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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May 18. 2024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산다는 것

무역인의 시간은 남들과 다르게 흐른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무역인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


처음 무역에 뛰어들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내 담당 시장은 줄곧 유럽이었다.

내가 퇴근할 시간이면 유럽의 거래처들은 출근을 한다.

여름이면 서머타임으로 한 시간 더 근무 시간이 겹치지만, 서머타임이 끝난 이후 유럽 본토는 고작해야 1-2시간, 영국은 1시간 겹치거나 겹치는 시간이 없다.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이른 아침 쌓인 연락을 확인하는 것도 익숙하다.

아니, 언젠가 익숙해질 줄 알았다.

몇 년이나 이 일을 계속했음에도, 이런 삶 속에서는 내 몸도 마음도 조금씩 바래가는 것을 느낀다.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그 어떤 시간도 난 편히 쉴 수 없음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잠을 자는 시간이 더 이상 잠 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게 되고, 쉬는 날이 쉬는 날이 아니게 된다.

그나마 전 세계 모두가 쉬는 주말은 상황이 낫지만, 국가마다 다른 공휴일엔 그 어떤 날도 편히 쉬지 못한다.

드문드문 날아오는 연락에 파묻혀 조금씩 질식해 가는 날들의 연속이다.


책임감과 강박감의 경계는 종이 한 장과 같아서 때로는 젖은 종이 사이로 강박과 책임이 서로를 넘나들곤 한다.

그렇게 강박이 책임이 되고 책임이 강박이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늦은 밤 노트북을 켠다.

쌓여있는 메일을 확인하고, 하나하나 답장을 남긴다.

메일이 쌓여있지 않은 날엔, 놓친 업무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간다.

그렇게 또 나를 갉아먹고, 갉아먹히며 길고 긴 밤을 넘겨가는 것이다.






해외 출장지에 도착하는 순간 이런 지옥 같은 상황은 더욱 악화되곤 한다.

주 거래처를 방문하는 출장이라면 결국 시차를 갖는 곳은 본사가 될 테이니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거래처에서 본사로 바뀌는 것뿐이니까.

다만, 출장지의 바쁜 일정이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 뿐이다.

하지만 주거래처도, 본사도 아닌 제3지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제 날 괴롭히는 시차가 두 곳이 되니, 까딱 잘못하면 해가 지지 않는 근무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 출장지에서의 시차는 단순하게 업무의 가중으로만 발현되지는 않는다.

시차가 주는 진정한 고통은 가족, 지인과의 단절에서 시작한다.


혹자는 멀리 떨어진 유럽 대륙의 시차가 가장 고통스럽지 않냐고 묻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생활 따위는 없고, 이미 팔릴대로 팔린 개인정보로 인해 온갖 스팸 전화가 날아오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유럽 출장은 고통의 연속이 맞긴 하다.

유럽과 한국의 시차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7-9시간이 벌어지는데, 이 말인즉슨, 한국에서 한창 근무시간일 때, 나는 새벽 2,3시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유럽 출장지에서 내가 한참 자고 있는 시간이 한국에선 온갖 업무 연락과 함께 온갖 스팸전화가 날아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처음 프랑스 출장을 갔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보험 영업 전화였던 것 같은데, 현지 기준 새벽 2시경에 전화를 받았다.

자다 깨서 여기 지금 새벽 2시라 나중에 연락하라고 간신히 대답했는데, 그때 그 상담원의 대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여기 지금 오전 10시인데요?"


지금이야 직급도 올랐고, 업무를 어느 정도 내가 조절해서 운영할 수 있게 되어 많이 상황이 나아졌지만, 직급이 낮거나 실무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면 전화기를 꺼 놓을 수도 없으니 시차가 많이 나는 곳에서 출장은 매우 피곤할 수밖에.


하지만 유럽 출장에서 고독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일단 눈을 뜨면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연락을 받을 시간이니까.

중간중간 가족과 연락을 할 수도 있고, 한국 시간으로 저녁시간이 넘어가는 오후 시간부터는 업무에 집중하기도 좋다.


사실, 내가 경험한 최악의 시차는 두바이였다.

두바이와 한국의 시차는 5시간이다. 두바이가 5시간이 느리다.

