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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Sep 21. 2020

코로나 시대 유일한 외출, 당근마켓


얼마 전 당근마켓에 올려둔 샴푸를 팔러 가는 길에 찍은 노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내 사진의 컨셉은 활활 타오르는 노을이었는데 댓글은 오로지 '당근마켓' 이야기뿐이었다. 


저도 오늘 2당근했어요!! :-)

내꺼는 왜 안 팔릴까? 너무 비싸게 올렸나?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줄임말인 당근마켓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서비스이다.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가 중심이었던 중고 거래 시장에서 최근 월 사용자 1천만 명을 돌파하며 업계 1위로 자리매김했고, 쇼핑앱 카테고리에서 쿠팡을 뒤쫓고 있는 2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퇴근시간 지하철역 주변에서 있으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사람 한 두 명쯤은 꼭 마주친다. 내가 당근마켓을 몰랐을 때는 잘 몰랐는데 당근마켓의 묘미를 알아갈수록 우리 당근이들이 눈에 띈다. 앗, 저 사람도 혹시? 열명 중 여덟은 종종거리며 서있다가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물어본다. 혹시 당근마켓... 아, 네! ^^

사람들은 당근마켓에 왜 이렇게 열광할까?



몇 해 전, 친구 생일 선물로 국내에서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운동화를 사주려고 중고거래를 했다가 된통 당하는 바람에 사이버수사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차가운 느낌의 경찰서 한편에서 진술서를 쓰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 나서 나도 당황, 경찰관님도 당황. 이십 얼마의 크다면 큰돈인데 운동화를 사기 친 그놈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고, 청주 어디쯤에서 검거되었는데 피해액이 자그마치 억대였고, 이십 대 초반의 어리숙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최근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당근마켓과 관련된 사기나 범죄 기사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내가 경험한 '당근마켓'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하게 사고파는 것이다. 


안전거래는 본인이 조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지만 당근마켓은 채팅으로 거래 날짜나 장소를 정하고, 만나서 현금거래를 하는 것이 기본이라 내 입장에서는 돈을 먼저 보내라, 안된다 택배를 보내고 송장을 보내라, 안전거래를 하자 이런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단 안심이 된다. 


물론 최근에는 편의점 반값택배같이 싸게 택배를 보낼 수 있는 방법도 많아서 물건을 판매한다고 올려놓으면 종종 택배거래를 문의하는 사람이 있는데 파는 사람 입장에서 박스 찾고, 포장하고, 편의점 가서 보내고 하는 일도 노동의 일부라 꺼려지는 게 사실이더라. 네에 맞아요. 귀찮아서 그래요.


그리고 당근마켓에는 광고가 거의 없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내가 원하는 물건이 있나 검색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광고 게시글이 있는지. 10페이지를 넘겨도 물건을 매입한다는 광고성 게시글뿐이다. 게다가 한 사람이 여러 개를 올릴 수 있으니 그 수가 무지막지해서 물건 구하는 일을 빠르게 포기하게 된다. 


당근마켓에서 판매상품을 보다 보면 중간중간 지역광고가 뜨는데 그것 또한 내 생활 반경 안에 있는 것들이고, 기존 상품 판매글에 가격만 없을 뿐 모습은 똑같아서 거슬리지 않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지역광고가 가끔 요긴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나 또한 필라테스 광고를 보고 상담을 하러 갔다가 지금 두 달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구경하다 보면 광고스러운 판매글도 있다. 이렇게 업자스럽게 글을 쓴다고? 쇼핑몰 상세 설명에나 있을 것 같이 하시면 되세요~ 같은 말투로 올라온 글을 보면 뜨악스럽다가도 그분의 판매내역을 보면 고추장도 팔았다가 전기밥솥도 팔았다가 한 것을 보고 한시름 놓기도 한다.



당근마켓이 이제는 단순히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행동에 그치지 않고 '당근마켓을 한다'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를 넘어 생활에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집에 굴러다니는 물건을 보면 자연스럽게 당근마켓으로 거래를 하고, 가격을 책정하기 애매한 것은 무료 나눔 한다.

무료 나눔의 대상도 다양하다. 물김치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나눔하시는 분도 있다고 하니 이것이 K-나눔이다!


팔아야겠다 생각한 물건을 보면 파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팔 것을 찾아 집을 헤집어 놓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고팔고 나누는 것에 심취했다. 단순히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나의 추억이 깃든 물건이 새로운 주인에게 가서 얼마나 또 가치롭게 사용되고, 얼마나 많은 추억을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잠정적인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나게 된다. 


맥시멀 리스트의 대명사인 나는 1인 가구임에도 이사할 때 늘 이삿짐 아저씨에게 짐이 참 많다는 소리를 듣는데 당근마켓을 시작한 이후로 하나둘씩 비워가는 재미를 알아가게 되었다. 언젠가는 쓰겠지 싶어서 구매한 것들과 싸다는 이유로 구매한 대량묶음상품들로 미어터질 것 같은 창고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느낌이 왔다. 비우는 삶도 꽤나 풍요롭구나.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본 떡볶이 가게 사장님의 무료 나눔 글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떡볶이를 계속 만들어둔 사장님은 마감시간에 팔리지 못한 음식을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사람들은 마감시간에 맞춰 무료로 떡볶이를 가져왔겠지?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는 다음에 다시 가서 그때는 꼭 사 먹자 생각했겠지? 떡볶이를 무료로 받아오면서 집에 있던 사과를 건네주거나 튀김은 돈을 주고 사 오거나 했겠지?


당근마켓의 바닥에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이웃 간의 정에 대한 기조가 있다. 우리가 아는 이웃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었지만 당근마켓에서 만난 이웃은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1도 모르는 이웃이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당근마켓을 한다는 것으로 묶인 새로운 개념의 이웃이다. 그러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먹고, 처지가 딱한 사람에겐 금액네고도 해주는 모바일 시장에서 상상도 못 한 '정'이 당근마켓에는 있다.


요즘 들어 샤워할 때마다 머리가 숭덩숭덩 빠지는 느낌이라 탈모방지에 좋은 샴푸를 샀다. 써보니 너무 마음에 들어서 샴푸를 갈아타려고 하니 쿠팡에서 구매한 4개 세트 미쟝센 샴푸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고민하다 당근마켓에 2개 7천 원에 올렸더니 채팅이 왔다. 약속시간에 맞춰 구매자를 만나 샴푸를 건네고, 현금 7천 원을 받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 다이소에 들러 만 오천 원어치 쇼핑을 하긴 했지만 안 쓰는 물건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뿌듯하고 기분 좋은지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오늘의 집'만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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