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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소회_

지층처럼 쌓여 마치 화석이 된 오랜 이야기

by 박수경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동짓밤 할머니"


나를 꼭 껴안고 자던, 결코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동짓밤 할머니의 감촉이 아직도 고스란하다"
라고 글을 마무리하는 글쓴이의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동지, 밤이 가장 길다는 날, 가장 긴 밤에는 가장 깊은 밤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붙여준 별명이 동짓밤이다. 저자의 인생에 할머니가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가늠이 된다. 아니다 다를까.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란 기억들이 담담하게, 진솔하게, 그리고 정답고 아련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뜻한 사랑 이야기다. 엄마의 사랑과는 또 다른 맛인 할머니 사랑. 할머니 사랑은 역시나 시대 탓인지, 지역 탓인지, 엄마 사랑보다 더 향토적이고 포용적이다.


매우 짙은 향수, 깊은 기억을 선물하는 글이다. 선거철인 요즘, 이재명 후보를 빗대어 잼며든다고 하던데, 이 글이 잼며든다. 재미있게 물든다는 뜻이다. 따뜻한 향기가 감며 든다. 이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잘 살아가는 이라고 내 맘대로 확신하게 된다.


글 한편을 읽었지만, 그녀가 습관적으로 어휘와 문장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겠다. 앞으로 분명 책 한 권의 저자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선물이 되어 내게 온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선물에 디테일이 살아있다. 나는 디테일에 약하다, 그녀는 표지에 빡빡하게 글을 썼다. 그리고 예쁜 리본으로 책을 묶고, 화사한 포장지에 책을 감쌌다. 음식도 눈으로 먹은 후 입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고들 하는데, 선물 받는 맛이 디테일에서부터 살아난다.


박수경 님 열심히 읽고 쓰는 사람으로, 그래서 작품을 내는 작가로 우뚝 서소서!!


-『여백으로 살아가기』 김선영 작가님의 책 읽은 소감-




읽고, 쓰고, 살아내며


《우리는 그렇게 문장이 되었다》


(송의현 김율 박명철 윤종서 김주현 문현주 김지나 주진우 김영숙 박수경 이승수 / 단미)


기다리던 책을 어제 오후에 받았다.

깨끗한 정신으로 읽으려고 오늘 이른 아침에 펼쳤다.


이 중 가장 먼저 박수경 작가의 글을 찾았다.

물론 내 습성 대로, '여러분(삼다 13기 낮반 11명 작가)의 글선생이라 고마운 박총'의 들어가는 글을 읽은 뒤.


글선생 박총이 인용한 글이 내게도 진하게 다가온다.


저는 이덕무의 처방전을 우리 글 벗님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슬픔이 닥치면 너무 막막하여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아예 사라진다. 다행히 내게 두 눈이 있어 글자를 안다. 책 한 권을 들고 읽기 시작하면 모든 게 바뀐다. 무너졌던 마음이 곧바로 안정을 찾는다."


롤랑 바르트는"글쓰기란 사랑하는 사람을 불멸화하는 일"이라고 했지요. 진득하니 글을 써서 서로가 서로를 불멸의 존재로 삼읍시다.


박수경 작가!

그는 일면식도 없는 데다 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별로, 아니 거의 없는 무명한 사람인 내가 세상에 처음으로 낸 내 책을 표지가 예뻐서 집어 들었다가 그 안의 내용을 읽고 (아마도?) 나를 처음으로 격려해 준 독자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이후 오프라인으로도 만났다.

어떤 계기가 있어 그는 다만 다섯 남매를 키우는 (당시는 채은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박수경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생명이고, 현재의 고난을 감당하며 아름답게 피어가기 위해 순례 이야기를 지어가는 생명 자체를 대표하는 인물'(《나이가 하는 일》 63)로 내 안에 재탄생했다. 그가 쓰는 글을 읽으며, 그녀 만의 순례길을 응원하던 차에 여섯째, 꿈이 그녀에게 찾아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걱정이었다. 어떻게 무사하게 낳을지?, 어떻게 기를지?

예정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 유도 분만을 시도했지만, 참으로 오랜 시간 뒤에야 꿈을 품에 안았다. 자연분만이었다.

