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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Dec 07. 2020

임신 4주 2일, 여기는 응급실

2019년 9월 9일의 일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던 4주 2일째 오전.



임신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매일 속이 좋지 않았다. 가스가 차고 설사를 했다. 이 날도 배가 불편하길래 화장실에 갔는데, 다녀온 후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랫배에 가스가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스 빼는데 좋다던 고양이 자세도 해봤지만 오히려 그 자세를 하면 복부에 통증이 생겼다. 좀 쉬면 낫겠지 하고 잠이 들었다 깼는데도 불편감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고 뒤척일 때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밤이 되자 앉거나 서있을 땐 복부 팽만감으로 불편한 정도지만 누운 자세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생겼다. 이건 좀 많이 이상하다 싶어서 퇴근한 개미씨와 응급실로 향했다. 이때가 밤 9-10시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누운 자세에서 통증이 있는 건 췌장염이라고 했다. 한 달 전 담낭 떼어내고 잠시 췌장 수치가 올랐던 게 떠올랐다. 아니면 대장이 터진 건 아닐까? 그만큼 가스 차서 배가 터질 것 같은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와 본 응급실.


좁은 대기실엔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북적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내가 응급실에 와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잔뜩 위축되어 침묵 속에서 개미씨의 손만 꼭 잡고 있었다.


접수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응급실 옆 작은 진료실에 드디어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하얀 가운이 아닌 (의학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초록색 수술복에 크록스를 신은, 너무나 해사하게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어디가 아프시냐 물어보았다.


-배가 이상하게 아파요. 앉거나 서면 불편한 정돈데 누우면 너무너무 아파요.


-여기 침대에 한번 누워보시겠어요?



앉아 있을 땐 버틸만했는데 눕는 자세를 취하는 순간부터 또다시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끙끙대며 겨우 등을 대고 눕자 선생님이 나의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며, 어디가 아프세요? 어느 쪽이에요?라고 물어보셨다. 그러나 도저히 어디라 대답할 것도 없이 사방이 다 아팠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가도 또 일어나 앉아 있으면 좀 괜찮고. 아니 무슨 이런 이상한 증상이 다 있나..!?


그 상태로 나의 병력 청취를 하다가 임신 가능성을 물으시기에 지금 임신 4주 차 극초기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의사가 정색하며,

-그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하 시면 어떡해요!

라기에 깜짝 놀랐다.

?? 아니, 물어보셨냐구요...!?


...라고 하지만, 통증 부위가 배꼽 주변쯤으로 산부인과랑은 전혀 관련 없는 위치여서 생각도 못했다. 임신준비하면서 어디가 난소고 자궁인지 정도는 알게 되었는데 내가 통증을 느끼는 부분은 복부 중앙으로 하복부와는 꽤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임신 중이라는 말에 당장 자리를 옮겨 초음파를 보게 되었다.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보시던 선생님이복강내 출혈이 보이는 듯하다고 하셨다. 그 소리에 놀란 나는 선생님께 소리치듯 되물었다.


-네? 뱃속에 피요??!

-네, 물인지 피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피처럼 보이는 게 뱃속에 차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럼 이게 산부인과랑 관련이 있나요?

-좀 더 검사해봐야겠지만 아마도 그럴 확률이 가장 커요. 산모니까요. 자궁외 임신이라던지...

-자궁외 임신이요? 저 아직 4주 초밖에 안됐는데 벌써 나팔관이 파열될 수도 있나요?

-그 정도 됐으면 이제 아기집이 보이려고 할 때쯤이니 가능성 있죠. 정확한 건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보셔야 알 수 있을 거예요. 좀만 기다리세요.


하, 자연유산에 소파술도 모자라 이젠 자궁외 임신까지.

나와 개미씨는 응급실 베드에 앉아 한없이 침울해졌다. 이쯤 되니 너무나 피곤해졌고 결과가 뭐든 좋으니 빨리 진료를 받고 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7월에 치룬 담낭수술과 잠시 올라갔던 췌장 수치에 대해서도 여쭤봤지만, 수술이 끝나고 한달 이상된 시점에서 이제와 그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단칼에 자르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4주 2일에 아기집이 커져 나팔관이 터진다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자임이기에 배란일이 확실치는 않다고 해도 배테기로 추적한 것도 있고, 배란일 열흘 전쯤 초음파도 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날짜에서 크게 벗어날리는 없었다. 4주면 아기집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때인데 파열이라니 말도 안된다.



