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받은 날
나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즉각적으로 받아내는 감각이 좋다. 감정 쿠션이 좋은 편이다. 날 선 말 한마디, 마뜩 찮은 표정 하나, 차가운 분위기 같은 감정의 파편들을 부드럽게 잘 받아내는 편이다. 쉽게 흥분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꽤 온화한 태도가 잘 유지된다. 그래서 다 괜찮아 보인다. 순간 충격은 부드럽게 지나간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다시 원래의 감정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회복 탄력성이 극도로 낮은 난 사실 괜찮지가 않다.
그날은 신제품 출시 전, 내부에서 제품 품평을 하는 자리였다. 몇 달간 준비한 디자인 브리핑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왔다. '수고했다'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 죽는 병에 걸린 상사는 매운 눈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뛰어난 집중력으로 내 브리핑의 잘못을 낱낱이 찾아내고 지적했다. 누군가를 위한 조언도 아닌 영양가 없는 흠집 내기로 시간이 한참 흘렀다. 지적하는 업무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처럼 목청 높여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며 포효했다. 결국엔 내가 한 말의 앞뒷말만 바꿔 자신의 아이디어 인양 으스대며 마무리했다.
'맞아요, 그게 제가 한 말이잖아요!'
라고 당당히 말하기는커녕 나는 그녀 앞에서 웃고 있었다. 어이없는 웃음이었는지, 빨리 상황을 무마시키고 싶은 웃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거들먹거리는 상사보다 반박하지 못한 나 자신이 더 못마땅했다. 업무시간 내내 속이 뒤틀어졌다. 퇴근 후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면 감정의 찌꺼기들이 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좀처럼 감정 부스러기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상태로 집에는 진짜 못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카페를 발견했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카페에 들어갔다. 이 카페는 주문방식이 좀 특별했다. 원하는 잔을 선택하면 그 잔에 주문한 음료를 담아주었다. 길고 가는 컵들 사이에 둥글둥글하게 생긴 투박한 머그잔이 눈에 띄었다. 감정처리를 세련되게 하지 못하는 내 모습 같아 보여 안쓰러운 마음에 그 컵을 선택했다. 얼마 뒤 갓 내린 커피 위에 크레마가 부드럽게 올라간 커피가 나왔다. 마치 베이지색 벨벳 패브릭으로 덮어놓은 듯한 크레마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부드럽고 얇게 올려진 크레마는 한쪽 끝에 작은 거품들이 모여있다가 하나씩 사라졌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난 뒤 두툼한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 그립감이 보통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평소 마시던 컵보다 두툼한 손잡이여서일까? 커피잔에 손을 따뜻하게 데워서일까? 어릴 적 두꺼운 아빠 검지 손을 다섯 손가락으로 감싼 것처럼 따뜻하고 든든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네 편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내 손을 꽉 잡아!"
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다.
커피를 마시는 첫 모금에 크레마가 입술에 살짝 닿으며 부드러운 질감을 주었다. 두 번째 모금에는 사라진 크레마 때문인지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씁쓸한 커피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잠깐 눈을 감고 입안에 남아있는 커피 향에 주목했다. 커피는 부드러움으로 시작해 씁쓸함을 지나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씁쓸한 순간 뒤에 구수한 순간이 올 것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또 다른 하루는 부드럽게 시작할 것이고 어쩌면 또 씁쓸함이 몰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고소하게 마무리가 될 것이라 믿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모든 감각에 집중하는 경험을 했다.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던 그날, 정말 신기하게 남아있던 감정 보푸라기들이 모두 제거됐다. 나와 보내는 시간들의 밀도를 높이니, 다른 것들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에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오로지 내 감각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던 그날, 우연히 만난 카페에서 누군가 따뜻하게 베이지색 담요를 건넸고, 괜찮다고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그 모든 따뜻한 배려와 위로를 건넨 사람은 결국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