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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May 25. 2024

끝내 준비하지 못한 나의 결혼식

무역인 남편을 갖는다는 것은.

나는 30살 여름에 결혼을 했다.

요즘 남자들은 30 중반에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니 나는 결혼을 조금 일찍 한 편이겠다.

아내와 나이차가 조금 나는 편이니까, 내 아내는 정말 일찍 결혼한 것이고.


생각해 보면, 아는 게 없으니 겁도 없었고, 겁도 없으니 빨리 결혼도 가능했던 것 같다.

나도 어렸고, 내 아내는 더 어렸으니, 그 시기가 지나버렸다면 그런 용기도 없었을 것 같고.


왜인지, 당시엔 빨리 결혼을 하고 삶이 안정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내와는 1년 남짓 사귀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서로 의기투합해서 5월에 처음 양가 인사를 드린 뒤, 6월에 상견례를 했고, 곧바로 8월 말에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당시 나는 사회 초년생으로 무역회사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었다.

그때 다니던 회사는 국가 프로젝트들에 참여하여 해외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 납품하던 회사였는데, 창사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회사가 바쁘다 보니 신입까지도 예외 없이 대규모 프로젝트가 몇 개씩 주어진 상황이었고, 나 또한 국제 프로젝트 몇 개를 맡아 매 달 꼬박꼬박 해외 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그때나 지금이나 내 주력 시장은 유럽과 중국인데, 유럽은 7-8월 휴가 기간으로, 중국은 별다른 이슈가 없이 소강상태에 빠져 크게 바쁘지 않았다. 

출장이라고 해봐야 보통 중국으로 주중 4-5일 정도 다녀오는 출장이 대부분이었고, 일정도, 업무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렇기에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 조금은 짧았지만,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그 판단은 딱히 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했다.

식장을 예약하기가 무섭게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식장 예약과 동시에 예비 신랑이 된 나는 급하게 중국 출장을 떠나버렸다.


일주일이 조금 넘는 출장이었다.

당시에는 웨딩 플래너를 끼는 것이 흔하지 않았고, 젊었던 우리도 우리 스스로 결혼식을 꾸려나가고 싶었기에 둘이 함께 모든 것들을 결정하고 만들어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내 아내는 20대 초반으로 유학 준비를 위해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했었고, 나는 직장 생활을 하는 중이었던 만큼, 아내 주도하에 결혼식을 준비할 예정이었기에 내가 출장을 떠나더라도 결혼식 준비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 주 주말은 아내와 함께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결정을 위해 업체들에 함께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이었고, 이미 업체들과 미팅 예약을 끝냈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결국 그 모든 미팅은 아내 혼자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혼식 준비의 첫 단추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귀국과 동시에 아내가 미리 예약해 둔 웨딩 촬영을 끝마치고, 내 출장 기간 동안 아내가 예약한 내용들을 빠르게 살펴봤다. 아내도, 나도 주변에 결혼한 지인이 없었고, 그렇기에 주변 도움 없이 우리끼리, 아니, 대부분 아내 혼자 전전 긍긍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없이 혼자 이 많은 것들을 알아본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컸고, 남은 기간 함께 열심히 준비해 보기로 약속했다.


사실, 결혼식을 준비해 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결혼식 준비가 바쁘긴 바쁘지만, 식장을 정하고, 특별히 유별난 이벤트들 없이 평범한 결혼식 절차를 따라 준비한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결혼식이 예정된 8월은 결혼 비수기였기에, 이렇게 급하게 준비하더라도 예약 자리가 없거나 일정이 밀리지는 않아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한 달 반 정도 되는 기간이 어찌 보면 굉장히 짧아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우리의 결혼식을 준비하기엔 크게 모자라지 않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주, 나는 다시 프랑스로 떠났다.




이번에도 급작스럽게 결정된 출장이었다.

출장에서 복귀한 것이 금요일.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출장 "명령"이 떨어졌고, 그다음 날 프랑스행 티켓을 예매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내 아내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회사가 가라는데, 가야지.


이번 출장도 열흘 남짓이었다.

열흘 남짓되는 기간 동안, 아내는 혼자 예약한 식장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식장 상세 계약을 확정했으며, 청첩장도 완성시켰다.

