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산모의 일기] 남편은 내가 의사복이 많다고 했다

태아를 살리기 위한, 내가 만난 의료진의 노력들

by 난생

남편은 내가 의사 복이 많다고 그랬다.

첫 아이를 주말에 오전 응급 제왕절개로 낳았을 때도
수술할 수 있는 당직의사도 있었지만,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이 가족 캠핑가는 복장으로
아침 9시에 급히 오셔서
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책임져 주신적이 있다.


임신출산 카페에서 유명한 서울 소재 산부인과인데다가
이미 이름이 난 선생님이라서 진료 일정이 매우 바쁜 선생님으로 익히 알고있는데... 모처럼만의 가족과의 휴가를 반납하고 오신 것이 정말 정말 놀랐고,

덕분에 안심하고 응급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출산에 인큐베이터를 구할 수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뻔 했던 아이였지만
어떻게든 인큐베이터 한대를 수소문해서
출산 병원에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입원해
입원 기간동안 층만 오가며 모유수유를 할 수 있게 해준 것.
그게 내 첫번째 의사 복이었다.

남편이 이번에 또 의사 복이 있다고 하는 이유는
지금 쫀득이를 치료해주는 의사들을 보며 하는 소리다.

처음 지역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만난 주치의는
내 상태가 손만 스쳐도 아픈 극심한 배통증에 고열에
일주일내내 하루이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안 좋아보인다는 판단을 했을때
냉정히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줬다.

처음엔 내가 치료가 까다로운 환자라서

날 포기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생님은

끝까지 나에게 최선을 다 해주었다.

유치원 방학중인 큰애를 데리고

혼자 병원에 갈 몸 상태가 아니어서
주치의 외래 진료도 못보고 남편이 퇴근할 때 만나서
일곱시가 다 되어 산부인과 응급실을 찾았는데
마침 진료실에 퇴근하지 않고 남아있던 주치의 선생님이 계셨다.
병원 불은 다 꺼져있고 출입금지 선이 쳐져있어서
당연히 눈인사만 하고 응급실로 올라가려는데
주치의는 진료 시간이 넘어서도
날 진료실로 불러 직접 보고 진찰하고
지인인 내과 의사와 유선상으로 상의해가며

약을 처방해줬다.

이 약을 먹어도 고열이 잠잠해지지 않으면
내일 다시 오라고. 큰병원으로 전원시켜 주겠다고 했다.
진료시간이 지나서 간호사가 퇴근을 한다고 말하자
"그럼 나머지는 나한테 인계하고 얼른가~!"했던
그 말이 그냥 고마웠다.

약을 먹어도 고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큰아이가 방학이라

집에서 아이에게 티비 틀어주고 버티다가
다음날 저녁,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그날은 주치의가 없었고 응급실에 입원해서
오래쓰면 태아한테 안좋다는 타이레놀 대신

수액만이라도 맞고 가야지 싶어서 왔는데
주치의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산모님, 여기 있으면 안돼. 큰병원 가야돼. 내가 지금 서울이라 병원에 당장 가서 봐줄 수가 없어...지금 강남세브란스 전원시켜줄 수 있어. 어디로 갈래. 강남세브란스 괜찮아? 어제 내가 처방해준 약 먹었어? 그거 먹어도 열 나는거지? 약 얼마나 먹었어? 계속 안먹었어? 잠깐만 집이 어디지? 강남세브란스말고 ㅇㅇ대학병원이 더 가깝겠다...거기도 괜찮긴 한데... 어제 응급실도 ㅇㅇ대학병원으로 갔으니까 기록도 있고...집 가까운 병원이 더 좋을수도 있어..잠깐만 누워있어봐. ㅇㅇ대학병원으로 가자. 이제 거기가면 감염내과랑 산부인과 협진할거야. 가서 거기 의사말 잘 듣고 하라는대로만 하면 괜찮을거야 산모님."

그리고 곧 대학병원으로 전원돼서 직접 유명한 교수님을 예약해줬다. 응급의학과 의사와 산부인과 의사 협진이 이루어졌고 응급실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게 간호사가 한명 동행해서 바로바로 상태 설명하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서 진료도 보고, 이런게 전원되면 좋은점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임산부라서 타이레놀 밖에 쓸 수 없었고 검사도 피검사나 소변검사 외에는 CT나 엑스레이를 찍을 수가 없어서 대학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채 금방 퇴원했다. 피검사나 소변검사 독감검사 모두 정상수치였지만 40도에 가까운 고열만 심하게 났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이전 병원 주치의 선생님이 예약해준 유명한 교수님에게 볼 외래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막대한 양의 출혈로 응급상황이 와서 대학병원 분만실로 갔다.


오늘 입원하려면 외래예약 교수님이 아닌, 다른 당직의사를 선택진료해야하고 바꿀 수가 없다고 해서 고민했다.


나중에 내 수술을 할수도 있는데 괜찮은걸까... 나이가 젊어보이기도 했고 대학병원 정식 교수가 아니라서 임상강사라는 직함이 낯설었다.


나와 아기가 위험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새로운 선생님은 나에게 계속 희망적인 말을 해주고, 내 상태를 굉장히 꼼꼼히 봐주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한달만이라도 더 버텨보자며 용기를 주고, 지나가는 말도 다 대답해주고, 대학병원 하면 떠오르는... 시간에 쫒겨서 무뚝뚝하고 말없는 의사 느낌하나 없이 나를 잘 챙겨줬다. 내가 그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희망이 생겨서 버틸 수 있는 자신이 생긴다고 웃어보이자 함께 웃었다.

정말 정말 정말로 고마웠다.
고마운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학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전화가 와서 보니

이전 병원전화번호가 떴다.
급하게 전원되느라 병원비를 미처 수납 못했나 싶어
얼른 전화를받았더니 나를 전원시켜준 내 주치의였다.

지금 상태는 어떤지,아직 고열에 시달리는지,
검사경과는 어떤지, 소개해준 교수 진료는 잘 봤는지

내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앞으로 남은 치료 잘 받으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나를 전원시킨 이후에도 전화로 내 상태를 궁금해하고 챙겨준 의사는 살면서 처음이었다.

의사뿐만 아니라
더이상 희망이 없는줄 알고 절망에 빠져 울던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고 병실을 조용히 비워준 간호사,
소변을 받아주고, 배에 힘이 들어가면 안된다며
내가 먹은 식판을 매 끼 치워주던 간호사
그런 손길 하나하나 모여서 나도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옆에서 보면서
내가 의사복이 많은것이라고 했지만
내가 의사복이 많은게 아니었다.
쫀득이와 인연을 맺은 모든 의료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결과였다.

내 복이라기보다는,
멋진 사명감을 가진 의료진이 된 그 분들의 복이고
나는 그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았던 것 뿐이다.

태양이 때도 쫀득이 때도 느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타인의 관심이 사소해보일지라도 절대 작지않고

그런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나 혼자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없다는 관계의 소중함.



이런 감정을 고위험 임신부가 되면서 많이 느끼고 있고

하루라도 더 나를 버티게 해주는 모든 인연들에게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아이를 키울 때도,
이세상 그 누구의 노동이라도
돈만으로는 지불할 수 없다는 소중함을
함께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