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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Dec 16. 2024

차가운데 포근해

공간에서 찾은 노력 <상상 속 의자>

공사장에서 자재로 만든 듯한 남은 각진 콘크리트 의자가 있다.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울 것 같아 서성이다 다리가 너무 아파 의자 끝에 살짝 걸터앉았다. 기대 없이 앉은 의자 끝은 푹신했다. 자신 있게 엉덩이를 깊숙이 넣어 앉았다. 딱딱한 콘크리트 의자인 줄 알았는데, 푹신한 라텍스 충전재에 스웨이드가 씌워진 부드러운 의자였다.



삶 자체가 하나의 건축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르 코르뷔지에>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쓴 글이다. 건축가는 고객의 의뢰를 받아 건축물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을 한다. 단순히 의뢰인의 필요에 맞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직업이다. 건축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모든 게 관계로 둘러 쌓여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관계에 대한 수많은 고민은 그곳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전해진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은 기계처럼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며 건축의 기능을 중시했는데 이는 실용적인 가구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흥미롭게도 건축가들은 의자 만드는 일에도 열정을 쏟았다. 의자는 공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개체로 건축적 철학을 닮은 건물의 축소 판이었다. 

르꼬르뷔지에는 ‘발라사보아’는 1층기둥을 제외한 모든 벽을 제거하고 개방된 형태로 설계하였다. 개방된 곳을 주차장 및 공용공간으로 사용하며 편의성을 늘이는 필로티 방식을 최초로 고안하였다. 그가 제작한 의자 또한 정육각형의 스틸 파이프 프레임 안에 푹신한 5개의 쿠션을 끼우는 방식으로 모듈화 된 실용성을 중시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에서 직선을 사용하여 수평 수직을 강조하며 자연과 공간 간의 조화를 중시했다.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꼽히는 ‘폴링워터’와 절제미가 돋보이는 ‘하이백 사이드 체어는' 그의 철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축가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의자들 또한 그들의 디자인적 철학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유머러스 한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야욘'은 장난스러운 동물 모양 가구나 비 정형적인 오브제등은 유쾌하고 장난스럽다. 하지만 그가 제작한 의자를 보면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절제된 화이트 컬러에 다소 차분하고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팔을 앞으로 벌려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는 듯한 이 의자를 보는 순간 두 팔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앉지 않았지만 안긴 느낌을 받았다.
그때 알았다. 하이메야욘 의 장난스러운 모든 작품들은 감각적인 즐거움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불러일으키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삶 자체가 하나의 건축이라면 우린 모두 삶의 건축가인 셈이다. 건축가가 돼서 내가 생각하는 삶을 의자로 제작해 봤다. 상상 속에서 만난 내 의자는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푹신했다. 신중하게 접근하되 이게 맞다는 확신이 들 때는 깊이 빠져드는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과 직접 경험하지 앉으면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을 상상 속 내 의자에 앉아 새겨 본다. 의자이름으로 뭐라고 하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나가 딱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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