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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9. 2021

3. 꿈이 있는 엄마가 좋다.

(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3편. 행복

 엄마는 결혼 후 아버지를 도와 석항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게 일을 했다. 아침 7시에 가게 문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1층 가게와 2층 집을 왔다갔다하며 밤 늦게까지 가게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였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식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쉬는 날도 없이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사셨다. 작은 마을, 좁은 가게, 반복되는 일상, 어쩌면 그 생활이 불만스럽게 느껴질지도 몰랐지만, 엄마는 불평이 없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골 어느 작은 가게에서의 생활은 지속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즈음이다. 어느 날 엄마가 가족들에게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예술회관에서 주부들을 위한 사진 교실을 여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가서 배울 수 있단다. 아버지는 가게 일이 바쁜데 취미 생활을 하겠다는 엄마를 못마땅해 하셨지만, 무엇인가 배우고 싶어했던 엄마의 마음을 꺾지는 못했다. 엄마는 서랍장 한 켠에 있던 아버지의 낡은 수동카메라를 꺼내 사진 교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그렇게 열정적이고, 생기가 도는 엄마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사진 배우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고, 나와 동생들을 모델 삼아 집 근처에서, 학교에서, 집 뒤 둑길에서 연실 사진을 찍었다. 매번 모델 노릇을 해야 했던 나와 동생들은 귀찮아하기도 했지만, 그런 엄마가 싫지 않았다. 겉으로는 귀찮아해도, 속으로는 엄마가 사진 찍는 것을 열심히 응원했다. 가게 일과 집안 일에만 파묻혀 있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빠져 열심히 하는 엄마가 멋있어 보였다. 사진 교실 선생님이 사진을 잘 찍는다고 칭찬해 준 날이면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엄마가 사진 배우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는데, 가게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매주 영월에 나가 사진을 배우던 엄마가 참 행복해 보였었는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버린 엄마의 모습에 내가 괜히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사진 찍는 방법은 다 배웠고, 가게가 여유 있을 때 사진 찍으러 나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현실에 치여 여유롭게 사진 찍을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낡은 수동 카메라는 아주 가끔 엄마 손에 들려졌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에도 엄마는 쉼 없이 돌아가는 가게일과 집안일로 또 다른 꿈은 꾸지 못하는 듯 했다.


 엄마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원에 다닐 즈음이었다. 엄마는 문화예술회관을 통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혹시 예전처럼 또 배우다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방 한 켠은 화실이 되었고, 엄마는 집안 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그림을 그렸다.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참 신기하게도 빨리 배웠다. 고등학교 때 미술반이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고 얘기한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잘 그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20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엄마에게 미술적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엄마의 삶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두근두근했다. 예쁜 꽃들이 화폭에서 생명력을 찾았고, 폭포수가 내 가슴 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듯 했다. 어떤 그림은 나를 청정하고 푸르른 숲으로 데려갔고, 어떤 그림은 나무가 켜켜이 쌓인 시골의 어느 집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분홍빛 모란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하고, 은은한 노란빛의 초롱꽃은 겸손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매 작품이 너무 멋있었다. 엄마의 손이 마술사의 손이 된 것 같았다. 물론 세상에는 멋진 그림들이 많지만, 엄마의 그림 속에는 엄마의 열정과 힘이 담겨 있어 좋았다.


 엄마는 꿈 속에서도 그림 그리는 꿈을 꾼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며. 가게를 보면서도 그림 속 꽃에 어떤 색을 칠하면 좋을지를 상상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때면 몸에 희열이 느껴지고,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가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와 저녁 늦게 30분, 또는 1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다. 다른 일들로 피곤한 날에도, 그림 그리는 것은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엄마가 참 행복해 보였다.


 4년, 5년 엄마의 그림 그리기는 계속 되었다. 엄마의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작지만 상도 탔다. 엄마의 작품은 늘어났고, 실력도 늘어났다. 나는 엄마를 열렬히 응원하였다. 엄마의 작품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감동하여 칭찬해주었고, 멋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림을 칭찬할 때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나이가 들면 엄마에게 갤러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의 아름답고, 멋진 작품들을 전시하여 사람들과 함께 엄마의 열정과 에너지를 공유할 것이라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그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릴 테니 꼭 그렇게 해달라며 약속을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상상만해도 기분이 좋은지 엄마는 계속 싱글벙글 이었다. 자신의 열정을 바칠 무엇인가를 가진 엄마가, 꿈을 가진 엄마가 참 자랑스러웠다.


 그림은 엄마 자신의 행복을 의미했다. 결혼 이후, 늘 딸들이 잘 되는 것만 보며 기뻐하던 엄마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취를 통해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순수한 열정이 살아 숨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엄마는 자기 자신을 찾아갔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노난희’라는 이름 석자로 세상에 우뚝 섰다. 화가 노난희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림을 그리는 엄마가 좋았다. 엄마가 사진 찍기를 포기했던 것처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내심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엄마를 보며 미래의 나를 상상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꿈이 멈추면, 내 꿈도 멈춰질 것처럼. 하지만 엄마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때로 몸이 안 좋거나, 다른 일이 생겨서 쉬어갈 때도 있었지만, 얼마 후엔 다시금 붓을 들었다. 꿈이 있고, 열정이 있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힘을 얻었다. 엄마가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나도 나이가 들면 아이에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 꿈을 잃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Cover Image by Olivia Spin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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