휴~


그런 그녀가 아이 여섯을 품고, 글을 쓴다고 '삼다'에 합류해 독한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편으로는 당연히 갈 길을 택한 게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책이 되어 나온 그녀의 글 두 작품을 읽었다.


어떻게 이리 다가오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감촉, 할머니가 주고 간 그 감촉.

"겨울밤이면 유독 할머니가 그립다. 처마 밑 고드름이 얼 정도로 날이 추워도 아랫목 노란 장판이 다 타서 검게 그을릴 만큼 불을 때고도 이불을 서너 장 바닥에 놓고 잘 정도로 뜨끈뜨끈한 기억 때문이다. 그래도 추울까 나를 꼭 껴안고 자던, 결코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동짓밤 할머니의 감촉이 아직도 고스란하다."로 마무리되는 <동짓밤 할머니>를 읽고 나니 알 것 같다.


<엄마가 남긴 편지>는

'노란 아로나민 양철곽'으로 시작한다. 이 양철곽은 내 엄마와 아버지가 드셨던 영양제의 상징이다. "너도 이거 먹어. 이거 먹은 날과 먹지 않은 날이 다르단다."

활성 비타민이라서 그렇단다. 엄마가 한 이야기가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데 단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아로나민'이었던가? "아로나민 골드' 였던가? 아무튼 '아로나민'이 쓰여있던 이 노란 양철곽이 내게 엄마와 아버지를 불러온다.


"친정 엄마들은 내 자식이 애 많이 낳는 걸 말린다는데. 일찍 홀로 된 난 적적한 마음에 애를 여섯이나 낳았어. 내내 아이들을 건사하다 보니 미처 살아보지 않은 삶에 자꾸만 눈길이 가. 그래도 여섯 모두를 씩씩하게 잘 키우고 있으니, 걱정은 마. 아이들도 참 고와. 내 인생이 비록 자식을 키우다가 저문다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일 거야."


어떻게 많은 아이들을 낳고, 마음을 다하여 키우는지,

그늘 없이 자라게 하는지 - 물론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그리고 그늘이 있다 해도, 그늘이 나쁜 건 아니지 않던가. 어쩌면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일 테고, 그늘이 있어야만 성숙할 테니 필요한 그늘은 있을 테다 -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큰 아이의 진로를 놓고 서로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이미 작가가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을 알 수 있긴 했다.

그런 원칙은 일관성이 있는 듯, 나는 작가가 자신이 가야 할 길에도 같은 원칙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자기답게, 각자의 그 사람답게. 아마도 작가의 엄마가 짧은 생에서 주고 간 사랑의 방법인 것 같다.


작가가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읽으며,

부드럽고 사랑 많고, 어찌 보면 순종적인. 글쎄 순종이란 말의 의미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단언데. 그래서 그리 보이기도 한 작가가 삶의 어렵고도 중요한 순간 내리는 과감한 결단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 여섯 아이가 있음에도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고 부단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어쩌면 가장 자기 다운 길을 내어 걸어가는 게 너무 좋다.


아리고 쓸쓸한 기억 속의 뜨끈 뜨근한 기억, 짧은 삶에서조차 딸에게 충분하게 많은 것을 남겨준 엄마,

그리고 그동안에 겪었던 아픔들.

그리고 작가와 아이들을 묵직하게 품어주는 남편의 사랑이 한데 비벼져서 더욱 성숙해갈 작가의 삶을 응원한다.


작가의 건강을 놓고, 두 손을 순간순간 모을 것이고,

바람 불면 사정없이 나부끼는 양귀비를 볼 때에, 또 박수경 작가를 기억하겠습니다.


다른 열 분 작가의 글을 읽어야겠다.

그분들의 삶으로 배우고, 응원해야겠다. 그리고 글선생이 되어 그분들의 삶이 문장이 되게 한 박총 님에게도 감사드린다.


* 나는 모든 분들이 자기의 글을 쓴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박총 글선생이 전해준 이덕무의 말처럼,

책 한 권을 들고 읽기 시작하면 모든 게 바뀌듯, 쓰는 일이 또한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이미 옮긴 박수경 작가 외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고 있다.

차례로 읽으며, 같은 작가의 뒷부분에 있는 다른 작품을 읽는 식으로 읽는다.


