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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Sep 09. 2020

쉿, 내가 브런치 하는 건 비밀이야.

작가라고 불러줘서 감사합니다.


친구가 우리 집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친구는 거실 테이블에서 일을 하고, 나는 내 방 책상에서 브런치에 올릴 글을 골똘히 쓰고 있었는데 하필 또 그 친구와의 에피소드를 담은 글이라 혹시나 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뒤를 계속 주시하면서 글을 썼다. 참고로 글 내용이 욕은 아니다 ㅋㅋ

아니나 다를까 몇 번을 기웃거리더니 마지막 참에는 발소리를 줄이고 몰래 들어와 타자를 두들기고 있는 내 뒷모습을 한참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소오름. 인기척이 느껴져 얼른 alt+tab 하고는 뒤를 돌아봤더니 "뭐하는데!!!" 하며 뭘 하고 있는지 엄청 궁금해했다. "어, 일기 쓰는 중이야" 대충 얼버무리고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왠지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중이라 말했다. 


다행히 브런치를 알고는 있었는데 그냥 네이버 블로그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길래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신청을 하고 통과되어야 정식으로 글을 쓸 수 있고, 사람들이 내 글을 볼 수 있게 되는 거라 설명해줬더니 "작가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작가라는 말이 참 설레면서도 낯부끄럽다. 사실적으로 작가는 아닌데 쩝. 책을 출판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를 써야 작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나는 그냥 오늘 하루를 지내며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들이나 개인 SNS에는 쓸 수 없는 뻘글을 올리는데 나도 작가라 할 수 있을까?


본인이 쓰는 글에 최대한 개인정보를 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누군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이미 사는 동네, 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친구나 동료들과 사이는 어떤지 등등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몇 편의 글만 읽어도 이 브런치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챌 정도로 글에 내 이야기를 많이 녹여내고 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직장 동료에게 느낀 불만을 쓴 것도 있고, 자아를 찾는답시고 써갈겨놓은 글을 회사 대표님이 볼 수도 있고, 친한 친구라고 썼는데 본인 이야기는 없어서 서운할 수도 있고, 얽히고설킨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며 눈치 볼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다 담지 못하는 내용도 있다. 누군가에게 분명 상처가 되는 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브런치 하는 건 비밀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2020 젊은작가상 수상품집을 보고 '제사'와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조회수가 3만을 넘었었다. 그동안 라이킷이나 댓글이 거의 없어서 사실 좀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얼떨결에 3만이라니 소리를 꽥 질렀다. 그 글은 나는 제사나 명절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이는 유일한 날이라 좋다는 개인적인 감정을 소회한 것인데 대여섯 개의 댓글이 나를 굉장히 아프게 만들었다. 다들 딸이자 며느리의 입장인 분들이었고, 날카롭게 쓰인 댓글을 보니 간담이 서늘해져 발행을 취소했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 이건 혼자 쓰고 보는 일기가 아니다. 단어 선택과 문장의 뉘앙스를 명확하게 하고, 분쟁이 될만한 소재를 최대한 피해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비밀로 하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는 일기를 써왔다. 거창할 것도 없이 하루에 있었던 일을 주르륵 나열하거나 그 날 있었던 분통 터지는 사건을 쓰면서 저주를 내리는 데스노트도 됐다가 반성문에 가까운 자아성찰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몇 년치 일기가 모이니 심심할 때 보면서 '그래, 저 때 그랬었지' '어유 쟤는 몇 년 전에도 여전히 나쁜 애였구나'하며 감정에 빠져들곤 했는데 문득 일기를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문득이었다. 그리고는 잊고 살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작가님들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실제로 관련된 글을 계속 보다 보니 '브런치 하다 출판 계약' '출판 제의가 왔습니다.' 이런 글들이 계속 나를 따라오는데 작가님들의 출판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계획적인 글쓰기를 해야겠구나 느꼈다. 진짜 책을 내보고 싶다면 집필 계획서를 써봐야겠다. 사실 어떤 출판사에서 그냥 개인의 일기장을 책으로 엮어줄까 내가 안네도 아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을 해볼 테다. 뭐 누가 내주지 않으면 나라도 내 돈으로 책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학교 후배는 영감을 줬던 문장들을 엮어 '나를 움직인 문장들'이라는 책을 만들어서 자신의 서른 살 생일에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또 다른 학교 후배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그동안 본인 인생에 있었던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내더니 얼마 전에 출판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가 동경하는 마케터인 이승희 님도 본인의 기록을 엮어 '기록의 쓸모'라는 책을 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뭔가 두근두근거린다. 브런치에 썼던 글과 일기로 남긴 괜찮은 내용을 다듬어서 개인 출판을 해볼까? 그치만 여전히 브런치를 하는 건 비밀이다.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 숲이기 때문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치는 소중한 공간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다. 새벽에 갑자기 '이거 내 얘기니?' 이런 카톡 받고 싶지 않아. 그래서 쉿 비밀이야. 내가 브런치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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