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무렵부터 시작해 지금 내 몸에는 작은 타투 4개가 새겨져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는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용기가 안 났고, 생각보다 비싸서 망설여졌다. 타투이스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며 지켜보다 '이거다!' 싶은 도안을 발견했다.
타투는 작가가 이미 그려놓은 도안을 그대로 하거나 약간 변형해서 받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그림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의뢰할 만큼 번뜩이는 나만의 상징이랄 것도 없고, 골똘히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만약 하게 된다면 우리 집 고양이 앨리의 모습을 새겨야지 싶었다. 집고양이 평균 수명이 15~20년인걸 고려하면 앨리는 벌써 다섯 살이니.. 몸에 새겨놓으면 지금처럼 힘들 때 앨리를 보고 조잘거리는 것처럼 앨리가 없더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문득문득 말고 쭉 여전히.
어려울 줄 알았던 타투 예약은 생각보다 쉬웠다. 가장 어려운 건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작업 날짜 잡는 게 제일 어려웠지. 하고 싶은 그림, 위치, 크기, 참고사진 등 필요한 내용을 알려주면 일정을 조율하고, 금액도 확인하고, 예약금을 보낸다. 약속한 날 며칠 전에 도안을 보내주는데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조율한다. 이렇게 사전 준비 끝!
본 타투 도안의 저작권은 타투이스트에게 있습니다. (Instagram @tatooist_arar)
왼쪽 팔 접히는 부분 아래쪽에 첫 번째 타투를 했다. 일상생활하면서, 키보드를 치면서 자주 눈이 가는 위치에 하고 싶어서 결정했다. 처음 타투샵에 갔을 때 너무너무 떨렸는데 스튜디오에 고양이 3마리가 있어서 뭔가 운명인가 싶었다. 현장에서 잉크를 묻힌 도안을 원하는 위치에 붙여서 거울을 보고 위치를 정하는데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팔다리면 접어보고, 손가락이면 움켜쥐어도 보고 자유자재로 움직였을 때 어떤 방향이든 마음에 들면 통과다. 나는 네 번의 타투를 하는 동안 이 과정을 거쳤음에도 위치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여전히.
침대에 누워 타투이스트가 타투를 하는 부위를 굉장한 힘으로 압박하고 지이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고통이 시작된다. 얇은 라인을 그리는 것은 그냥 꼬리빗 뒤 뾰족한 부분으로 살을 살살 긁는 것과 비슷해서 아프기보다 간지러웠는데 색을 채울 때는 벌떡벌떡 일어나고 싶은걸 꾹 참았다. 연신 '우와우와 오오오 선생님'을 내뱉으면서 견뎠는데 잉크도 채우고 중간중간 모양도 체크해야 해서 30분 내내 들들 거리는 건 아니라 쉬는 텀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팔을 접을 때마다 앨리 얼굴이 줄었다가 늘었다가.
첫 번째 타투에서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역시나 위치다.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이지만 피부가 유연한 부분이고, 접히는 위치라 팔을 쫙 펼치면 앨리 얼굴이 오이처럼 길어지고, 팔을 오므리면 빵떡같이 너부데데해진다. 지금은 색이 빠져서 약간 흐릿해졌는데 처음 했을 당시에는 어찌나 하루 종일 저거만 보이던지.. 관리하기도 꽤나 까다로운 부위였다. 샤워할 때 바세린을 덕지덕지 바르는데 팔을 안으로 굽히면 팔뚝까지 바세린이 묻어서 샤워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 그렇지만 한 달만에 두 번째 타투를 예약했다.
본 타투 도안의 저작권은 타투이스트에게 있습니다. (Instagram @nemo.tattoo)
타투이스트 네모님은 반려동물 타투를 실사처럼 작업하는 방면으로 아주 유명한 분이셨는데 앨리는 보다시피 삼색냥이답게 무늬가 특이해서 좀 지저분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레터링으로 바꿨다. 당시에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분노조절장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화를 참을 수 없는 시기였는데 덩달아 혈압도 높아져서 병원에서 깊은 심호흡을 하면서 요동치는 감정을 좀 다스리는 게 좋겠다고 한 말에.. Deep Breath라는 단순한 결정을 했다.
