 은밀한 감정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은이), 백선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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