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나와 내 아내 사이에 남긴 것
첫 직장을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국가마다 출입국 격리 기간이 생기더니, 어느 순간부터 전 세계가 셧 다운을 해버렸다.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도 한정된 재화의 한 종류인지라, 직원이 격리에 들어가면 극심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이 시기 많은 무역인들은 해외출장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해방되어 버렸고, 나 또한 그중 하나였다.
사실, 모두가 기억하겠지만, 이 시기는 단순히 국가 간 이동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수출입 물량도 줄어들어 참 힘든 시기였다.
나라고 크게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었어서, 당시 근무 중이던 회사 영업 실적은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내 커리어 중에서 해외 출장이 끊긴 정말 드문 기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내 커리어에 고통만 준 것은 아니었다.
해외 출장과 업무가 줄어들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자연스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아내와의 시간도 늘어났다.
어쩌면 커리어의 공백이 될 수 있는 기간은,
그렇게 잠시 내가 숨 쉴 시간을 제공했다.
사실, 우리는 결혼 전부터 함께 독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터진 시점은 우리가 독일 이민을 떠나기로 계획했던 시점이었다.
코로나로 우리의 계획은 완벽하게 무산되었다.
어쩌겠는가. 천재지변인 것을.
우리는 우리 부부의 인생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했다.
다행히, 코로나로 나도 전처럼 바쁘지 않았고, 우리는 결혼 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둘 만의 시간을 오롯이 자주 가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바쁜 삶을 살며 정작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는 아내의 꿈을 좇고 나는 내 커리어를 끌어가면서, 우리는 그저 한 지붕을 공유하는 동거인이었을 뿐이라.
결혼할 당시, 우리는 다른 많은 젊은 부부들처럼 무엇보다도 빨리 독일 이민을 성공시키고, 각 자의 커리어가 자리를 잡은 뒤 아기를 갖기로 약속했었다.
그렇게 서로의 바쁨에 익숙해져 가고, 함께 사는 날들의 특별함을 잊어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는 우리의 이민 계획도, 커리어 플랜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코로나로 계획도 모두 망가진 거, 우리는 우리 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둘 사이에 가족 하나를 더 갖기로 결정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 사태는 꽤나 오래 지속되었고 그 사이 우리 둘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다행이라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코로나는 우리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우리의 온전한 가족으로 자리 잡고, 걷고, 몇 마디 어색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클 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해외로 떠나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
계획의 순서가 바뀌면 결과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새롭게 우리 가족이 된 우리의 딸은, 이후 내 커리어 방향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