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찾은 노력 <테이블 조명>
학창시절 권력은 인기,
노년시절 권력은 건강이다.
생애주기별로 권력의 중심이 바뀌듯 사회에서도 권력의 이동이 꾸준히 일어난다. 사회 경제학자 엘빈토플러의 저서 ‘권력이동’에서 말하길 권력은 힘, 돈, 정보순으로 이동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물리적이나 금전적인 자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권력이 아닌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빠르게 결정하고, 시장이나 사회의 흐름을 예측해 주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권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영어로는 Power라고 쓰인다. 이 시대가 가지는 힘은 사회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는 사고이다.
스탠드 조명이 기우뚱하게 서있다. 바로 세워 놔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보니 조명아래 받침 부분에 가죽 공이 달려있었다. 스탠드 조명 받침으로 주로 쓰이는 금속소재나 무게감 있는 대리석이 아닌 가죽이라니, 그리고 심지어 가죽으로 만든 공이라니 예상치 못한 소재로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 조명은 이탈리아 산업디자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지노 사르파티'의 'Model 600 램프'이다. 그는 혁신적인 소재와 조명기술을 탐구하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Model 600 램프'는 1966년에 만들어진 제품으로 탄력 있는 바닥 부분 덕분에 램프를 원하는 방향으로 어디든 놓을 수 있는 테이블 조명이다. 마치 테이블 위 작은 놀이터라도 된 듯 조명을 이리저리 기울이고 옮기며 조명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조명에게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까? 50년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도 빈티지 제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탄력 있는 가죽 짜임으로 대표되는 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패션하우스와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플로스 Flos와 협업을 통해 '지노사르파티'의 모델 600을 재해석했다. 조명의 바닥을 지탱하는 가죽공 부분에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위빙 수공예 기법인 '인트레치아토'를 사용하였고, 또 다른 기법인 가죽 위에 주름이 섬세하게 물결치는 '인트레치오 풀라드'를 사용했다. 전구는 기존의 전구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LED 기술을 사용하며 두 회사의 핵심기술을 반영한 에디션을 출시하였다.
50년 전 제품을 꾸준히 찾는 소비자들과 그 제품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브랜드를 보며 결국 유행은 돌고 돈다는 흔한 공식이 떠 올랐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이 쏟아지는 신제품 과잉 시대에서 결국 살아남고 주목받는 건 무엇일까? 시대감성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제품들이었다. 패션업계에서는 이 전략이 꽤 익숙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꾸준히 출시된다. H&M은 명품브랜드 마르니, 발망, 겐조 등과 신제품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 명품 브랜드와 가성비 있는 합리적인 제품을 선 보일 뿐 아니라 희소성 있는 제품이 출시되기 때문에 패션 브랜드는 흥행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전혀 다른 포지션에 있는 브랜드들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혀 다른 분야의 브랜드들의 만남으로 이색 협업에 많은 이들이 열광한다. 식품브랜드와 중고플랫폼 (오뚝이 X당근마켓의 3분 알바), 커피와 편의점 (카멜커피 X GS편의점의 카멜콘돔), 보일러와 라면 (경동나비엔 X CU편의점의 보이려면)등이 전혀 다른 분야의 브랜드들과 협업을 이룬 사례이다. 이런 제품들은 이색적일 뿐 아니라 호기심을 높여 경험하고 인증하며 홍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젊고 도전적인 브랜드로 각인된다.
혁신적인 소재로 제작된 테이블 ‘모델 600’ 조명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직접 빛의 세기를 조절하고 상황에 맞게 제품을 기울이며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지금 시대가 주목하는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에 더 큰 매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소재를 연구하는 인테리어 조명사와
가죽 수공예 패션 브랜드와의 만남은
이색적인 것만큼이나 존재감이 묵직했다.
나는 나와 다른 이들을 만나면 덜컥 겁부터 난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되고, 그러다 보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올 때가 많다. 그래서 결국 나와 잘 맞는 이들과 만 만나고, 잘 맞지 않는 이들과는 자연스레 만남이 멀어졌다. 아니 사실 부자연스럽게 만남을 거절했다. 결국 나와 비슷한 이들만 남게 되었다. 그럼 또 같은 생각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게 될 것이다.
이색 협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 브랜드들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브랜드들의 충성도가 높아져 팬덤이 높아지는 이유는,
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는 이유는,
높은 기업의 가치는 곧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으로 작용한다.
다른 것 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두렵고 불편하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들의 만남은 폭발적인 매력과 힘을 생산한다. 당분간 새로운 것에 호기심 필터를 끼고 유연하게 가죽 공처럼 기우뚱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슬슬 힘을 좀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와 다른 것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