괴테도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바다가 불안하게 일렁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햇살이 눈부셔도 하늘의 별이 내려앉은 것처럼 아름다운 윤슬이 생겨날 수 없다고.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이 비틀거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주의 은혜의 광선이 눈 부셔도 감동적인 인생 서사가 생겨날 수 없다고.

_김주현


.... 이제는 '완성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미완의 글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겸손하게 한 줄 더 고치고, 하루 더 살아가게 하는 그분의 축복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삼다 졸업도 완성이 아닙니다. 결국엔 우리 삶의 퇴고 일부에 불과합니다. 숨이 허락되는 한, 삶의 퇴고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퇴고 must go on!"

_윤종서


그래 불안하다는 건, 비틀거린다는 건, 노력한다는 증거고 감동적인 인생 서사를 잉태하는 거라고 (하긴 인생 서사가 꼭 감동적이지 않아도 될 터지만 말이다)...

나도 불안하고 미덥지 못한 내 삶도 그래서 그런 거라고.

그저 한 줄 더 고치며, 하루 더 살아가는 퇴고의 과정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고.


나를 다독여 본다.



『이 정도면 충분한』, 『몸을 돌아보는 시간』, 『나이가 하는 일』 조희선 작가님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누구나 삶에서 상실과 이별의 아픔을 겪지만, 때로는 그것이 완전한 소멸의 바람보다 살아감에 위로와 힘을 더할 때가 있다. 바로 상실과 이별의 통증이 인격과 정서를 빚어 살아가는 자들의 모든 정황을 따듯함과 북돋움으로 얼싸안는 ‘품’(이별이 아닌 여전히 내 곁을 지키는)이 될 때다. 이때 기억은 추억이 되고, 회상은 마중물이 된다. 소개하는 박수경 작가의 회상 글 “동짓밤 할머니”와 “엄마가 남긴 편지”가 그렇다.


이 글은 여러 저자가 쓴 공저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에 담긴 두 편의 글이다. 첫 번째는 약손 할미 곁에서 쓰담쓰담 귀염 받으며 자랐던 양파 같은 외손주(작가)의 그리움과 감사다. 첫 문장부터 경상도 사투리로 문을 여는 박 작가의 쓰기는 독자의 마음을 구수한 흙냄새 흩뿌리던 시대로 송두리째 이동시키는 타임머신 같다. “맷돌”, “땅콩죽”, “할미”, “죠리퐁과 우유”, “봉선화”, “쌈짓돈”, “팥칼국수,” “털모자”…. 할미와의 일들을 소상히 회상하며 써 내려가는 길목마다 등장하는 이 단어들은 그녀의 글 전체가 현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겐 생경한, 그래서 신기하게 느껴질 법한 모양새지만, 절절함의 뒤안길에 담긴 8-90년대의 훈훈함은 스마트한 과학 문명 시대의 젊은이들이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할 만한 강렬한 인간미를 발산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게 외롭고 고독한 이가 많은 AI 초월 사회에서 진정한 인간의 전인격적 초월이 무엇인지, 그리고 거기에 담긴 가족의 온정이 무엇인지 더듬고 싶게 만든다. 특별히 목 놓아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지만, 계속해서 부르는 “할머니”란 단어는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갔는지 그녀의 정서를 엿보는 창문이다. 어쩌면, 아니 당연히 그분은 모두의 할머니이시지 않을까? 첫 증손자를 보고 생을 마감하셨던 그녀의 할머니, 아니 바로 우리 모두의 할머니 말이다.


다음 두 번째 글은 그렇게 할미 손에서 자라야만 했던 육 남매 엄마의 엄마, 곧 일찍 땅별과 이별한 박 작가 엄마를 향한 글이다. 아니, 돌려서 말해 박 작가는 이 글이 엄마에게 드리는 편지가 아니라 “엄마가 남긴 편지”라고 이름 지었다. 마치 마흔여섯의 이른 나이에 하늘별이 된 그리운 엄마일지라도 그분께서 자기에게 심어준 박 작가 자신의 기억과 회상이 곧 이 편지 글의 원재료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그래서인지 곱씹어 읽다 보면 그리움은 닿지 않을 저편으로 인한 것 같지만, 그것마저 현생으로 끌어오는 강력한 초월적 에너지가 이 글엔 서려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상실과 이별의 통증이 소멸이 아닌 생명의 싹이 된다는 말은 이미 하늘별이 되신 엄마지만, 여전히 딸인 박 작가의 삶을 얼싸안는 무형의 ‘품’이라는 의미와 맞닿은 것만 같다. 그리고 박 작가는 살아생전의 모습을 조목조목 그리며 매력적이셨던 엄마의 모습을 연상한다.