스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할 때 손을 자연스럽게 무릎 쪽으로 가져가 손바닥이 하늘을 보게 하는데 그때 딱 보이는 위치로 정했다. 위치 상으로는 4개의 타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나름 병적인 히스테리를 해결해줄 것만 같은 주문 같은 의미이기도 했고.
이 레터링 타투의 치명적인 실수는 폰트의 굵기! 도안을 고를 당시만 해도 그냥 눈에 예쁜 걸 골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색이 바래지는 걸 보니 좀 더 두꺼운 걸 했으면 색이 빠져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물론 눈썹 문신과 같이 타투도 리터칭을 할 수 있어서 다시 하면 되는데 그건 또 묘하게 인위적인 것 같아서 빛바랜 글자를 유지하고는 있다. 아픔의 강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두꺼웠다면 훨씬 아팠겠지.
본 타투 도안의 저작권은 타투이스트에게 있습니다. (Instagram @tattoo_q)
그렇게 조막만 한 타투 2개를 하고 나니 거울을 볼 때마다 허전한 구석이 보였다. 그래서 타투를 개미지옥이라고 하나보다. 뭔가 채워야 할 것만 같은 강박적인 느낌. 그래서 채우려고 한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타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후회스러웠던 부분을 경험 삼아 도움을 주려고 도안이나 타투이스트 SNS를 찾아보다가 찰떡같은 도안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세 번째 타투를 예약했다.
지금까지 타투가 앙증맞은 사이즈였다면 팔뚝에 좀 더 큰 모양을 넣을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다양한 사이즈의 도안을 여기 붙여보고 저기 붙여보고 고민하다가 가장 큰 도안을 선택했다. 이것 역시 우리 집 고양이 앨리의 그림이다. 원래 도안은 강아지였는데 고양이로 바꾸면서 앙증맞게 수염도 넣어주셨다.
아팠다. 진짜 아파서 까무러칠뻔했다. 사진처럼 아웃라인의 굵기 자체가 이전과 다른 타투인데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작업 전에 분명히 아플 거라 경고하셨는데 전 경험자인걸요? 어어??? 으에에에엑 오매오매 잠시만요 선생님 소리를 질렀다. 아파서 움찔거리는 바람에 작업 시간도 좀 늘어났던 것 같다. 타투를 끝내고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심장이 팔뚝에서 뛰는 느낌이었다. 버스 타러 갈 정신도 없이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튀었다. 팔뚝이 둑흔둑흔.
아픈 만큼 마음에 들었다. 제법 크기가 커서 조금 짧은 반팔을 입으면 보이는데 얼핏얼핏 보이는 모양이 또 그렇게 기분이 조크든요. 대신 얼핏얼핏 주변 시선도 늘어난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수많은 시선이 내 팔뚝에 꽂힌다. 예뻐서일 수도 있고, 신기해서일 수도 있고, 싫어일 수도 있고. 타투를 한 것도 내 개인의 취향이니 그걸 쳐다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도 개인 취향이라 존중한다. 타투를 하고 나니 요상하게도 타투한 사람들이 더 잘 보인다. 작은 타투도 눈에 잘 띄어 유심히 보게 된다. 오오 나도 저기에 해볼까? 더 이상 마음이 동하는 도안이 없는데..
