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언가 시작하기를 두려워하고 또 지속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남의 이목과 반응이다.
남들이 빠르게 인정해주지 않았을 때 남보기에 없어보일 때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추진동력을 잃는다.
남의 이목과 반응으로만 일을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트렌디한 감각을 필요로 하는 업에 적합하다. 마케팅이랄지 영업이랄지, MD랄지. 하다못해 방송국도 그렇다.
쨌든 그렇다보니 항상 남의 손에 쥔 것만 바라보고 내 손을 비교하며 자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무작정 나 잘한다 나 사랑해? 나 이뻐? 이걸 못한다. 너무나 나한테조차 엄격하다.
잘될 싹만 두고 자르자는 농부의 마음으로 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놔버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농장은 이제 1개월 차인데 몇십년 공들인 농장보고 난 아니구나 재능없다 하고 농장을 갈아엎으면 농사 안하겠다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닙니까?
어디 평생 듣도보도 못한 불로장생의 씨앗이나 들고와야 농사지으렵니까?
하늘 아래 다른 것은 없다.
이미 다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돌고 돌아 여러 사람 침묻힌 아이템 누가봐도 진부한 아이템 해도 된다 말입니다. 어차피 내가 해도 그사람처럼 안된다고요. 똑같이 지을라해도 똑같이 안된다니까?
유튜브도 그래요. 실시간 라이브 5000명씩 들어오는 네임드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년씩 하던 분들. 심지어 짧은 시간 성장한 사람들은 자본을 투입하며 인력을 갈아넣으며 매일매일 새로운 영상을 고퀄로 올리는 노력을 하는데 나따위 인간은 그만큼의 노력을 한 적이나 있었던가.
결과를 보고 부러워 할 것이면 과정까지 똑같이 해보고나 말할 것이지 하늘에서 그냥 사과가 떨어지는 줄아는 바보천치가 나였다.
어느 유명 운동유튜버가 그랬다. 시청자 1명 2명 있을 때도 재미있게 몇시간씩 운동방송 하고 그랬다고.
나는 시청자 1명 두명을 소중히 여긴 적이 있었던가. 더 많은 사람이 왜 나 사랑안해줘 왜 더 인기가 없어 왜 더 인정받지 못해
왜 왜 왜
언제나 more & more 만을 외쳤지 않나.
북토크쇼에 참여한 사람들은 20명 남짓이었으나 그 참여도는 5000명에 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저자를 위해 열렬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 열심히 연기하는 스스로 장인의 경지에 이르는 배우가 왜 난 되지 못하냔 말이다.
나만 연기할 수 있는 독무대인데!
1명이라도 누군가가 나의 콘텐츠를 소중히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추진동력을 얻는 편이 내 인생을 위해 좋다. 그 한명이 3명이 되고 9명이 되고 90명이 될터이니. 그들이 날 알아봐줄 시간을 줘야지.
마지막에 웃는 자는 똑똑한 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해낸 사람이다.
스스로의 삶에 도취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롯 아큐의 정신승리같아보일지라도 혹은 아큐의 정신승리면 또 어떤가?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살아있는 아큐가 죽은 니체보다 낫다.
내 안에 비판쟁이 니체따윈 곱게 죽여드리고 무엇이든 일단 다시 시작하고 끝.까.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