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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Jun 09. 2024

집에 왔다, 곧 다시 떠났다

잦은 해외 출장이 내게 남긴 것들에 대하여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무역의 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무역인은 "해외 출장"을 무역의 꽃으로 꼽을 것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슈트,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빅 딜을 따내는 모습은, 무역업 하면 떠오르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을 것이니.


무역 직군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지원자가 이런 포부를 밝히곤 한다.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멋진 거래를 성사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그게 정말 무역인의 모습인지는 차치하고, 나 또한 무역을 시작하게 된 여러 계기 중 하나가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싶다였으니, 무역 업무에서 해외 출장이 갖는 중요성과 그 이미지가 얼마나 큰 지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 처음 입사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첫 해외 출장 기회가 주어졌었다. 

4박 5일에 거친 중국 출장이었는데, 본사에서 동행하는 선배 없이, 현지 지사 직원들의 도움만 받는 해외 출장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 사진을 보면 첫 해외 출장의 설렌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표정이 아니라, 내가 다녀온 출장 중에서 유독 많은 사진을 찍어놨었으니.


보통 주변을 살펴보면, 중소기업 무역 직군에 종사한다는 가정 하에 1년에 유럽이나 미주는 한두 번, 그 외 동남아시아나 중국은 4-5번 정도 해외 출장을 다니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해외 출장이 무역의 꽃이긴 한데, 정작 까놓고 보면 무역업에 종사하더라도 해외 출장이 자주 발생하는 이벤트라 말하기는 어렵긴 하다.

특히, 연차가 쌓이기 전에는 출장을 나갈 만큼 중요한 문제가 자주 발생하지도 않으니 해외 출장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빠르게 해외 출장 기회가 주어질 줄 몰랐고, 그제야 한 명의 무역인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설레고 기뻤다.


하지만, 그게 해외 출장 러시의 시작이었다. 




처음 출장을 간 그날, 그날 이후 연말까지 난 매달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어떤 날은 가까운 곳으로, 또 어떤 날은 지구 반대편까지.


해외 출장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과 정신을 갉아먹는다.

출장지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더라도 나는 도착과 동시에 업무를 시작해야 하며, 귀국 후에 딱히 휴가를 더 주는 경우도 많지 않다. 시차가 1시간이건 8시간이건, 적응하고 회복하는 것은 내 몫이니까.

사실, 시차 적응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출장은 5-10일 사이에 마무리되기에 현지 시차에 적응하기 전에 귀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잦은 비행과 이동에서 오는 체력 저하, 불규칙한 생활에서 비롯된 건강 악화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러한 해외 출장이 단순 프로젝트 Audit이나 거래처 관리 목적이 아닌 각종 이슈에서 비롯된 경우 이러한 피로도는 급증하게 된다.

준비할 것도 많고, 현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복귀해서 보고해야 할 것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젝트 규모가 클수록 엮인 회사가 많고, 이슈가 커질수록 엮이는 곳이 많아지기에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이슈가 확장될수록 그 스트레스도 급증한다.


들뜬 마음으로 출발한 나의 첫 해외 출장은 대형 프로젝트에 발생한 작은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출장지에서 해결한 줄 알았던 작은 문제는 내가 출장을 다녀온 이후 구르고 구르는 스노볼이 되어, 곧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습이 불가능한 이슈로 성장해 버렸다.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한 이슈는 수없이 많은 부수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이슈가 장기화될수록 엮이는 업체들이 점점 늘어 만났다.


중국 출장을 다녀오기 무섭게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오고, 사무실에 며칠 출근하지도 못한 채 다시 지방으로 출장을 떠난다.

지방 출장에서 복귀하면 다시 중국 출장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출장을 다녀온 짐을 풀기가 무섭게 다시 짐을 챙기는 날들이 계속되어 갈수록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간다.

어느 날인가부터 더 이상 출장 캐리어를 창고에 넣지 않게 되고, 더 빨리 짐을 싸기 위해 출장 패키지를 준비해 버렸다.


그렇게 나는 그 해에만 20번 가까이 해외 출장을 다니게 되었다.




누군가 첫 직장의 중요성에 대하여 역설한 적이 있다.

몇 번을 이직하더라도 첫 직장에서의 경험과 배움에 따라 그 진로가 결정되게 된다고.


100%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 직장생활에 있어서만큼은 유사한 방향으로 발현되었다.

첫 직장 이후 잠깐의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그다음 회사에서도 내 출장 러시는 계속되었으니까.

대형 프로젝트에 수반된 이슈는 아니었지만, 작년만 하더라도 난 10개국에서 반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내 곁에서 나를 수행하며 함께 다녔던 내 직원들 또한, 처음 빛나고 설레던 눈동자가 마치 나의 그것들처럼 서서히 희미해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길고 길었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며, 마침내 나는 이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작년 말, 나는 무역인으로써 한 챕터 넘어가는 결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다른 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하자.


오늘 글은, 내가 봐도 참 두서없이 흘러갔다.

아마, 그동안 뱉지 못하고 쌓인 가슴속 응어리를 뱉어내고 싶었을 뿐인가.

이 글에는 그 어떤 교훈도 없다.

아니, 이 시리즈 자체에 그 어떤 교훈도 넣을 생각이 없다.


이 글들은, 그저 고통스러웠고, 고통스러웠으며, 앞으로 내가 이 일을 완전히 벗어던지기까지 받을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뱉어내고자 적고 있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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