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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n 30. 2024

우울 아래 숨어있던 두려움

너무 두려워서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웠어


* 제목란의 사진은 천선란 작가님의 '이끼숲'이라는 소설의 한 페이지입니다*






매달 말에 찾아오던 월경이 일주일 일찍 찾아왔다. 

몸이 무겁고 뜬금없이 짜증과 함께 눈물이 핑-도는 날이 늘어서 오겠구나 싶었는데

바로 다음날 시작했고 양이 너무 많아서 입는 옷마다 피가 묻어났다.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해야하냐는 레파토리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중간에 안 해서 좋은 기간도 있었지만...ㅎㅎ)


호르몬의 노예라고 하기엔 월경이 끝난 뒤에도 우울감이 이어져서 당황스러웠다.

눈물은 오히려 울음으로 바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 약속을 취소하기도 했다.

연락이 너무 없어서일까? 몇몇 친구들이 응원과 걱정의 메세지를 보내주었는데

그마저도 답장할 기력이 나지 않아 하트만 눌렀다. (카톡의 하트 기능 감사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나를 너무 미워하거나 탓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우울한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원래'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하고 ㅎㅎ '우울한'이라는 감정 단어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감정은 지나간다.

대신 미루고 모른 척하면 어떻게든 존재를 알리려고 난리칠 뿐.


지금의 나는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 같지만 괜찮다.

본인의 몫을 다하고 나면 자연스레 지나갈 것이다.

왜 우울하냐고, 왜 슬프냐고, 니가 뭘했다고 우울을 논하냐고 

스스로의 감정을 미워하지 말자. 


이유는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라고 안해봤을까?

으쌰으쌰 열심히 해보자고 매일 아침마다 밤마다 다짐하는데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우울의 늪에 빠지는 스스로가 참 답답하고 미웠다.

물어봤다. 왜 눈물이 나는지, 아무것도 못할만큼 힘이 나지 않는지

마음 깊은 곳에서 문장 하나가 올라왔다.



무서워

두려움이었다. 

우울에 가려진 두려움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모르겠어서 무섭고 두려워.

아무 의미도 성과도 없이 끝날까봐 무서워.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실망할까봐 무서워.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가고 있고

1년에 한번밖에 없는 큰 시험에서 떨어졌고 (이건...준비가 부족하긴 했어)

다른 분들과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눈물)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하는데 그것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내가 너무 부족한 것만 같고

.

.

그 외에도 여기에 다 쓸 수 없는 일들이 

다 어떻게 마무리 될까 두려워서 

시작하는 것조차 버거웠음을 깨달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내담자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본질'을 기억하기

결과도 중요하고 좋은 성과를 내면 더 기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기억하는 것이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었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숫자로 평가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스로는 꼭 기억할 것.


설령 아쉬운 결과라고 해도 

외부에서는 '실패'라고 평가한다고 해도

그 행위/시도 자체가 가진 의미를 '나만큼은'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실패 후에도 다음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까






나의 두려움에게 말해줘야지

괜찮아, 두려울 수 있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시작조차 두려울 수 있어.

결과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겠는 마음도 이해해.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우린 영영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워만 하다 끝날거야, 

어쩌면 끝내지도 못한 상태로 힘들어만 지도 몰라.


기억해줘, 결과보다 중요한 건

네가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는가! 란다.

시작했다면 이미 너는 제일 중요한 걸 끝낸거야.

자연스레 오는 다음은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면 돼.


인생은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아.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거 알아?

완전, 완벽, 완성의 한자 완(完)은 너그럽다는 뜻도 갖고 있어.

너그러운 마음으로 실수도 실패도 안고 나아가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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