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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밤 할머니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by 박수경
읍내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할머니는 근사한 지팡이와 고운 털모자 차림으로 오셨다. 백발이 하얀 털모자에서 빛이 났다.

_동짓밤 할머니,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그저 매일 쓰고 있는 힘껏 읽어라 " 브런치에 글을 연재했습니다. 글짓기 공동체에 들어가면서 브런치에 작가 신청도 함께 했습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이 혼자서 신청할 때는 안되고 계속 반려가 되더니 함께 글을 짓는 모임에 들어가니 승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을 겪어 내며 쓴 습작을 퇴고를 거듭하고 글 짓는 이들과 내 글을 낭독하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내가 쓴 글을 함께 글 짓는 이들에게 목소리로 건넬 때 그만 울먹 거렸습니다.


글 속에 하얀 털모자를 쓴 그 겨울 졸업식에 오신 할머니가 영화처럼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졸업식에 오셔서 친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셨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조모에게서 돌봄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고 2 때는 내 생일날 반 아이들과 작당을 하고 초코파이로 생일 축하를 해 줬던 따뜻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글을 쓰면 좋은 기억들이 나쁜 기억들로 무장하고 곁을 주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소녀는 간데없고 꽃으로 피어나려고 새싹이 움트듯 돋아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의 삶을 내가 기억해 내고 내 이야기는 나만 할 수 있다는 그 멋진 글쓰기의 독려가 저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하얀 털모자에서 빛이 나던 그날의 밝고 아름다웠던 할머니가 글에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날을 비추는 태양까지 오롯이 기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잃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녀는 내내 그리움에 휩싸여 지냈으나 마흔이 넘은 여섯 자녀를 둔 다시 엄마가 된 저는, 제게서 태어난 딸들까지 인생의 포물선을 그리듯 무지개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와 촉촉이 젖은 대지위에 피어난 무지개

오래전에 제가 쓴 글에 제 글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스스로를 달래듯 말이죠.

내 글은,

메마른 땅 소나기처럼 내려 흠뻑 적셔주고

잠시의 갈증을 해갈하는 글이 되면 좋겠다.


내 글을 읽고 나면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뒤였으면 좋겠다.

쨍한 햇빛이 비추이고 무지개가 나타나

소나기가 내렸다는 사실보다

무지개를 보느라

비가 온 사실도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리는,

그 순간을 보게 되는 글 말이다.


내게 짧은 이틀 소나기가 왔고,

무지개가 반짝 내렸다.

그런 날이었다.


소나기가 내리고 무지개를 본 그날의 감흥처럼 내 글이반짝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내내 기억에 물컹하게 만져지는 제 동짓밤 할머니가 그렇게 우리는 문장이 되었다. 책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봅니다.


어쩌면 자기 연민처럼 시작된 글쓰기가 누군가 아직 그리움으로 떨치기 힘든 시간들을 지내고 있다면 글을 써서 자기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대상을 향해 충분히 애도하는 일을 통해 담담하게 보내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녀, 그가 글 속에서 여전히 당신 곁에 있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조용히 지지를 보내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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