길고 긴 대기와 채혈, 소변, 엑스레이 등의 여러가지 검사 끝에 응급산부인과 진료 결정이 내려지고, 새벽 1시쯤 나는 생전 처음 휠체어란 것을 타고 산부인과 진료실로 향했다. 산부인과가 위치한 병원 2층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는데 진료실로 보이는 복도 끝방에서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응급실과는 달리 텅 빈 병원 복도의 낯선 어둠 속에서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에 온 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변비나 가스가 찬 거라 생각했는데 이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마치 악몽을 꾸는 듯 이상하고도 무서운,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휠체어를 따라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개미씨의 손을 찾아 잡았다. 걱정으로 나보다 더 굳어진 얼굴의 개미씨와 나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 진료실 베드에 누워 다시 초음파를 봤다.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미모의 산부인과 선생님이 지금 나의 뱃속에 피가 많이 차 있다고 하셨다. 교수님을 불러드릴 테니 그 상태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셔서, 산부인과 의자 위에 다리를 올린 허전한 자세 그대로 앉아 대기하며(...) 추가 문진을 시작했다. 통증 양상, 임신을 알게 된 시점과 마지막 초음파 기록, 유산 이력 등등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아직 원인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지금 복강 내에는 혈액이 차 계시고, 또 피검수치는 엄청 높으셔서...


피검수치, 라는 단어가 나의 귀에 쿡 와서 박혔다.


-선생님, 피검수치가 나왔나요?


놀란 마음에 선생님의 말을 자르며 여쭤봤다.

-네, 수치가 2,551 나오셨어요.


2,551이라고?
지난주에 분명 35.7이던 피검수치가 일주일 만에 2천이 넘었다니. 이건 또 이거대로 이상하게 들렸다. 이상하리만큼 높은 수치 같았다.

그때, 남자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교수님 또한 한참 동안 초음파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동그라미의 길이를 가로세로 재기 시작하셨다.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렀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초음파 진료를 마친 교수님은 내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동안, 신랑이랑 같이 오지 않았냐며 쭉 밖에서 대기하던 개미씨에게 같이 설명 들으라고 진료실 안으로 불러주셨다. 나는 여전히 입술이 달달 떨리고 있는 상태라 개미씨가 옆에 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교수님의 친절한 배려가 너무 감사했다. 우리가 나란히 자리에 앉자 교수님은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지금 환자분 뱃속에 피도 많이 차있고 테니스공만 한 피혹이 자궁 뒤에 생겼어요. 피가 난 정확한 위치는 초음파로는 알 수 없어요. CT를 찍으면 알 수 있지만 지금 산모시니 그건 안 되겠죠. 제가 볼 때 지금 가능성은 두 가지예요.

첫째, 자궁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파열되어 출혈이 있거나 아니면,

둘째, 황체 낭종이라고 하는 기능성 낭종이 터졌을 가능성, 이 두 가지예요.

아직 주수가 자궁외라고 하기엔 너무 초기라서 자궁외보다는 두 번째가 더 가능성은 높아 보여요.


황체 낭종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다. 연초에 처음 마리아에 방문했을 때, 초음파상 나의 난소에 황체 낭종, 혈종이 있다고 하셨다. 아마도 전달 무리한 과배란의 부작용일 것 같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터지면 아프실 거라고 무거운 거 들지 말고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었는데 그게 이번 달에 다시 생겼고 파열됐다는 건가. 하지만 이번 달엔 과배란도 하지 않았는데..?


-산모시니까 검사에도 한계가 있고 현재로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제 생각엔 병원에 최소 하루 이상 입원하셔서 안정 취하시면서 그 사이 빈혈수치가 다시 오르는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수치가 출혈이 멎었는지를 알려주거든요. 지금 수치는 11 정도라 그렇게 출혈이 심한 건 아니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출혈이 심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아프나요??

-복강에 피가 차면 원래 아파요 ㅎㅎ




빈혈 수치와 더불어 이틀 뒤 hcg수치가 두배 이상 오르는지 보고 자궁 외가 아닌 것 확실히 확인해야 하고, 만약 자궁외로 난관이 파열된 거라면 언제든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하니 계속 금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가 새벽 두시쯤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하루 입원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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