“저 멀리서도 들리던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지금도 생생해. 연보랏빛 투피스에 살짝 펄이 들어가 반짝반짝 빛나는 엄마는 일본에서 사 온 카메라를 들고 왔지. 등나무에서 나와 함께 노는 졸업생 6학년 여자아이들 사진을 찍어준 엄마.”


여기서도 박 작가는 할머니를 부르듯 엄마를 부른다. “엄마”. 그리고 카메라를 든 엄마의 모습을 글이라는 자기만의 앵글에 담는다. 더불어 사랑하는 할머니를 그리며 엄마와의 재회가 어땠냐고 묻는다. “할머니도 엄마도 무지 보고 싶다. 엄마…” 과연 이 글이 엄마가 남긴 편지일까? 그렇다. 적어도 박 작가에겐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영혼육을 가진 우리 인간만의 고유한 형상인지도. 아련한 기억, 정서적 회상, 보이지 않는 개개인만의 고유한 인간성은 초월적 하늘이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신비다. 그리고 박 작가는 그 품을 이렇게 표현한다.


“시를 짓듯 밥을 지으며 투명하게 그려나가 볼게. 당신의 삶을 영원으로 이어 나가 볼게. 늘 용기를 줘요! 사랑해… 엄마!”


그리운 이, 사랑하는 이를 절절히 부르는 박 작가의 심정은 한 바가지 눈물을 흘려도 시원하게 해소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상함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과거는 언제나 시간적 의미가 있다. 1980년대 포크 가수로 유명했던 전인권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적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처럼 말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박 작가의 글이 ‘앵글’이라면, 이적의 노래는 ‘품의 노래’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글과 노래가 준비됐으니 난 그저 그 글길에 ‘밑줄’로 내 마음을 표현하련다. 하늘에 계신 아리따우신 두 별을 그리며 하늘색 색연필로 그으련다. 흠, 타임머신의 이동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니, 이보다 후회 없는 꿈, 새로운 꿈을 꿨다고 하늘별들께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통섭적 목회 패러다임』, 『쉽게 만나는 성경』, 『현대선교신학의 주요 용어들』, 『한국교회 목회의 새 방향』, 『믿음 서바이벌』 — 김신구 작가님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삼다(三多)라는, 글쓰기 강좌를 수료한 사람들의 글을 한데 모아 엮은 문집입니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 몸은 피곤했지만, 수경 씨의 글을 찾아 먼저 읽었습니다.


'엄마가 남긴 편지'.


글의 제목입니다.


어느 날, 노란 아로나민 양철과 에서 어머니의 글을 우연히 발견합니다.

거기에 가득 담긴 어머니의 글들... 그것을 밤새 읽으며 수경 씨는 어머니를 추억합니다.


어머니는 마흔여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수경 씨의 나이는 열여섯이었습니다.

열여섯... 그 나이에 수경 씨는 어머니 없이 할머니와 살아야 했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그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지 충분히 짐작됩니다.


어머니가 떠나고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그러니까 30년 만에 어머니의 흔적을 되짚으며 그는 글을 씁니다.


그 문장들이 참 애틋하고 귀합니다.


그는 지금 여섯 자녀를 둔 주부입니다. 일찍 홀로 된 적적함에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다고 합니다.


전업주부라고 하지요. 그는 오롯이 아이들을 내내 건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삶이 참 고단할 것도 같은데, 그는 비록 자식을 키우다가 삶이 저문다 해도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그의 삶은 어떠하였을까요? 그렇게 일찍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그렇게 많이 낳지 않았을런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는 현재 삶이 참 가치 있다 말합니다. 그런 그가 저는 참 좋습니다.


시를 짓듯 밥을 지으며 삶을 투명하게 그려나가 볼게, 하는 문장에서는 뭉클했습니다.


저는 그의 글을 참 좋아합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페이스북에서 그의 글을 처음 본 이후부터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좋아요 개수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의 글은 제게 읽는 재미를 줍니다.


