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과학적 접근, 장대익 교수의 <울트라 소셜
태초부터 지구상에 수많은 생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생물을 멸종시키고 만들어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된 동물은 인간뿐이었다. 인간들은 자신만의 사회를 건설하고, 다른 동물을 제압하며 무리 생활을 해왔다. 인간이 가진 이런 특징은 인간을 동물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어주었다.
이런 인간의 특성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인간이 가진 독특한 특성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인간들은 공정함을 중시하고, 서로 모이면 남을 무시하거나 속이기도 하며, 인간만의 문화 생활을 즐기고 다음 사회에 새로운 문화 유산을 넘겨주기도 한다.
이런 인간의 특성은 고대 수렵사회나 문명의 초반기에만 발현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과거의 인간이 가진 특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다만 다른 환경에서 다른 과학기술을 통해 표현할 뿐이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시대를 초월하여 전해지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울트라 소셜>은 서울대 장대익 교수가 인간의 사회성에 대해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분석한 책이다. <다윈의 식탁> <다윈의 서재> 등으로 이미 과학 교양서 부분에서 명성을 쌓은 저자의 책이기에 망설임 없이 읽게 되었고, 역시나 흡족한 책이었다. 글을 워낙 쉽게 써서 수학과 과학은 별로 좋아하진 않았던 나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문명이 인간의 사회성에 기반하였다고 보고, 이것이 동물과 많은 면에서 구분되는 인간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이런 사회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울트라 소셜>을 썼다.
'최근 들어 다수의 영장류학자는 인간의 독특성이 탁월한 지성의 사회적 측면에 있다고 주장한다. 타 개체의 마음을 잘 읽고 대규모의 협력을 이끌어 내며 타 개체로부터 끊임없이 배웠던 인간의 독특한 사회적 능력이 우리를 지구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즉,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만이 꽃피운 '문명'은 사회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사회성을 나는 '초사회성Ultra-sociality'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초사회성의 진면목을 보여 주려고 쓰였다.' - 11p.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에 비하여 사람의 표정과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고, 공감 능력도 발달했다. 유인원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인간이 훨씬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능력들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능력도 있기에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문명 속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의 시선을 신경쓰고, 이야기를 말하며 종교를 믿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능력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책에서 놀라웠던 부분은 침팬지가 인간보다 '합리적'이라는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침팬지가 IQ가 더 좋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인간의 공정성을 설명하는 예시로 활용된 것이 바로 최후통첩 게임이다. 이 게임은 2인을 통해 진행되는데, 한 명에게 돈의 배분 권한을 주고, 다른 한 명에게는 배분에 대한 수용 권한만 준다. 가령 A라는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A와 B 사이의 돈의 배분을 정할 결정권한을 준다. B라는 사람은 A가 정한 돈의 비율을 조정할 수는 없고, A가 정한 비율에 따라 돈을 받거나 아니면 A도 자신도 돈을 못 받게 만드는 권한만 있다.
이 경우에 B가 해야 하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정답은 1원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지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적게 돈을 배분해도 일단 안 받으면 손해니까 받는 것이 옳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실험을 시행하면 B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적게 배분받으면 아예 아무도 돈을 받지 못하도록 제안을 거부해 버린다. A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못해도 40%~50%의 금액을 배분한다. 상대가 어느 정도 이하의 숫자를 받게 되면 수용을 거부하고 판을 엎어버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침팬지들에게 비슷한 실험을 했을 경우에는 침팬지들은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배분이라도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택했다. 침팬지가 경제적으로 보면 더 합리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독특한 연구 결과다.
'이렇게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인간과 크게 달랐다. 인간은 제안자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그것을 거부하는 비율이 달랐으며 그 비율은 침팬지와 정반대였다. 인간의 경우 제안자가 8:2 조건을 선택했을 때 수용자의 거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최후통첩 게임으로 드러난 사실을 종합해 보면, 침팬지는 '합리적'인 반면,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인간은 공정성에 매우 민감하다.' - 54~55P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책에 따르면 인간은 공정성에 대한 관념이 침팬지보다 훨씬 강하다. 다른 존재가 어떤 대우를 받든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개별 행동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공정성 감각이 발달했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상대를 보면 도덕적 혐오감과 함께 배려심을 느낀다. 이를 통해 훨씬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불공정성을 타파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사회성이 문명 건설에 도움이 되는 한 예다.
물론 이런 인간의 특징은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특징 중에는 나쁜 것도 있다. 인간은 조직을 이루어 권위에 따르고 집단에 순응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이런 모습은 비합리적 권위에 따르고 동조하는 상황에서 단점이 크게 드러난다. 한 집단이 테러나 폭력적인 행위를 찬양하는 분위기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이를 좇고 찬양하게 된다.
'그렇다면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에 순응하는 행위는 왜 진화했을까?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를 무작정 따르는 행위는 자신의 포괄 적합도를 높일 수 있다. 대세에 순응하다 보면 떡고물도 많이 떨어지는 법이다. 생존과 번식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위에 복종하고 집단에 순응하면 그만큼 이득을 보는 사회를 거치면서 인류가 진화해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순응 행위도 인간의 진화된 사회적 본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살 테러는 이런 사회적 본능의 가장 어두운 발현이다.' -221P
이런 정도가 심해지면 속된말로 '완장질'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책에서는 윤흥길 씨의 소설 <완장> 내용이 인용되었는데, 권위에 의존하고 미쳐가는 인간의 모습 역시 사회성의 한 단면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예시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남을 따르는 모습도 인간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잘못하는데도 동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책에서 예로 드는 한 실험에서, 선의 길이가 몇cm인지 묻는 도중 누가 봐도 타당하지 않은 답을 하는 사람이 많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의 길이와 같은 간단한 문제에도 오답을 동조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인간은 이런 자신들의 사회성이 가진 단점을 인식하고 있고, 이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회적 수단도 만들어 내고 있다. 덕분에 역사 이래로 폭력은 점점 감소하고 있고, 공감력의 증진과 이성의 발현을 통해서 문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저자도 인간의 사회성 점수가 100점은 안 되어도 유일한 초사회적 종으로 진화할 정도는 되었다고 본다.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동물이다. 합리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비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옛 속담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고도 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인간들이 보이는 행동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사람 속'의 윤곽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