예나 지금이나 내 기상시간은 오전 6시 정도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인 즉, 내가 일어나면 한국은 11시라는 뜻이다.
그때 출장은 박람회 출장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꽤나 바쁘게 움직여야 했었던 출장이었다.

그리고 당시 내 딸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두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해당 출장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내 딸과 통화할 수 없었다.






처음 일을 배울 때 팀에 있던 과장 한 명으로부터 종종 듣던 말이 있었다.

"너 그렇게 안 해도 회사 망하는 거 아니야"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고작 반나절 연락 늦게 받았다고 하여 회사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물며 무역의 경우 반나절은커녕 별다른 이유도 없이 며칠씩 지연되는 일이 허다하니까.

내가 빨리 움직인다고 상대방이 같이 빨리 대응해 준다는 보장이 없고, 나와 상대방 모두가 빨리 움직인다고 일이 내 뜻대로 잘 흘러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 그 고작 반나절로 인해 때로는 계약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때로는 협상 우위를 뺏기기도 하며, 또 어떤 때에는 회사에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 무역이기도 하다.


물론, 계약 기회를 놓쳤다고 회사가 망하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협상 우위를 뺏겼다 한들 당연히 회사가 망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회사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그 모든 피해가 회사를 무너뜨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다.


사실, 필드에서 일하다 보면 무역을 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시간대 상관없이 급한 연락은 언제나 회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솔직히 말하면, 전자의 경우를 난 "현명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자기 할 일만 마무리하고, 쉬어야 할 때 잘 쉬고.

연휴나 휴가기간엔 미리 업체들에 공지를 띄우거나 자동응답을 남기는 경우도 많다.

프로젝트에 다소 영향이 있을지언정 어쨌건 하루 이틀 조치가 늦는다고 누구 말마따나 회사가 망하진 않으니까.

실무자급에서 흔히 보이는 유형이다.


다른 유형, 즉 급한 연락은 언제가 되었건 회신하는 사람은 보통 기업 대표나 관리자급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 사람들은 본인 휴가기간을 딱히 공지하지도 않는다.

공지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연락은 다 확인할 것이니.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구조는 이해가 쉽다. 관리자급 이상이 직접 쥐고 있는 업무는 그 중요도가 높고 어렵거나, 긴급하고 심각한 이슈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회사의 손익이 본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연락을 받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반대로 실무자 입장에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어차피 중소기업에서는 승진보다 이직이 빠르고, 회사의 손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기에 보다 유연하게 업무에 대응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긴다.

저 열심히 사는 관리자들. 저 사람들은 관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일했기에 관리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사실, 성공하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했던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특정 목표를 갖고 이렇게 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 상황이 종료된 이후 주어지는 보상은 너무나도 작고,

그 상황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고통의 시간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그렇기에 어떤 보상을 바라보고 버틴다는 것은 극한의 초인적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그러니 결국 그들은 단지, 해야 될 일이 눈앞에 있기에 그 일을 한다고 말한다.







무역인으로 살아온 지난 수년을 돌이켜보면 난 참 바빴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은 시간에 되돌아오기 일쑤였으니, 해가 없을 때 출근해서 해가 없어야 집에 온다는 말이 맞았을 것이다.

그랬으니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승진했고, 조금 더 멀리 가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내 아내는 신혼 전부터 남편 없는 삶을 각오해야 했다.

결혼을 준비할 때에도, 임신한 이후에도, 아이가 나온 다음에도 난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없었다.

때로는 사무실에서, 어떤 날은 다른 나라에서 가족이 아닌 업무와 함께 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와 달리 아빠를 선택하지 못한다.

태어나보니 바쁜 아빠를 만났을 뿐.

평일에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고, 어떤 때에는 집에 며칠씩 들어오지도 못하는 아빠는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처음 뒤집던 날도

처음 엄마를 부르던 날도,

처음 걸음을 떼던 날도,

그 어떤 날도 아빠는 옆에 없을 뿐이다.


그렇게 내 모든 길은 아내와 딸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


언젠가 이 길도 끝은 있을 텐데.

그 끝에 도달했을 때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일지.

적어도 내 가족들 앞에서 부끄럽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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