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PR실무강의, 번아웃, 강릉, 팀채용, ~기타등등 생각들~
온라인 강의를 만들어 보았다. 사실 촬영을 끝낸 지는 좀 됐다. 좀이 아니라 거의 두 달인데, 하고 나니까 했다고 말할 기운이 없었다. 강의 진짜 너무 열심히 만들었고 힘들었고 뿌듯했고 어쩌고저쩌고 쓰고 싶었는데, 진짜 글 쓸 기운이 없었다. 주말마다 '아 강의했다고 브런치에 쓰고 싶은데' 생각하면서 하릴없이 누워 있었다. 돌아보니 번아웃이었던 것 같다. 왜 이제 아냐면 회사 일을 계속 어찌어찌 잘 했기 때문인데 일하는 시간 빼고 누워있으면 그게 번아웃이지 뭐야.
강릉 다녀오면 회복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됐다. 한 달 반인가 두 달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강의 만들고 주말에도 강의 만들면서 살았더니 어디 갇혀서 일만 한 기분이었다. 뭐, 비슷하지. 약속도 안 잡고, SNS도 안 보고. (이때부터 SNS를 덜 보기 시작해서 이제 거의 안 보게 됨.. 소셜미디어 강제 디톡스..)
끝내자마자 강릉에 갔는데, 주말 이틀 쉬고 사흘 워케이션 한 걸로 번아웃 회복은 어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마지막 워케이션이었잖아? 그 사이 회사 근무 제도가 이것저것 변경돼 앞으로 워케이션은 불가능해 보인다. 마지막 된 강릉 워케이션 후기..를 쓰고 싶은데 안 쓰겠지. 그냥 강릉 사진이나 몇 장 올려야지.
아무튼. 회사 다니면서 글도 쓰고 블로그도 하고 강의도 하고 여러 가지 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대단하다. 나는 회사 일이 조금만 바빠도 금세 방전되버린다. 특히, 요즘은 글 쓰고 카피 쓰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다음주에 재밌는 거 내놓을 예정~~~!) 다른 글을 쓸 기운이 유난히 없다.
아무래도 인간이 하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텍스트의 양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가독성 높은 구조의 그럴싸한 글을 만들어 하고 싶은 말을 잘 전하는 건 확실히 힘든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걸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희소성에 비해 가치 인정이 기업에서는 잘 안된다. 그렇다고 수요가 없는 건 또 아닌데 말이지. 하긴,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일들이 다 그렇지. 글 잘 쓰는 사람들은 자기 글 쓰는 게 제일 나을지도 모르겠다. 콘텐츠 제작 영역은 그럴 수밖에 없을까?
아무튼222. 이렇게 기운이 없는 인간이 이걸 쓰게 하는 원동력은 선선해진 날씨와 위기감. 공기가 선선해지니 위기감을 느껴 의식의 흐름대로라도 쓰자~ 하고 쓰고 있다. 한여름에 끝낸 일을 가을까지도 못썼다니! 이러면 가을이 가고! 겨울도 가고!! 내년이 와도!!! 영원히 못쓰겠지ㅠ 요즘 같이 불안한 시대에 자기가 한 것도 어필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거겠지ㅠㅠ 하는 위기감. 또 의식의 흐름에 따라 갑자기 요즘 직장인들의 힘듦에 대해 쓰고 싶지만, 에너지가 한정돼 있으니 참도록 하자
2분기 끝자락부터 3분기 중간인 8월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나 모르겠다. 바쁘고 정신 없었다.
일단, 팀 세팅부터 2년 넘게 같이 일한 팀원이 떠났다. 본인이 일해보고 싶었던 회사의 직무에 합격해 진심으로 응원하면서 보내줬지만 진심으로 막막했다. 인원이 적은 팀일수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빈 자리 너무 크다ㅠ 우리팀 아무도 나보다 먼저 나가지마ㅠ..
일도 많은데 리소스도 없고 채용까지 하려니 벅찼다. 그와중에 또 다른 팀원은 어떤 부상을 당해 수술도 했다. 흑흑.. 진짜 다들 아프지 마!! 다치지 마!!!! 그래도 지금은 채용도 다 했고! 새로 오신 분들이 적응도 빠르게 하고 계셔서! 오로지 일만 많다^^~ 우리팀 2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다섯 명이다(뿌듯)
팀 리더로 6년쯤 일해보니 일만 많은 상황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일 많음+퇴사자 발생+부상자 발생+채용 필요(여기서 더 최악은 회사가 TO를 내주지 않는 것!) 상황을 겪어보니 일만 많은 건 괜찮지 않나 싶고.
아니 브런치를 너무 오랜만에 쓰니까 말이 많네. 인트로가 너무 긴데?
무슨 강의를 왜 만들었고 어땠는지나 얼른 써야지.
PR/홍보 실무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로 구성해달라는 오더를 받고 온라인 강의를 만들었다. 길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필요한 내용을 담고 보니 6시간이나 됐다. 패스트캠퍼스에서 '[초격차 패키지] 한번에 끝내는 마케팅 전략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마케팅 강의들과 같이 묶여서 판매되고 있다. 요즘 교육 플랫폼에서는 이런 식으로 많이들 구성해서 판매하나 보더라.