다행히 미리 끝내 놓은 스튜디오와 드레스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업체들이 전문적으로 일을 마무리해 줬기에 큰 문제없이 결혼식은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일을 마치고 출장에서 돌아오니 어느덧 8월이 되어버렸다.

8월 초는 회사 전체가 여름휴가를 떠나는 기간이었고, 다행히 이 기간 동안 그동안 밀린 결혼준비를 "아주 조금"은 할 수 있었다.


애당초, 이 시점에 이미 아내가 대부분의 결혼식 준비를 끝내 놓은 상황이었고, 업체들도 휴가를 떠난 곳이 많아 내가 손댈 것들이 많지도 않았다.

이제 고작 한 달 남짓 남은 시간이었지만, 주변에 결혼을 한다는 사실 자체는 미리 말해두기도 했고, 회사에서 여러 배려로 금요일은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게 조치해 준 상황이라 남은 기간을 활용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나눠주고, 결혼식을 준비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여름휴가가 끝남과 동시에 나는 체코로 출장을 떠난다.




예상하지 못한 출장이었고, 티켓은 사실상 편도로 예약하고 출발했다.

출장 결제 과정이 얼마나 급하게 정신없이 진행됐었는지는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유럽 방면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 팀장과 함께 납품처 PM들과 회의를 하는 상황이었다.

유럽 방면 시차 때문에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딱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퇴근 시간을 지나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진행 중이었는데, 그때 납품처 관리자가 회의실에 난입했다.


"퇴근시간 지나서까지 회의하시는데 답은 나오셨나요?"

"아직.."

"그럼 뭐 하고 계세요? 내일이라도 가셔서 해결하셔야죠."

"네?"

"유럽, 다녀오시라고요."


놀랍게도 각색이 들어가지 않은 대화이다.

그렇게 정확히 오후 6시 40분에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예약했고, 돌아올 기약 없이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준비할 결혼식에 잔뜩 들떠있던 내 아내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기야, 나 오늘 늦을 거 같은데.."

"아 그래? 저녁 혼자 먹어야겠네. 오빠 그래도 오면 같이 청첩장도 준비하고 몇 가지 살펴봐줄 수 있지?"

"아.. 그거 말인데.. 미안한데 여보가 좀 맡아 줄 수 있어?

"어? 무슨 말이야 그게?"

"그.. 나 해외 출장 가게 됐거든."

"출장? 또?! 언제 가는데?"

"내일."

"뭐? 이번엔 언제 오는데 그럼?"

"몰ㄹ..."


돌아왔을 때, 아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었고, 나는 몰래 숨죽여 우는 아내를 두고 아침 일찍 유럽으로 향했다.


결국 대부분의 청첩장은 우편이나 모바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예비 신부 혼자서 남편 지인들까지 찾아다니며 청첩장을 나눠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출장은 2주 남짓한 기간에 정리가 되었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결혼식은 1주일 뒤로 다가와버렸다.




사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독자들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다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그렇다.

나는 결혼식 전 주 금요일(D-8) 저녁에 체코에서 귀국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D-5)에 중국으로 출발했다.


나의 착한 아내도 이번만큼은 참지 않았다.

그래봐야 한숨 길게 한 번 내쉬고

"하..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한 마디가 고작이었지만.

아내의 원망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한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이 출장도 회사의 급한 명령으로 떠난 출장이었다.

회사 모두가 내 결혼식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중국 지사에서도 이번 일 만큼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팀장(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역시 이 문제로 중국 지사와 한참 논의했다.

그러나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결혼식 미뤄서라도 보내야죠!"


결국, 나는 결혼식 시작 40시간 전에서야 마침내 한국을 돌아올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나와 내 아내 주변 친구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결혼식 준비에 있어 조언을 얻고자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반면, 아내는 전문가와 같은 여러 조언을 나눠주곤 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난 단 한 번도 결혼식 준비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아내는 혼자 그 모든 걸 했으니까.


아직도 결혼사진을 볼 때면 그날들이 한 번씩 마음을 스치곤 한다.

마음 여리고 착한 아내가 내게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하고 삭히며 혼자 준비한 결혼이, 아내에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내 착한 아내도 그게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알았다면 우리 결혼은 다시 한번 고민해 봤을까?


오늘 이 글은 그 모든 순간을 겪고도 날 떠나지 않은 내 아내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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