일상을 담아내는 재주가 참 좋습니다. 그가 글 쓰는 것을 쉬려고 할 때에 적극 말렸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삼다를 맡아 이끌고 있는 박총 작가의 권유처럼 앞으로도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쉬지 말고 꾸준히 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의 이름만으로 된 책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책갈피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라 감사해요. 제가 지은 첫 책을 목사님께 드릴 수 있어 기뻐요. 목사님 가는 길에 위로의 '문장'들이 흩뿌려지길 바라봅니다. 감사해요."


참 고맙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도 위로의 '문장'들이 가득 흩뿌려지길 바랍니다. 그것이 삶의 힘과 기쁨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늘 건강하고 평안하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부산장애인전도협회 대표 정용균 목사님



#박수경 작가님이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예쁜 네 잎 클로버가 꽂혀있는 35페이지를

먼저 읽었습니다. 고향 다녀오면서 할머니 생각나

나오려던 눈물을 꾹 참고 있었는데...

결국 책 속 할머니가 제 눈을 울리고 있네요.

#그렇게_우리는_문장이_되었다 #박수경

#동짓밤_할머니 #엄마가_남긴_편지


지우고 싶은 시간도 선물이었습니다』 이효경 작가님




독자가 있어 비로소 책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 밖의 짧은 몇 줄로 책 읽은 소감을 남겨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남겨 주신 글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에 쓴 일기 한쪽을 떠올렸어요!


할머니에 관한 회상은 하루 이틀에 떠 올린 기억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오던 기억이 지층처럼 쌓여 마치 화석이 된 오랜 이야기다.

동짓밤할머니를 읽고 눈물로 공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언젠가 쓴 일기 한편을 함께 글에 담아 봅니다.

2019년 1월 15일



청소를 끝마치고, 나름 잘 정돈된 방 안에 은은한 조명을 켜고 혼자 있는 시간은
주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시간이
아닐까? ^^

게다가 방금 목욕을 시킨 다섯째 막내가
잠이 들어
혹시라도 부딪치는 소리에 깰까 봐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쉼을 얻는다.

온전히 쉬려면 때로는 음악
소리조차 꺼야 한다.
그 음악 소리 때문에 오히려
더 피곤해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공기만이 가만히 떠다니는 듯한 적막.
자판 두드리는 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이런 고요하고 무음의 시간이
참, 좋다.

어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천 원을 주고 봉지 속에 담긴 두툼한 껍질
벗긴 갈색 땅콩을 사 왔다.

아침에 일어나 땅콩을 볶다가 문득 든 생각.
어릴 적, 할머니는 내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밥을 잘 먹지 못할 때면
저렇게 구수하게 땅콩을 볶아
부엌 입구 돌절구에 손수 갈아 부드럽게
땅콩죽을 끓여 주셨는데…
아, 먹고 싶다.

그리워서라도, 아쉬워서라도
땅콩을 볶아 먹는 것이다.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
매우 까다로운 회사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방법으로
그 사람의 추억이 담긴 음식과 비슷한 맛을 내는 식당이나 장인을 찾아
그 음식을 대접하고,
그 입맛을 깨워 감동시켜 계약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있었다.

생각은 잊힐 수 있어도,
몸에 새겨진 미각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어김없이 반응하는 것 같다.
-일기의 한 귀퉁이-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동짓밤 할머니와
엄마가 남긴 편지를 출간하고 더 글이 쓰고 싶어 졌습니다. 온전히 제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이 나올
때까지 읽고 쓰는 삶을 살아내 보겠습니다.

그저 매일 쓰고 있는 힘껏 읽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래이브래드의 명 문장은 제게 출간이라는
기쁜 소식을 안겨주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며
글을 더욱 쓰고자 하는 의지를 안겨 주었습니다.


기억하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같이 가 보기로 해요.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를 구성하는 소제목

「글이 삶을 데리고 간다」 문장이 주는 힘을 발견하는
읽고 쓰고 살아내는 모든 분들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읽고, 쓰고, 살아내며


저자 : 송의현 김율 박명철 윤종서 김주현 문현주 김지나 주진우 김영숙 박수경 이승수 저자(글)


판형: 120*188, 186쪽 | 가격: 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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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서점 소개

네이버

https://naver.me/GPlAxcJP


교보문고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49389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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