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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co Jun 15. 2024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남편을 갖는다는 것

출장이 잦은 남편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에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은 시간여행을 하는 능력자인데, 능력자가 빌런을 다 때려잡거나 그런 슈퍼 히어로 영화는 아니다.

그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시간여행 능력을 가진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루는 일종의 멜로드라마 같은 잔잔한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의의 순간에 무작위 한 시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며, 한 번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렇게 주인공은 본인 결혼식, 신혼생활 등 중요한 순간마다 시간 여행으로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현실에 남겨진 여주인공이 겪는 애틋함과 외로움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의 아내는 결혼 이후 그 영화를 딱 한 번 함께 본 이후 두 번 다시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무역인과 결혼했다면, 그 영화는 뭐랄까. 다큐처럼 느껴진다나.


아내에게 있어 나는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세계 여행을 다니는 남편이고, 내 아내는 그런 나를 기다리는 세계 여행자의 아내가 되어버렸으니.




해외 출장은 고독과의 싸움이다.

떠난 사람은 감옥 같은 호텔에 갇혀 긴 밤과 씨름해야 하고,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곱씹으며 버텨내야 한다.


출장지의 시차도 문제지만, 해외 출장이란 본래 많은 업무량을 동반하기 쉬워, 출장지에서 가족과 여유 있게 연락을 할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숙소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적고, 간신히 업무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한국과 시차가 맞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출장을 떠난 사람은 며칠이고 연락이 안 되거나, 연락이 되더라도 잠깐, 몇 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고작일 때가 많다.

남아있는 사람의 고독은 그 짧은 대화만큼 깊어져가는 것이고.


우리 신혼집은 아내가 평생 자라온 동네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했었다. 아내의 친구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고, 서로 자주 찾아갈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해외 출장을 떠나면 내 아내는 텅 빈 신혼집에 혼자 남아 집을 지켜야만 했다.


당시 해외출장은 짧게는 4-5일에서 길게는 한 달 남짓 이어지곤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중 짧게는 일주일을, 길게는 한 달 내내 떨어져 지내곤 했었다.


아픈 날들도, 힘든 날들도, 아내가 원하는 순간마다 나는 아내 곁이 아닌 지구 어딘가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었다.






처음 일을 배울 무렵, 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회사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부터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곤 했다.

신입 때부터 떠맡은 프로젝트들이 온갖 이슈로 뒤덮여있어 업무가 많긴 했었지만, 대부분의 야근 시간은 내 업무를 좀 더 깊게 파악하고, 실수를 줄이고, 업계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했었다.


물론, 이런 내 모습을 모두가 좋아하진 않았고, 특히 과장 한 명이 틈만 나면 나를 불러 괴롭히곤 했었다. 관리자 직급에 올라온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그 과장은 해외 출장과 같은 "눈에 띄는" 기회가 나에게 쏠리는 상황에 극심한 불안감과 질투심을 느꼈던 것 같다.


뭐, 이제와 그 사람 욕을 하거나 원망할 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이 뱉은 여러 주옥같은 말들 중 가끔 생각나는 말이 있다.

"야 직원들이 너처럼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회사 안 망해."


사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직원들에게 분배되는 하나하나의 업무가 회사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거나 회사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들의 규모 역시 수백억 원 정도 되는 규모였지만, 이슈가 제대로 핸들링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좌초됐더라도 회사의 존망에 직결되진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직급이 오르고, 내가 운영하는 조직들이 생기고, 나아가 회사의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직급에 오르면서, 언젠가부터 저 주옥같은 말이 점점 빚을 바래가고 있었다.


내가 야근을 하면 회사의 실적이 조금 더  올라간다.

내가 멀리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조금 더 문제가 쉽게 풀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이 더 쌓여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되고, 집을 비우는 날이 늘어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내 삶을 오롯이 차지하기에는 충분히 넓기에, 나는 그렇게 나와 내 가족의 시간을 희생시켜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보다 먼 곳에 홀로 도착해 버렸다.




어렸을 적, 누군가 내게 일과 사랑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물었을 때, 난 언제나 사랑을 선택하겠다 말했다.

하지만, 결혼이란 사랑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난 사랑을 빙자한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핑계로 선택했다.


선택은 언제나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내 선택은 지난 몇 년 간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왔다.

잦은 출장과 야근으로 지난 결혼 생활 중 절반 정도는 서로 떨어져 지내야 했고, 주말부부도 아니고, 롱디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정말 많이 잃어야만 했다.


부부사이의 그리움은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 주기도 하지만, 지나친 그리움은 서로의 마음속에 작은 생채기를 끊임없이 남긴다.

조금씩 쌓인 생채기들은, 가끔 아내의 눈물과 내 한숨으로 빠져나와 우리 집을 채우곤 했다. 

그렇게 쌓인 생채기와 눈물의 탑을 넘어서야 남들보다 아주 조금, 정말 조금 앞섰을 뿐이었다.


그러게 몇 년을 더 살고 나서야 생각하지도 못한 영국에서 멈춰 섰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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