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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9. 2021

4. 꿈을 이루어 가는 길에, 꽃이 피다.

(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3편. 행복

#1. 일과 육아,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커리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삶에서 남들보다 늦게 가본적이 없었다. 마치 규격화된 듯 표준적인 삶을 살았다. 제때 졸업하고, 제때 취직하면서 같은 나이의 친구들보다 같거나, 조금 빠르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일에 대한 욕심도 없지 않았기에 회사 생활도 잘 하고 싶었다. 일도 배우고, 인정도 받으며 성장해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 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사회적 성공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일이야 천천히 해도 되지만, 아이가 어릴 때 잘 돌보지 못하면 불안하고, 방황하는 사회인으로 크게 될까 걱정되었다. 모성애인지, 엄마로서의 책임감일지 모르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이를 갖고 처음으로 커리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뱃속에서 커가는 동안 나의 모성애는 더 많이 자라났다. 나는 아이의 엄마이고 싶었고, 아이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정서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2년은 자신을 길러준 사람과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라, 이 때 아이의 육아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며 쓸 수 있는 휴직 기간은 출산 휴가 3개월, 육아 휴직 1년이었고, 그 기간이 내게는 짧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를 2년 동안 키운 후, 보육원에 보내면서 여전히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회사에 보육 시설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현재 국내에 그런 사업장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다닌 회사는 직원수가 작아 그렇게까지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되고 싶으면 회사를 그만 두는 수 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회사를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내게 답이 될 수 없었다. 일을 관두고, 꿈을 잃은 엄마가 되어 살고 싶지 않았다. 사회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남들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육아랑 일을 다 잘 해낼 수는 없다고,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이라 얘기했다. 그것이 현실이라며. 둘 다 너무 소중한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슬펐다. 이렇게 현실에 무릎 꿇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꼭, 해내고 싶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내 일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싶었다.


#2. 글을 쓰기 시작하다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찾지 못했다. 학생 때 특기를 쓰는 칸에 ‘공부’라고 쓴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다. 그렇다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공부가 좋았으면 계속 공부를 했으면 되었을 텐데, 현실과 동떨어져 논문만 읽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었다. 평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잘 쓰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은 늘 행복했다. 말주변이 없어 말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글은 늘 생각할 여유를 주었고,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소설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쓴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막연했던 꿈을 처음으로 실천한 것은 아이를 갖은 후였다. ‘엄마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면서 가졌던 불안했던 감정을 뒤로하고, 긍정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담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면 힘든 일도 많지만, 아이를 갖기 전에 먹었던 마음들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라고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에 매일 행복하게 글을 썼다.


 생애 첫 책은 내가 사회에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책을 통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 아이도, 엄마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사람들과 함께 찾아갔다.


 이후에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다.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나는 책을 구상하고, 글을 썼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자연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기업에 관련된 글을 쓰기도 했다.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사회의 긍정적인 면들을 보기 시작했고, 변화에 동참하기도 했다. 글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고마운 도구였다.


 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글 솜씨가 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포기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세상이었다. 글을 쓸 때마다 연금술사의 한 글귀를 떠올렸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매번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글을 썼다. 새롭게 접하는 세상은 늘 설레였고, 내 삶의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계속 글을 쓴다. 좋은 향기가 나는 글이다. 글을 쓸수록 문장은 더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지며, 삶의 경험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나이가 들어서도, 유연한 사고로 삶의 아름다운 변화를 꿈꾸며 글쓰기를 계속 하고 싶다. 


#3.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다


 아이가 3살이 되던 해에는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이의 육아 시설은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다. 육아 시설이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행사가 있거나, 아이가 아플 때는 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아이는 자연과 함께 하는 교육을 받았고, 건강한 음식들을 먹으며 밝고 씩씩하게 자랐다.


 사무실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자 하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엄마들은 모두 나처럼 아이와 함께 출퇴근을 하였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달랐기에 개인 사업을 하듯 일을 했지만,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며 각자의 꿈을 이루어 갔다. 교육, 심리, 경영, 쇼핑몰, 요가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일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30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고, 꾸준히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는 아이를 생각하며 종종 시간을 내어 자연 교육에 대한 연구를 했고, 대부분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연구로 시간을 보냈다. 27살 때,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인’이라는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고 열심히 배웠는데, 사회를 위한 기업,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때부터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사회적 기업을 돕고, 홍보하는 활동들을 할 것이라 다짐했던 것 같다.


 나의 30대,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틈틈이 일을 하며, 사회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는 시간은 회사를 다닐 때 보다 길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시간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나의 40대부터 사회적 기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도 쓰고, 사회적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 및 홍보 활동도 하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이들도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나를 응원해 주었고,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었다.


#4. 꿈을 이루어가는 길에 꽃이 피다


 매 해마다 벽에 나의 꿈을 걸어, 그 꿈들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하며 살아왔다. 상상을 할 때면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 피어났고, 어떤 때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마치 그 꿈이 진짜로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상상 속의 나는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했다. 마음이 게을러 이루지 못한 계획도 있었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간절히 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집 앞마당에 심어 놓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이 꿈이 현실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났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는 것도 그랬다. 힘든 고비들도 있었지만, 한 고개 넘을 때마다 아이를 보며 힘을 내고, 꿈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정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고,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아이와 일에 대한 사랑이 나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제 내 나이 쉰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꿈과 희망으로 반짝거린다. 늦은 때란 없다. 지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열정과 에너지가 충만하다. 꿈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 매일매일 삶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며 성장해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삶이 감사하다.


*파란색 글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이 글들은 2011년 9월 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쓴 글이니, 10년이 넘은 글들입니다. 모든 꿈들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육아휴직 이후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고, 지금까지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 살아왔습니다. '엄마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던 이 글들은, 제 블로그에서 10년간 잠들어 있어야 했지요. 한국에서 계속 살 줄 알았던 저는 현재 말레이시아라는 낯설기만 하던 나라에 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들과 함께 하는 공간을 꿈꾸었던 저는, 언니공동체라는 온라인 공동체를 만나 엄마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언니공동체는 요가, 독서, 글쓰기, 뜨개질, 그림, 피아노, 칼림바, 기타, 영어, 스페인어, 일어, 중국어 등 다양한 활동들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지난 꿈들을 들추어보며, 내가 직접 만들지는 못했지만 내가 꿈꾸던 공간을 찾아 활동하고 있음에 내심 놀라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글을 쓰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아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잠들어 있던 글도 다시 깨워보았습니다. 내가 꿈꾸던 길로 잘 가고 있구나, 느끼면서요. 여전히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어, 때때로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면서요. 또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면서요. 절망보다 희망을, 슬픔보다 기쁨을, 좌절보다 용기를 제 삶의 바구니에 채워나가려 지금도 애쓰고 있습니다. 


 더 많은 꽃들이 제 삶 속에, 그리고 이웃들의 삶 속에 피워나기를 오늘도 꿈꿉니다. 


(Cover Image by Quinsey Sabl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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