본 타투 도안의 저작권은 타투이스트에게 있습니다. (Instagram @tattooist_urban)
찾았다! 줄곧 팔에만 해오다가 발목에도 예쁜 친구가 있으면 해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쓰고 보니 중독자 같은 느낌이네..) 발견했다. 다들 코로나 때문에 찍어둔 여행사진을 보면서 여행의 감정을 되새김질하고 있는데 나는 올해 1월 발리에 다녀왔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생겼습니다~ 하는 시점이라 여행을 취소하거나 걱정되는 그런 것도 없었는데 발리에 있을 때 우리나라의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약간 현실감이 떨어진 여행이기도 했다. 친구들은 올해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했는데 니가 승자라며 추켜주는데 발리가 너무 좋았어서 올해 꼭 다시 가려고 했는데 못 가게 되니 사진만 쳐다볼 수밖에. 해변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비치 클럽에서 여유롭게 볕을 쬐는 사람들 사이로 야자수 타투가 번쩍 들어왔다. 그래 다음에 타투를 하고 싶으면 야자수로 하자!
퇴근 후 홍대까지 가서 왼쪽 발목 바깥쪽에 야자수를 새겨 넣었다. 분명 거울로 봤을 때는 대칭도 잘 맞고 좋았는데 역시 나의 덤벙거림과 노섬세함이 문제였다. 발목이라 내가 하루 종일 쳐다보는 부위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뭔가 묘하게 수평이 안 맞고, 나는 왼쪽 다리를 꼬는 사람이라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했으면 더 예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후회스러움 발생!
더 이상의 타투는 없다고 약속하라는 친한 친구에게 일단 올해는 더 이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거울을 볼 때 일부러 빈틈을 찾지도 않고, 굳이 SNS에서 타투 도안을 검색하면서 스크랩하지도 않고 있다. 이대로 만족스럽다. 타투를 하면 그 모양 그대로 살을 파버리겠다는 엄마도 생각보다 큰 탈없이 받아들였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형제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등짝을 한 대씩 때렸지. 조카들도 다이소에서 파는 스티커인 줄 알고 연신 침을 묻혀 문질러본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어서도 예쁠까? 피부가 노화되면 타투도 자글자글해지지 않겠니? 걱정 반 잔소리 반 섞어가며 말하는데 할머니가 되어도, 타투가 쪼그라들어도 그건 내 모습이지 내 선택이고. 그 부분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할머니가 되어봐야겠지만 ㅋㅋ
예전에는 타투가 조폭의 상징이라 여겨져서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고, 지금도 팔다리 가득 까맣게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면 나도 위압감이 든다. 나는 위압감을 들게 하거나 내가 우쭐해 보이려고 타투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럴 거면 이렇게 앙증맞은 녀석들이지도 않았겠지.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를 표현하는 액세서리. 물론 빼고 갈아 끼울 수 없이 평생 착용해야 하지만. 그래서 너무 의미 있는 것을 새기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매일 쳐다보고 있으면 흔해지고 퇴색된다고.
후회하지 않는 타투는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위치를 잘못 정해서 후회하고, 친구는 남편 눈치를 보느라 너무 안 보이는 위치에 해서 후회한다. 좀 더 크게 할걸, 좀 더 작게 할걸 후회도 다양하게 한다. 그리고 진짜 타투를 한 것 자체를 후회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결혼할 사람의 집에 인사를 갔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혀 차는 소리를 들을 때는 물론이고 부득이하게 지워하는 경우가 생길 때는 더욱더.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시간과 돈 그리고 아픔이 배로 든다고 하더라.
레이저로 지우는 것 밖에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타투를 하려고 하는 사람도, 타투를 해주는 작가도 모두가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타투를 바라보는 타인도 시선을 신중히 해야 한다. 올바르지 않은 시선이 진짜 후회스러운 상황을 낳을 수도 있다.
결혼에 별 생각이 없는 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을 때 타투를 가려야 할까? 생각해봤는데 신부 팔뚝에서 고양이 타투가 번쩍이면 너무 멋있을 것 같다. 쿨하게 입장해서 신랑과 인사할 때 맞절을 하지 말고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힙합퍼처럼 어깨를 튕기며 인사를 해도 좋겠다. 할머니가 되어도 타투를 가리느라 걱정하는 순간보다 멋있게 입장하는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