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집콕 먹부림
부산에서 친구가 왔다. 사실상 코로나를 뚫고 서울로 입성한 친구를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서로가 너무도 고팠다. 우리 언제 만났었지? 네 얼굴이 기억이 안 나. 이런 대화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다가 큰 맘먹고 가평 숲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그마저도 광복절 이후 취소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다 그녀가 서울로 날아왔다.
자중해야 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히 알지만 다들 속으로 한 번쯤은 '나만 집에 있나 봐' '다들 저렇게나 놀러 다니는데 나만 잘 지키나 봐'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헬스장이 문을 닫게 되니 도심의 산이 산스장이 되었고, 한강은 지금 돗자리 깔고 치맥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라고 한다. 거봐 나만 이렇게 집에 있는 거였어.
코로나 블루를 의심해볼 만큼 우울하던 나에게 선물과도 같은 방문이었다. 사실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것은 내 쪽이라 미안한 마음이 크기도 했다. 대신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끼어들 틈이 없도록 집에만 있기로 약속을 했다.
금요일 저녁
친구를 픽업해 마트에서 집콕해있으면서 먹을거리를 사고, 수산시장에서 광어와 전어회를 포장했다. 이동하는 차에서조차 마스크를 단 한 번도 벗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같이 있다는 것에 신이 났다. 먹는 것에 늘 최선을 다하는 모임이지만 이번은 진짜 진실되었다. 매 끼니 먹을 것을 미리 정하고, 그에 맞게 딱딱 장을 봤는데 금요일 저녁밥은 매운탕에 최고의 진심을 담았다.
경상도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은 다른 지방에서 먹는 매운탕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로 표현할 수 없는 다채로운 향과 맛이 경상도에는 존재한다. 마트에 가자마자 우리는 매운탕의 풍미를 살려줄 방아잎과 산초가루를 샀다.
방아잎은 깻잎보다 더 길쭉길쭉하게 생긴 향이 강한 식물인데 누린내나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먹을 때 함께 곁들이면 최고의 조합을 자랑한다. 전남이나 경상도 지방에서는 파전에 넣기도 하고, 특히 매운탕에 방아잎을 넣으면 깻잎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긋하고, 개운한데 동시에 국물을 묵직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추어탕을 먹을 때 넣는 산초가루를 왕창 넣으면 국물이 더욱 강렬해진다. 산초 역시 생선 요리와 궁합이 좋은데 특히 민물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역할에 탁월하다. 산초가루는 약간 후추와도 비슷해 매운탕을 알싸하고 칼칼하게 만들어준다.
향이 강한 방아잎과 산초가루를 넣었으니 미나리나 쑥갓같이 향이 나는 채소보다 무, 호박, 두부로 매운탕을 마무리한다. 너무 흥분해서 먹어치우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 비주얼을 남겨놨어야 했는데 ㅠㅠ 서울에서 먹은 가장 완벽한 매운탕이었다고!
토요일 점심
나는 한 번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은 반드시 먹어야 일주일 내내 노래 부르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최근 노래 부른 대상은 '만두'였다. 고향만두를 전자레인지에 왕창 쪄먹는걸 가장 좋아하는데 혼자 사는 입장에 2+1 하는 마트 상품을 사기엔 양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1 봉지를 사기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놓고는 만두를 빚어먹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제사가 많은 우리 집에서는 한 7-8년 전까지만 해도 동그랑땡을 만들어서 상에 올렸다. 필요한 모든 재료를 잘게 자르고, 채에 거르고 손으로 동글동글 빚으면 끝인 음식이라 만두도 동그랑땡을 피에 싸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비계를 적당히 섞은 간 돼지고기에 물기를 꽉 짠 두부를 넣고, 당면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고 종종 썰어서 합체시켰다. 어차피 쪄내는 음식이니 당면을 잡채 하듯이 오래 삶을 필요는 없다. 약간 설익은 상태여야 나중에 만두를 먹을 때 당면이 오동오동 씹힌다. 숙주, 부추, 파, 버섯까지 잘게 썰어 넣고 간장과 후추, 소금으로 간을 한다. 생고기가 있으니 최대한 피해서 만두소를 먹어보는데 적당히 간이 되어있어야 나중에 물기를 머금고 찜통에서 나왔을 때 맹숭맹숭하지 않다. 5줄 정도의 글로 쓰니 별거 아닌 과정 같지만 모든 재료를 데치고, 썰고 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만두피는 차마 만들 용기가 안 나서 시판 제품을 사용했는데 거의 대부분 냉동상태라 상온에서 2-3시간 정도 녹여야 한다. 귀찮다고 덜 녹은 만두피로 만두를 빚으면 끝이 쩍쩍 갈라지니 반드시 해동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기 전에 종지에 물을 떠 온다. 만두피에 소를 올리고 피 가장자리에 물을 묻히면 짝짝 잘 달라붙어 예쁜 만두를 만들 수 있다. 블로그를 보니 만두피를 꽉 다 붙여버리면 찔 때 터진다고 숨구멍을 적당히 남겨두라던데 욕심부리지 않고 속을 적당히 채우면 터질 일은 없어 보인다. 반으로 접는 만두도 만들었다가 끝부분을 비틀어서 포자만두도 만들어보고, 비비고 만두 모양을 따라 하기도 하고, 친구가 공수해온 어머님 김치를 다져 넣어서 김치만두를 만들기도 했다. 김치만두가 신의 한 수!
