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가장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2021년,
나는 새로운 회사로 스카우트되었다.
새로 들어간 회사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이었는데, 내가 입사할 당시 사무실에는 사장님을 포함하여 3명밖에 없었다. 회사는 제품 수출을 원했기에 나를 불렀지만, 사실 수출은커녕 제대로 된 성장과 운영조차도 어려울 정도로 체계가 갖춰지지 못한 회사였다.
이 회사는 내게 "수출"을 원했기에, 나는 수출이 가능한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코로나가 준 짧은 휴식이 끝나고, 다시 바쁜 무역인의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은 수출을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내길 원한다.
한국 시장은 좁으니, 넓은 해외에서 기회를 찾기를 원하는 회사도 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회사들은 단지 "한류가 잘 나가니까" 내지 "주변에서 수출로 떼 돈을 벌었다더라"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인력과 자본을 갈아 넣어가며 수출을 추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잘 모른다. 이 회사도 마찬가지여서, 가진 꿈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부터 바꿔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온갖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을 키우고.
가볍게 시작한 일들이 굴러 거대한 산더미가 되어 떨어지는 날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날들이 되어가고,
조금씩 이런저런 짐들이 내 사무실 공간을 채워갈 때 즈음엔,
어느 순간 문득 내 자리 뒤에 간이침대가 놓였다.
그렇게 첫 수출을 이끌어낼 준비가 되었을 때엔,
돌 지난 지 얼마 안 됐던 내 딸이,
스스로 뛰어다닐 수 있게 될 무렵이었다.
무역에서 야근은 사실 야근이 아니다.
시차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근무시간 변동(이라 쓰고 연장이라 읽는)에 가까운 개념이다.
우리가 아쉬운 상황에서,
상대방이 편한 시간에 맞춰 미팅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처음 해외 시장을 개척하게 될 때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회사에서 내게 주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제한적이다.
특히 아무런 조사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회사가 새롭게 시장을 개척할 때엔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법이고, 그 제품이 한국에서 처음 수출이 될 때는 더욱더 그러한 법이다.
이런 핑계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갔다 불이 켜지지 전에 나오는 날이 계속된다.
조금씩 조금씩 집안에서 내 흔적이 흐릿해지고,
아내와 딸에게 내 빈자리가 익숙해져 갈 무렵 즈음 코로나가 잦아들었다.
코로나의 종말과 함께 다시, 나는 해외로 떠나는 티켓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떠나게 된 출장 러시는 이전보다 가혹했다.
수입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장과 달리,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내기 위한 출장들은 더 자주, 더 예측할 수 없이, 더 많은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문득 집에 들어왔을 때,
새로 이사한 집 어느 곳에도 내가 앉을자리가 없음을 느꼈을 때.
너의 마음에도 그렇게 빈 공간이 무뎌가는 것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