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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ul 08. 2024

엄마는 타인이어도 나를 사랑할까

모녀관계


오늘은 함께 유튜브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하는 동료 채영 님과 

'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 '당신 엄마 맞아?'를 읽고 이야기 나눴다.

픽션이 아닌 실제 모녀 이야기라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동시에 어려웠다.

온갖 심리학 용어와 논문/책 인용이 난무하는 터라 이해하기 위해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불상사가 발생했기 때문 ㅎㅎ

그래도 워낙 솔직하게 쓴 글이라 (만화책인데 글자가 엄청 많음) 

안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읽고 나서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힘들었다.

채영 님도 내면의 동요가 크게 일어나 일주일정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읽을 땐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읽고 나서 불쑥불쑥 뭔가가 찾아왔다.

그 '뭔가'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고 

영상 촬영 때 무슨 이야길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걱정대로 유난히 침묵이 많은 촬영이었다.


-


언제부턴가 엄마가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존재가 엄마에게 그런 비장한 이유가 되는 게 싫었다.

'나의 탄생이 엄마에게 축복이었을까?'라는 문장을 일기에 쓴 적이 있다.

명백히 알고 있다. 엄마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마는 엄마가 됨으로써 너무나 많은 걸 포기했고 

무엇보다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가장 먼저 놓아야 했다.


"만약에 조금 더 일찍 임신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물어본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대답도 개운하지 않을 것 같달까,

그래도 낳았을 거라고 하면 믿기지 않을 것 같고 (내가 반대해!!)

낳지 않았을 거라고 하면 안도감과 동시에 서운함이 밀려올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엄마가 나를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미 낳았으니까, 나는 이미 이렇게 살아버렸으니까 

거짓말이라도 낳겠다는 말이 듣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항상 엄마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진솔이처럼 자유롭게 사는 애가 어딨냐고 하겠지.

실제로 내가 10대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은 

엄마와 아빠를 마구잡이로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살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표현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밟으며 살고 있다.

너무 실망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살지도 않는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마음의 병을 오래 앓고 나서 (앓고 있으면서도)

그걸 하나의 이력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엄마에게 이해받고 싶고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석사를 하고 박사까지 하는 이유에는 

그래도 어디 가서 "요즘 딸 뭐 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 우리 딸 공부해~, 석사 하잖아~, 박사 하잖아~"라는 

대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는 타인이었어도 나를 사랑했을까?


내가 정말 지금 하는 노력도 하지 않고 

세상이 말하는 '실패'를 거듭하고 

엄마가 바라는 모습과 완전히 엇나간다면

엄마는... 그래도 나를 사랑할까?


병력을 이력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엄마가 받게 될 질문들의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지금보다 훨씬 어지러운 삶을 살게 되어도 

엄마는 나를 사랑할 수 있어?


엄마와의 완전한 분리를 바라면서도

끝끝내 엄마의 바운더리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나는

사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가끔은 정말 모든 게 버겁고 끔찍해

나의 탄생이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게 우리가 겪어온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도 

어느 하나 내 삶을, 생명을 귀하다 여길 수 없게 해.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지.

내가 엄마의 삶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어.

근데 그런 마음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고

그게 엄마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잖아.

엄마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존재가 나였고

포기와 희생에 확인 도장을 찍듯이 태어난 게 동생이었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수십 수백 번을 말해도 

우리는 그 사실을 도무지 부정할 수 없어서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싶었어. 

엄마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우리가 영영 불행으로 남지 않았으면 싶어서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고 싶었어.


가끔은 그냥 로봇이 되고 싶었어.

자아가 없었으면 했어.

엄마가 바라는 대로 살고 싶었고

엄마가 버리고 가도 괜찮은 무감정의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는 바보 같은 삶을 살아도

그게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님을 알고 있어?


나대로 사는 게 엄마를 배신하는 일인 것 같아서

내 선택이 엄마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 것 같아서

여전히 무서워.


차라리 내가 딸이 아니었으면 편했을까?

근데 그랬으면 지금까지 받은 사랑도 받지 못했을 테니까

편해도 슬펐겠다.


엄마,

나는 요즘에도 그때 꿈을 꿔.

노란 수건을 덮은 채로 

도망가는 차 뒷좌석에 누워서 바라보던

창 밖을 떠올려. 엄청 빠르게 달렸었는데 ㅎㅎ

그때 우리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엄마에겐 절대 하지 못할 말들을 쓰고 나니 

조금은 확신이 생긴다.


과거로 돌아가면 나를 낳지 않겠다고 답해도

그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거야. 

그냥, 그 질문 앞에서만큼은

엄마가 나보다 엄마를 생각하면 좋겠어.


혹시나 다음 생이 있다면

엄마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

그게 내가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엄마가 바라는 대로 

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좋겠다.

.

.

.

엄마도 그렇게 나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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