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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Oct 07. 2020

남의 시선으로부터,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는 아니지만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 똑똑한 언니와 남동생과는 다르게 늘 걱정만 끼치는 아이였다. 사고 쳤다고 표현할 정도로 거한 사춘기를 보낸 건 아니었지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자식이었고, 지금도 모두가 결혼해 가정을 꾸렸는데 나만 혼자인 게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나만. 꼭 나만.


언제부터였을까? 사는 게 답답하다고 느낀 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점점 심해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찾는 게 먼저일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찾는 게 먼저일지 잘 모르겠다. 아 테스형..!!


돌이켜보면 사랑받기 위해 늘 발버둥 친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기를 한 게 맞다. 집에서는 꾸러기이지만 부모님 일손을 가장 잘 돕는 착한 딸을 연기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재미있고 위트 있는 사람이 되려 했고, 회사에서는 위트에 실력까지 겸비한 동료로, 후배에게는 든든한, 선배에게는 믿음직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대학시절 들었던 '항상 착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가 참 충격적이었다. 사실 그 뒤에 한 말이 더 충격이었는데 대충 니가 그렇게 착한 척하니까 우리가 나쁜 사람 역할을 해야 한다는 뉘앙스였다. 회사 동료는 술자리에서 나를 두고 의뭉스러운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앞에서는 하하호호 웃지만 뒤로는 호박씨도 까고, 뒷담화도 까는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나는 완벽하게 메소드 연기하고 있노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만 모르고 다들 알고 있었다. 내가 착하고, 재미있고, 친절하고, 쿨하고, 트렌디하며, 책임감 있고, 외향적이고, 리더십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속은 썩어 문드러져서 닳고 닳은 사람이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나의 거짓말 같은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1인 다역을 맡아 영혼을 끌어모아 수많은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었다. 유재석이나 이효리같이 유명한 사람이야 여러 부캐를 만들어서 사랑받기라도 하지 나라는 사람은 부캐만 여러 명이고 본캐가 없다. 손으로 쥐면 바스러지는 속이 텅 빈 껍데기로 하루를 살다가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저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진짜 내 모습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 취향은 빠삭하면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항상 자기답게 사는 사람을 동경했다. 인스타그램의 단편적인 게시글만 보고 저 사람이 가는 곳, 사는 것, 먹는 것을 따라 하기도 했고, 그들이 사랑하는 브랜드인 프라이탁 가방을 들고 파타고니아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자신감 뽕이 차올랐다. 여기에도 나 자신은 없었다. 


동경의 대상 중 한 명이었던 이승희 작가의 책 '기록의 쓸모' 역시 그녀의 취향을 훔쳐보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치 지금 내 상태를 간파라도 한 것 같은 문장과 마주했다.


모두에게 나를 인식시킬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저 나와 핏이 맞는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닿으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메모를 하면서 그 아랫줄에 '못 읽겠다. 관통당해버림'이라고 써두었다. 그래 모두에게 나라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포장할 수 없어.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만 좋은 사람이면 되는 거지. 남의 시선보다 나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가자. 너답게 살아. 나다운 게 뭔데? 무슨 90년대 드라마 대사 같은 흐름이네. 


요즘 참 다양한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는데 에어비앤비 마케터들이 모여서 만든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 뉴스레터를 보면서 고민을 보내면 짧게 상담을 해준다고 해서 냉큼 내가 가진 고민을 공유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답장을 받았는데 나 자신에게 '잘 살아보려고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 아닌 사과를 하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 독립을 결심한 것을 응원받았다. 나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어릴 때 차마 말 못 했던 꼭 갖고 싶었던, 꼭 먹고 싶었던,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이 뭐였지?


갖고 싶고, 먹고 싶었던 것보다 하고 싶었던 일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너무 낯 뜨거워서 어디 가서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고등학교 때 댄스동아리 기장을 맡았었다. 일단 춤을 췄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경험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춤에 진심이었고, 모의고사를 치고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을 때 안무와 관련된 예술학과가 있는 대학을 가장 먼저 찾기도 했다. 부모님은 춤을 췄다는 사실만 알 뿐 한 번도 공연을 보러 온 적도 없었고, 내가 진학까지 고민할 정도로 좋아한지도 몰랐을 것 같다. 꼭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질문을 받으니 '그래, 내가 춤추는 걸 좋아했었지..' 과거형의 자조적인 대답이 나왔다. 


좋은 사람인 척하려고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꿈같은 것도 잊고 살았다. 엄마 아빠에게 춤을 추겠다고 말하는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과 어긋나는 길을 가는 나쁜 딸이 되고 싶지 않아 애초에 싹을 잘랐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나를 이리저리 변모해가면서 사는 인생은 참 바쁘고 힘에 부친다.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나를 치장하고 꾸미는 것들이 나를 대변해주지는 않았다. 


다들 색깔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 하나쯤은 그냥 흐릿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임팩트 있는 인생을 지향하며 다들 쭉쭉 뻗어나갈 때 나 하나쯤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도 임팩트 있지 않을까? 남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일인가. 새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그렇지 못한 내가 다시금 한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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