위의 소개 문구 내가 안 써서 그런가 상당히 머쓱하네. 업무 능력은 이론만 안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 단기 완성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저 강의에 담은 내용을 다 이해하고 할 줄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완성형이 되기는 할 거다. 이제 막 PR 업무를 시작하는 주니어거나, 사수 없이 일해야 하거나, 협업이 잦고 이 분야도 궁금한 사람들이 들으면 '아 이런 거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이다.
PR팀에서 일할 때 팀원들에게 알려준 내용들을 많이 담았다. 앞에 마케팅 프로모션 강의가 붙어 있어 프로모션이 PR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도 덧붙였다. 저거 하나만 들어도 기본적인 실무는 이해할 수 있다. 하나만 듣고 싶은데 다른 것까지 결제하기 아까울 수도 있겠다 싶은데, 마케팅과 PR은 경계가 모호한 영역들이 많으니!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싶거나 관심이 있다면 다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엄청난 가성비 강의다! 진짜 열심히 아는 거 다 털어서ㅎ 만들었다. 애매하다 싶은 건 다른 PR 전문가들이나 기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인맥도 털었구나.. 그러고 보니 도와준 친구한테 술 사러 가야 하는데 누워있느라 그것도 까먹었다.. 돈 생각하고 맡은 강의가 아니라 그냥 준다는 대로 받고 계약했는데, 강의를 만드는 내내 '내가 돈 생각을 왜 안 했지? 이럴 줄 알았으면 돈 생각을 했어야겠는데?'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진짜 시급으로 따지면 천 원도 안 될 듯.. 그리고 심지어 실습 과제 피드백도 해야 한다. 뭐, 이건 내 사정이고. 결제하고 듣는 사람들이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알차게 만들었다. 다른 강사 분들도 열심히 만드셨을 테고.
브런치로 제안 메일이 들어왔다. 강의를 기획한 패스트캠퍼스 매니저님이 내 브런치를 좋게 보셨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뭄에 콩 나듯 글이 올라오는 브런치를 봐주셔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미팅을 잡았고, 미팅을 끝내고 나오면서는 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면 강의도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닌가? 강의는 또 다른 문제인가?'
그리고 내가 한 말이 온라인에 박제돼 남아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오늘 한 맞는 말이 내일도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트렌드는 또 얼마나 빨리빨리 변하는지.
이외에도 기타 등등의 이유로 망설였는데, 매니저님이 '같이 일하는 팀원한테 일 알려주시는 것처럼 만드시면 돼요'라고 말씀하셔서 부담이 좀 덜어졌다. 그리고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도 꽤 컸다. 10년 넘게 한 일을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 '정리'가 꼭 맞는 단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떠오르는 다른 단어가 없어서 쓴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1. 힘들고 뿌듯함
대부분의 경험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힘든 것과는 별개로.. 아주 별개의 문제임... 6시간 분량의 실무 온라인 강의를 만드는 과정은 벅차고 힘들고 재밌고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힘들었던 건 나의 피곤한 완벽주의 성향 탓도 있겠는데,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내가 아는 게 진짜 맞나?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진짜 당연한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온라인 강의는 플랫폼의 한계로 내용이 100% 전달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가능한 한 잘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용 구성과 장표 제작과 촬영까지... 정말 엄청난 작업이었다. 한두 시간짜리 오프라인 강의도 아니고 여섯 시간이라니. 지금 다시 생각하니까 헛웃음이 나오네. 역시 뭘 모르면 용감하다. 증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열심히 만들었고 후회도 없다.
2. 패캠 매니저님 감사해요
강의를 만드는 매니저분들이 평소에 어지간히 바쁘시겠다고 생각했다. 강사들이 잘하고 있나 확인하면서 다른 기획도 해야 하고. 사람을 챙겨야 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패캠 강사들은 대부분 현업이 있을 테니 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내가 바로 그런 강사였기 때문인데ㅎ.. 변명하자면 강의 진행을 결정한 시점과, 강의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의 회사 업무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흑흑.
그래도 매니저님이 강의 내용 좋다고, 자료 디자인도 손댈 거 별로 없다고 칭찬 마니 해주셔서 속으로 힘내면서 했어요. 감사해요실명은 안 쓸게요.. 비 오던 촬영 날 수건 사다 주신 것도 티는 별로 안 냈지만 엄청 감동했어요(하트)
3. 마음에 드는 프사를 남길 수 있었음
강의 때문에 프로필 사진을 처음 찍어봤다. 프로필 촬영은 피곤하고 비싸고 재밌는 경험이었는데, 결과물이 아아주 마음에 들어서 카톡 링크드인 슬랙 등등 오만 군데 프사로 잘~~~ 쓰고 있다. 보정한 얼굴이 내 얼굴이다~ 믿으면서 좋아하고 있다^^*
~끝~
▼ 수강생이 얼마나 많아지든 더 받는 돈은 없지만! 관심 있는 분들은 들어보셔라 ~많관부~
~PR 시니어분들은 다 아시는 내용일 테니 접근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