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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Mar 24. 2024

마주 잡은 두 손, 오베르쉬르와즈에서

- 그 겨울의 일주일,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D는 기억하고 있었다. 화가 반고흐가 삶의 마지막을 담은 도시를 가고 싶다고 말했던 어느 늦은 밤의 대화를.      


 파리에서 오베르쉬르와즈로 향하는 평일 오전의 기차 안을 채우는 건 간간이 들리는 헛기침 소리뿐이었다. 우린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햇살이 기차 안으로 들어와서 책 읽기가 좋았고, 책 읽는 나를 D가 렌즈 안에 담았다.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D를 마주한 내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반고흐에게 마음이 끌렸던 건, 그의 강렬하고 거침없는 붓 터치와 빛을 그려내는 독특한 시선 때문이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던 그의 열정과 끈기를 동경했다.      


 어렸을 때 예술가를 꿈꿨다. 예술가가 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대, 재능이 특출 나지 않으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대, 그 가난을 감당할 정도로 단단하지 못했던 결심과 미적지근한 열정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서서히 감추게 했다. 난 이루지 못한 꿈을 그의 그림을 보면서 대리만족했던 것 같다.  

   

 소설가 '메이브 빈치'의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의 아일랜드 풍경과 이야기의 배경인 호텔 스톤하우스가 눈앞에 그려졌다. 프랑스 파리의 근교 소도시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의 분위기가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그리고 한 인물의 삶에 시선이 머물렀다.


 작중 인물인 안데르스는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과 아버지의 사업에 뛰어드는 것 사이에서 방황한다. 꿈과 현실을 둘로 나눠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찌 됐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작가는 넌지시 말한다.  

  

문제가 그 자체로 말끔히 풀리지 않는 것은 우연들 때문이다. 문제가 풀리는 것은 결심할 때다.

- 메이브 빈치, 그 겨울의 일주일, 2012, 문학동네, p.320


 나는 그 조언을 마음에 담고 결심했다. 직장을 다니며 경제적인 불안을 해결하고 조금씩 예술 활동을 하면서 어렸을 때 접어둔 꿈을 펼치자. 마음속 깊이 좋아하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고 나도 모르게 계속 배어 나왔기에, 난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역에 내려서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어서 발걸음을 그쪽으로 돌렸다. 동생 테오와 형 고흐가 함께 묻힌 묘지. 그곳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고개를 뒤로 돌려 D를 보니 D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우리 왜 우는 걸까. 손을 잡고 서로에게 물었다.

  

 형제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간의 신뢰를 단단히 다지고 일상과 삶에 대한 감동을 공유했다. 동생은 평생 형을 지원하고 믿었다. 대중에게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인정과 지지로 그토록 하고 싶은 그림을 온 힘을 다해 그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린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나란히 서서 조용히 울었다.


 난 언젠가 D와 함께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묵독했다.      


사람은
금메달이나 주위의 칭찬 등
남의 인정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타인들의
작은 예의와 배려, 그리고 신뢰로 살아간다.
그것이 일등을 하는 것보다
단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 이석원,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2018, 달, p.211


 나를 믿고 지지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 난 그 사람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를 지키기 위해 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다.     


 난 D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내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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