만드는 것에 정성을 쏟아부은 만큼 찜기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만두 초보라 오래 찌는 바람에 돼지고기가 너무 익어버려서 촉촉함이 줄고 퍽퍽함이 추가되었더랬다. 인터넷 상으로는 5-7분 정도라고 하니 만두소를 얼마나 묵직하게 구성했는지에 따라 2-3분 정도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만두 빚기는 다 먹고 나니 거의 3시가 넘었더라. 만두는 이제 내후년쯤에나 먹자고 다짐했다. 앞으로 길가다 손만두 전문점이 보이면 고생하신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을 정도였다.
토요일 저녁
만남을 약속했을 때부터 토요일 저녁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육식파 인물답게 마트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이 정육코너였고,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져있는 삼겹살을 고르고, 뭔가 아쉬워서 어슬렁거리다가 새우가 저렴하게 나왔길래 골라잡았다. 나는 분명히 한 번 먹을 만큼만 사자고 했지만 계산대 위에는 3번 정도는 너끈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새우가 박스째 올라와 있었다.
맥시멀 리스트인 우리 집에는 조리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는데 에어프라이어는 사실 기본템에 속하니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킹크랩이 3마리가 들어가는 엄청 큰 솥도 있고(만두 찔 때 썼음), 에어프라이어가 바삭함이라면 고기를 촉촉하게 구워주는 통돌이도 있다. 1인 가구 치고 짐이 많은 이유가 친구들이 밥을 먹으러 자주 오는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원들의 또 다양한 입맛에 맞춰 여러 가지 핫한 아이템... 에유 그냥 주인장이 좋아해서 사모은 아이템들이다.
삼겹살은 버섯, 통마늘과 함께 통돌이에 돌린다. 고기가 익는데 시간이 더 걸리니 고기를 먼저 넣고 붉은기가 사라지면 채소를 넣는다. 좀 더 아삭한 채소를 먹고 싶다면 고기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넣어야 한다. 특히 마늘은 일찍 넣으면.. 닭백숙에 있는 친구처럼 흐물거리게 된다.
새로 나온 통돌이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1년 전쯤에 구매한 나의 통돌이는 기름 빼기가 참 어렵다. 기름통 근방에 걸리적거리는 어떠한 것도 없어야 안전하게 빼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의 부드러운 맛을 위해 반드시 통돌이를 이용한다. 고기의 크기가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코로나를 뚫고 서울로 온 녀석의 입이 무척이나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대신 한 쌈에 2-3개씩 넣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더랬다.
새우는 허브솔트로 1차 간을 하고, 예쁘게 줄지어 에어프라이어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군데군데 버터를 잘라 넣고, 파슬리 가루로 마무리한다. 200도 15-18분이면 소래포구 부럽지 않은 환상의 새우구이가 완성된다.
에어프라이어는 새우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우요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새우 머리는 먹지 않고 남겨뒀다가 나중에 버터에 더 볶아서 바삭하게 먹기도 하는데 저 날은 너무 배가 불러서 찢어지겠다 싶어 참았다.
그리고 도토리묵과 꼬막을 한꺼번에 무친다. 묵과 꼬막은 양념이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왠지 강릉에 있는 엄지네 꼬막이 생각나서 간장과 고춧가루만으로 간을 했다. 대신 깻잎, 부추, 청양고추, 파를 송송 썰어 넣어서 언제든지 밥에 스윽 비벼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막걸리 생각이 간절한 거 보니 성공적이었다. 참고로 우리 넷 중 술을 마시는 사람은 둘 뿐이고, 주종도 청하로 정해져 있다. 다른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 사랑해요 청하씨 ♥ 그밖에도 파인애플을 구웠고, 표고버섯도 고소하게 볶았다. 생각해보니 진짜 하루 종일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자가 격리하고, 목구멍을 열었다.
일요일 아침 겸 점심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동네 설렁탕집에 갔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배추가 별로였는지 김치 맛이 예전만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2박 3일 일정 동안 쉴 새 없이 먹었다. 친구들이 뿔뿔이 집으로 가고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몸이 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을 먹는 시간 외에는 음식 준비하느라 작은 집이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니 나름 운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도 먹느라 고생했다.
추가로 먹는 것에 늘 진심인 우리의 지난 진심을 살짝 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