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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의그녀 Aug 23. 2020

사랑이 입을 넘지 못할 때, 검정치마의 다이아몬드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는 없다고

나는 검정치마 노래를 고등학생때 처음 들었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중학생때였나. 처음 들은 노래는 검정치마의 '날 좋아해줘' 아무런 이유없이 날 좋아해달라고 외치는 노래다. 어쩌다 들은 노래였고, 어쩌다 안 노래여서 검정치마라는 가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겨울쯤이었나 everything이 나오고, 이듬해 봄에 TEAM BABY까지 나온 후 나는 검정치마를 아주 길고 가늘게 좋아하고 있다. 

사실 처음은 누구나 그렇듯 'everything'으로 빠지고 그 다음은 '나랑 아니면'처럼 메인 곡을 꽤 즐겨 들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서는 '혜야'랑 '한시 오분'에 빠졌다. 한시 오분은 내 카톡 프로필 뮤직 자리를 오래 꿰차고 있을 정도로 정말 좋아해서 한번 들으면 두세번은 꼭 더 들어야 했다. 그렇게 이러 저러한 노래들을 지나 코로나가 한창 심해질 때인 3월달 쯤에 다이아몬드라는 노래를 처음 듣게 된다. 재택할 때 한곡 반복으로 내내 들어서일까. 다시 재택에 돌입하니 자연히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사상 초유의 질병 사태로 매일 매일이 뉴스였고, 연이어 확진자가 터져나왔다. 마스크값이 치솟고 약국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줄이 길었으며, 꽃샘 추위는 쉬이 가시질 않았다. 가게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경제는 얼어갔다.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여름 전에는 이 모든 상황이 끝날 줄 알았다. 이러다 곧 잠잠해지겠지. 했는데 이렇게 장기전이 될 줄 몰랐다. 그 때 사회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재택을 결정했고, 사회인이 되서 처음으로 재택 근무를 경험했다. 그 때 5평짜리 오피스텔에 갇혀 우울증에 걸릴 뻔하던걸 이 노래가 간간히 건져줬다. 


babe, 알고 있겠지만  

사랑이 필요할 땐 

ask, 그럼 보여줄게  

말이 앞서기 전에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 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는 없다고


노래 내용은 간단히 말하자면 '오래된 연인 사이, 화자는 맨정신에 사랑한다는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화자의 연인은 이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화자는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사랑이 닳는다고 해도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이다. 나는 다이아몬드의 모든 가사를 좋아하지만 특히 위에 올려 놓은 부분을 좋아한다. 말이 앞서기 전에, 내 사랑이 내 입을 넘기 어려워한다고 해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 나는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할 쯤 화자랑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사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와닿고 와닿았는지 모른다. 


두 계절이 지난 지금도 다른 마음가짐은 아니다.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포 자이나 한남더힐은 약속할 수 없다. 테슬라나 슈뢰딩거를 사준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약속할 수 있는 부분은 내 사랑에 대한 의심이나 불안이 들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사랑이 좀처럼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대도, 난 변하지는 않을 수 있어. 변하지 않는 건 다이아몬드 하고 널 사랑하는 나밖에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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