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 일기]산부인과 첫경험

"어머...이것 좀 봐..연탄구멍처럼 생긴거 보이지?"

by 난생



생리통이 심하던 2006년,
나는 대학 신입생 티가 폴폴 나던 나이였다.

그때는, 나이 어린 여자가 산부인과에 가는 것만으로도
뭔가 남자와 그렇고 그런 여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은근한 시선이 꼭 불쑥 불쑥 꽂히던 때였다.
혼전순결을 강조 또 강조하던 우리 엄마의 성교육도
그런 시선을 받는 것 같은 거부감에 한몫 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날 쳐다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조차
뒤통수 너머로 그들의 시선이 내게 관통하듯
나는 그렇게 죄지은 적도 없이 죄진 사람처럼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이유없는 수치심을 감수하면서까지 산부인과에 갔던건
약국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아서 하루종일 사지가 저려오는
극심한 생리통을 더 이상은 두고볼 수 없어서
혹시 병원에서 처방받는 진통제는 좀 다를까봐
큰 용기를 내 간 것이었다.

나의 이런 큰 결심이 서기까지
엄마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내게
산부인과에 가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데굴데굴 구르는 나를 보면서도
"여자들은 생리하면 원래 그렇게 아파.
엄마는 진통제도 안먹고 얼굴 노래질 때까지 버텨가며
회사에서 일도 다 했어"라는
아무 힘없는 말로 날 버티게 했다.

집에서는 진통제 내성이 생긴다며 약을 잘 챙겨주지 않았고
내가 죽겠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사정사정해야
겨우 그것도 못 참는 나약한 여자 취급을 하며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주거나
아니면 학교 양호실에 가서 받는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여자인 엄마가 딸인 내게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을 하니,
여자로 사는 것이 이렇게 가혹한 일인가 싶어서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여자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엄마의 그 힘없는 위로가 수년에 걸쳐 굳어지고, 굳어지고
당연히 여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줄로만 믿었다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네이버 지식인에 생리통을 검색하다가
제 발로 그것도 나 혼자 병원에 간 것이다.

일부러 나이가 지긋한 여의사가 있는,
그나마 괜찮다고 소문난 동네 산부인과를 검색해 찾아갔다.
난생처음 굴욕의자에 앉아 여의사를 마주하니
같은 여자라도 정말 부끄럽고 수치심이 들었는데
여의사는 경험과 경력이 너무나 많아서인지
나같은 환자의 마음 따위는 헤아려주지 않았다.

"생리통이 심하다구요? 첫경험은 있어요?
없으면 항문으로 볼게요. (여의사는 한참 말이 없었다)
어라, 어라... 이것봐라.
얘, 얘!! 간호사 저기 옆방에 이 선생님(남자 선생님이었다)도
이리 좀 오시라고 해. 어머...웬일이야...
(남자선생님 들어와서 같이 구경함)
쌍각자궁이네...여기 난소 좀 봐.
환자분, 여기 연탄구멍처럼 난소에 구멍 까맣게 숭숭 난거 보여요? 다낭성난소네...
이선생!? 이선생도 잘 봐둬. 이게 바로 쌍각자궁이야.
하트모양인거 보이지? 그리고 옆에 이거 다낭성난소야. 잘 봐둬"

검진이 끝나고 옷을 입고 상담실로 들어가는 그 짧은 길에
심해속에 나 혼자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고작 생리통일 뿐이었는데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걸까...
내가 그렇게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희귀한 사람이었나?
그럼 그렇게 희귀한 자궁이라면 나 오래 못사나?
왜 대체 나한테 이런일이..."

의사의 말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름 의사는 내게 친절해보겠다며
영문이 휘갈겨진 종이에 내 자궁 모양을 상세히 그리고
이런저런 설명을 했지만
나는 자궁 기형에 난소도 기형인,
기형의 여자. 구경거리의 여자.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여자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아, 이럴거면 엄마랑 같이 올걸...

심해 속에서 위로 헤엄쳐 올라오기 위해
'도대체 왜 나한테...'라는 얼얼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까지 걸어갔던 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을 쓸때만 해도
그때가 어느 계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었는데
집으로 가던 길을 떠올리니
은행잎이 옆 단지 인도에 수북히 깔려있었다.
온통 노란 가을날이었다.



집에와서 병원에서 받아온 지퍼백에 든 진통제는
식탁 위 아무데나 던져놨고, 처음부터 진통제 따위는 받으러 간 적도 없었던 것처럼 약장 깊숙히 쳐박혀 잊혀졌다.
그 이후, 생각날 때마다 네이버 지식인에 들어가서
쌍각자궁과 다낭성난소를 검색했다.
다낭성난소는 자연임신이 되기 힘들고,
쌍각자궁은 임신이 되더라도
임신 유지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됐다.

또, 검색을 할수록 의사의 말이 한가지 틀렸다는걸 알게됐다.
'다낭성난소=연탄구멍 뽕뽕'처럼
내 난소에 구멍이 난게 아니라는 것!

난소에서 건강한 난자 하나를 성숙시켜
배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낭성 난소는 말 그대로 난소 주머니가 많은것이었다.

많은 주머니에서 미성숙한 난자를
여러개 성숙시키는 것이라서
난자의 기능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쨌든 연탄구멍은 아니라는거지.

호르몬 때문에 부수적인 부작용으로
여성이지만 털이 좀 많이 난다거나
비만이 잘 걸린다거나 하는게 있는데
내 몸을 보니 털은 많고 비만은 아니었다.
비만이 심해지면 다낭성난소 경과가 더 심하다고 하니
그건 다행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내 몸의 비밀을 알게 됐다.
자궁과 난소가 쌍으로, 아주 내 임신을 방해하기 위해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선천적인 기형이라는 말에
날 그렇게 낳아준 엄마도 괜히 미웠다.
나 한 번만, 나 그렇게 아플때 병원에라도 한번 데려가주지...

그러나 일찍 병원에 간다고 해서
기형이 정상이 되는건 아니라는 것을 알 나이는 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일찍 접고,
그냥 앞으로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
좋은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너무 늦지 않게 결혼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무조건 운동을 해서 비만이 되지 않기로.

그렇게 이십대 초반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임신과 출산이 어려울 것을 알게되어서
남자친구를 만날때도 내 마음 속 비밀의 우선순위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어렵더라도
같이 노력해주는 사람일 것인가,
혹시나 시부모님 되실 분이
아이를 낳기 어렵다며 날 은연중에 구박하시더라도
나와 우리 가정의 선하고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고
그런 방향으로 날 사랑해줄 사람인가에 맞춰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