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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May 11. 2024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무역을 시작하게 된 이유들

지금이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불과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난 영어 한마디 하지 못했다.


대학 입학 당시 내 토익 점수는 성인 남성 발사이즈를 간신히 넘긴 점수였고, 이 점수는 같은 학과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막장스러운 점수였다. 자랑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에, 내 영어 성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채 어느덧 대학 졸업이 가까이 와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난 내가 평생 수학 선생을 할 줄 알았다.

딱히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어 내 평화로운 삶을 무너뜨리고 싶지도 않았고, 적당한 월급에 적당한 삶을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생각이 바뀐 건 24살 여름이었다.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일하던 학원에서 전 직원 이탈리아 여행을 추진했었다.

학원에서 비용을 절반 이상 보조하는 여행이었는데, 사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딱히 해외에 관심도 없었던 내게 이탈리아 여행은 의미 없는 사치로 보였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사장이 가자면 막내 직원은 끌려가는 거지 뭐.

그렇게 나는 24살에 내 첫 유럽 여행을  떠났다.


아마,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 무역이란 씨앗이 심어진 것은 이때였던 것 같다.


처음 나가본 세상은 너무나 넓었다.

너무 넓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봤던 화려한 온갖 미술품들부터 영화에서나 구경했던 웅장한 건축물들까지.

우물 안 개구리는커녕, 고작 해봐야 1자 어항 속을 헤엄치던 금붕어 수준의 나에게 그것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이미 10년도 지난 그때의 이야기를 10년간 나는 수도 없이 반복해서 꺼냈다.

친구들과 만난 술자리에서, 때로는 누군가와 유럽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떨 때엔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닳고 닳은 이야기는 매번 꺼낼 때마다 조금씩 마모되어 가고, 시간이 지나며 때때로 기억의 작은 파편들이 떨어져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조금씩 줄어들기도, 희미해져 가던 기억이, 이제는 감정만 남아있게 되도록.


몇 년간 몇 번의 실패를 더 겪은 뒤에서야 난 내 인생에 무역이라는 단어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이 내 마음속에 무역의 씨앗을 심긴 했겠지만, 그 씨앗이 싹트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역 일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곤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평범해서 한 순간에 지워지지만, 때때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오랜 시간 향기가 되어 맴도는 이야기들도 있다.



전에 잠깐 같이 일했던 필리핀 거래처 사장 이야기이다.

당시 그 사장은 마닐라 중심지 부촌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슴을 내밀고 힘차게 걷는 걸음걸이가 인상적인 중년이었다.

보내주는 픽업 차량을 타고 사장 집에 몇 번인가 초대되어 갈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보스라 부르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다.

같이 저녁을 먹다 보면 어쩌다 문득 술기운에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가난했던 이 사람은 사실 무역이 아니라 정부 입찰 사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뒤 당시 조금 더 저렴한 제품을 취급하기 위해 중국에 방문했고 그렇게 무역상의 길로 들어왔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굴곡이 있었겠지만, 그 사장은 무역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거래처를 말 그대로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와 딱히 관계가 없는 정재계 행사에 나를 데려가곤 했다.

그 사장은 나 같은 열정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 무역을 통해 세상을 더 깊게 연결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덕담으로 포장된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곤 하는 사람이었다. 

난 직원이 아니라 거래처 책임자였는데 말이지.

그 사람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는데

"난 내가 배고파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무역은 다른 사람들 위해서 하는 거야. 우리처럼 무역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수입하고 수출하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지 잊으면 안 돼"



내겐 그 사장과 같은 큰 포부는 없었고, 지금도 딱히 큰 비전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눈앞에 있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그럼 나는 대체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분명, 처음 시작할 때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지난 내 경력은 누가 봐도 의문이 넘칠만하긴 하다.

무역일을 그토록 오래 하면서 공인된 어학 성적은 어느 하나 찾아볼 수 없고, 대학 학사는 2개나 들고 있는데, 둘 다 공학사이다.

경력 중 가장 긴 시간을 학원 강사로 보냈고, 심지어 영어 강사도 아닌 수학 강사였다.

최근 이력 사항엔 하위 부서로 연구팀을 관리하며 제품 개발 이력까지 붙어 버렸다.

직전 회사에서는 각종 인증획득과 법적 리스크 배제하는 일을 공들여했던 것 같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나도 내가 무역을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회사 프로젝트 폭발한 곳을 수습하러 다니는 폭발물 제거반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렇게 현실에 몸을 맡기고 살다 보니 꿈은커녕 내가 누구였는지 조차도 희미해져 간다.


분명, 뭐가 되었건 이러려고 시작한 무역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내겐 거창한 포부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계획했던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다시 모든 것들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던 그 날들.
좌절과 실패의 맛이 익숙해져 가던 언제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공정한 계약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

내 능력이 형편없든 훌륭하든 내 능력과 성과에 따라 평가받고 싶다는 그런 생각.

한편으로는, 다시 전에 있던 좁디좁은 어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저, 그뿐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에 나는, 내가 저무는 그날까지 이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

그러니 조금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 만나며 그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라는.


하지만 이런 욕심들을 받쳐줄 만한 기술도, 배경도 없이 30대 가까운 나이가 된 내가 형편 좋게 모든 것들을 만족시키는 직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수 없이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몇 번의 면접을 거친 끝에, 철강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한 회사의 해외 프로젝트 매니저로 처음 무역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기대했던 일은 아니었다. 난 화장품 같은 소비재 회사의 해외영업직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 붙은 회사는 초봉도 다른 곳보다 많이 줬고, 일도 전문적이었다. 솔직히, 붙여줬으니 다녔다고 하기에는 당시 아무것도 없던 내겐 너무나도 과분한 회사였다.

한동안 그 회사에서 해외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며 무역을 배웠다. 회사 체계는 훌륭했고,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일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 승진하는 내 모습을 꿈꾸기도 했다. 완벽하게 원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배움이 있다는 생각에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까지 일하곤 했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알 수 없는 갈증이 조금씩 커져만 갔다.


세계는 넓고 그 넓은 세상 곳곳을 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돌고 돌아서야 비로소 처음 꿈꿨던 소비재 수출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





소비재 수출 회사에 들어오고 몇 년, 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꿈꿨던 것 이상으로 해외를 돌고 돌았고, 생각보다 많은 나라들을 더 자주 방문했다.

어느 순간부터 넓은 세상이 좁게 느껴지고, 새로운 나라에 방문하는 것이 들뜨지 않게 될 때 즈음, 

그즈음 내 마음속에 있었던 꿈도 날 찾지 않게 된 날들 중 어느 날인가,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한 젊은 한인 사업가가 다시 한번 오래전 들었던 그 질문을 다시 내게 던졌다.


"부장님은 이 일 즐거우세요? 왜 하필 그 많은 일들 중 무역을 하셨나요?"


몇 년 동안은 이 질문을 들으면 참 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이유를 잊은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문득 그 젊은 사장 얼굴이 떠오른다.

젊다 하여도 나보다 더 오래 무역에 몸담았고,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사장이었는데.

그 사람의 대답을 들어 둘 걸 그랬다.

그랬다면 그 사람의 향기가 다시 한번 내 기억을 일깨워줄 수도 있었을 텐데.


조용하게 땅거미가 내린 이곳 영국 사무실에 앉아 그 질문을 혼자 되새겨본다.

나는 이 일을 왜 했더라?

너무 오래되어버린 이유라, 더는 기억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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