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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Oct 25. 2024

직업적 외모

사는 곳에서 찾은 노력 <인테리어 자재>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십 년 이상 일을 하다 보니 직업적 습관으로 외모까지 바뀌게 되었다. 내 직업적 외모는 게슴츠레한 눈이다.


수많은 인테리어 자재와 가구, 조명, 소품과의 합을 맞추려면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동선과 그들의 취향에 맞춘 소재, 콘셉트에 맞는 레이아웃 등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선택한 이 아이템이 공간에 잘 맞는지 조화와 균형을 찾는 것이다. 멀리서 전체를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만 공간이 크다 보니 축소된 도면에 2D로 배치를 하며 큰 그림을 그려 나간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체 밸런스를 그렇게 맞추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때 눈을 살짝 뜨고 흐릿한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보면 거슬리는 부분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그 부분에 대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조율한 공간은 스타일링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바로 벽 컬러 선정이다. 화이트 아이보리 계열 색을 가장 많이 선호하지만 화이트 계열의 색은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다. 색을 만들기 위해 백색안료를 사용하는데 원산지에 따라 투명한 정도 차이가 달라진다. 또한 조명온도에 따라 벽 컬러가 다르게 보일 수 있어. 백색안료에 유색안료를 섞기도 한다. 미세하게 다른 컬러를 분류하고 선정해야 할 때 눈 조리개를 최대한 작게 닫고 빛이 들어오는 양을 적게 하여 살 핀다. 그러면 주변이 어두워지고 또렷하게 보이며 비슷한 컬러들의 경계가 드러난다. 다시 눈을 가늘게 뜬 채 게슴츠레한 상태가 된다.


깨끗하고 환한 느낌의 형광등 주광색은 집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병원, 학교, 갤러리등에 쓰인다. 주거공간에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4000K 주백색을 주 조명으로 쓰고 포인트로 3000K 전구색을 사용한다. 그래서 오히려 벽 컬러는 오트밀이나 아이보리처럼 노란빛은 띈 색은 위험하다. 자칫 누렇게 바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눈을 더더욱 가늘게 뜨고 집중해야 하는 아이템이다. 벽 컬러까지 끝내고 나면 이미 눈은 거의 감긴 거라 보면 된다.


때문에 뭔가 집중하거나 깊이 생각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면 내 앞에 일이 블러처리된 듯 시선이 흐릿해진다. 생각은 점점 작아지며 멀리서 고민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힘도 생기니 눈에 힘이 빠진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관련 담당자들끼리 회식을 한 적이 있었다. 식당에서 메뉴를 시키고 서로 대화를 나누던 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각자 다른 관심사가 모두 달랐다는 것이다. 회계업무를 하는 이는 테이블 수와 직원 수를 확인하고 손익을 따졌고, 상품기획자는 메뉴의 구성과 가격의 적절성을 따졌다. 디자이너들은 식당 간판과 메뉴판 서체 폰트를 맞추거나 평가했고, 마케터들은 식당 SNS 이벤트에 참가하고 팔로우 수를 확인했다. 다양한 주제로 흥미로웠던 기억이다. 직업적 특성에 따라 관심 있게 바라보는 것이 모두 달랐다. 한 업종에 오래 종사하며 생긴 직업적 습관이었다.

내 직업적 습관으로 눈을 가늘게 뜨는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이든 만져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눈으로만 보세요’ 팻말이 잇는지 여부를 가장 먼저 살핀다. 가구 혹은 소품과 자재들을 만져보면 소재를 알 수 있다. 요즘에는 기술력이 좋아져 눈으로 소재를 구분하기 어렵다. 분명 천연 우드로 보였지만 만져보면 인테리어 필름 혹은 세라믹 일 때가 대부분이다. 천연소재라면 소재의 원산지는 어디고 수급이 가능한지, 사용하려면 단가는 얼마인지, 가공비는 얼마나 드는지 순차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템 소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탈리아 스톤 페어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천연 대리석은 주로 타일 형태의 바닥이나 식탁 상판등에 많이 쓰이는데, 페어에서 2미터가 넘는 크고 핑크색의 화려한 스톤이 전시되어 있었다. 돌이 저렇게 큰 스케일로 나올 수 없다 여기며 인쇄제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만져보니 돌의 결정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대리석 특유의 차가움이 전해졌다. 천연 대리석이었다.  

새로운 공간을 투어 할 때 의자, 테이블, 벽, 바닥 등을 만져 보는 게 일상이다.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면 그들이 입은 옷 소재도 자세히 살펴본다. 옷감의 페브릭도 테이블웨어나 소품으로 활용이 높기 때문이다.


전체를 보기 위해 게슴츠레 눈을 뜨는 습관과 디테일을 자세히 보기 위해 만지작 거리는 습관은 전혀 반대 행동으로 보이지만 업무를 위해 꼭 필요한 습관이었다. 마치 창과 방패처럼 서로 보완해 주는 습관이 있어  현장이라는 전장에서도 전혀 두려울 게 없었다. 차곡차곡 또 다른 습관을 쌓아 무적이 되는 상상을 해봤다. 외모도 많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과 두려움을 함께 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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