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집을 나설 때 유독 신발끈을 꽉 조여 맨다. 발이 조여 오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상대를 만날 때 신발끈을 보면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지 상상하게 된다. 편안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왔는지, 잔뜩 긴장하고 초조하게 왔는지 말이다. 나는 상대의 표정이나 말투, 걸음걸이가 아닌 그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의 디테일에서 상대의 기분이나 마음의 상태 읽는다. 꽤 오래된 나만의 습관이다.
10살의 봄날이었다. 엄마가 딸기잼을 만들며 내게 질문했다. "동생이 또 생기면 어떨 것 같아? " 달큼한 잼 냄새에 취했는지 나는 "같이 인형놀이하고 좋지!" 라며 기분 좋게 답했다. 나는 3살 터울의 여동생에 이어 9살 차이의 남동생이 또 생겼다. 10살 가을이었다. 단풍이 짙게 물든 그날 엄마는 병원에서 남동생을 안고 집으로 왔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할머니가 오신 그날 난 현관에 서서 할머니 신발을 한참 쳐다봤다. 집에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다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오게 된 걸 알게 되었다. 아직 신기에는 좀 이른듯한 털 달린 검은 고무신 한 짝과 하얀 고무신 한 짝이 제멋대로 벗겨져 있었다. 교과서에서 보던 고무신이 그저 신기했었다. 그리고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아빠와 나를 데리고 수산물시장에 갔다. 발걸음이 바빴다. 할머니는 아빠 팔뚝만 한 유난히도 펄떡이는 가물치 한 마리를 그 냄비에 담아 번쩍 들고 오셨다. 아빠가 들겠다고 해도 손사래 치며 번쩍 들어 올리셨다. 평소에 자주 아프시다고 하시던 마른 할머니 몸에서 저런 힘이 어떻게 나는지 신기했다. 온 힘을 다해 요동치는 가물치에 물을 붓고 인정사정없이 펄펄 끓였다. 냄비의 움직임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나는 평소와 다른 이 상황의 연결고리를 찾느라 바빴다.
짝이 맞지 않는 신발, 펄떡이는 물고기, 천하장사 할머니, 꼬물거리는 남동생.
남편을 어린 나이에 잃은 할머니는 7남매 중의 둘째 아들인 아빠에게 많이 의지했다. 첫째 아들은 무뚝뚝하고 어려운 아들이었지만, 둘째 아들인 아빠는 상냥하고 따뜻한 아들이었다. 전라도 군산에 살던 할머니는 속상하고 위로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아빠에게 같이 살고 싶다 하셨다. 그럴수록 엄마와의 고부갈등은 깊어졌다.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남아선호사상이 깊었던 그 시절에 딸부잣집이라는 말은 할머니 입장에서는 오명이었다. 그리고 모든 날 선 말들이 엄마를 향했다. 아빠에게 새로운 아내를 얻으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아들도 못 낳는 못난 며느리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 엄마는 첫째인 내가 태어난 뒤 9년 만에 귀한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엄마는 무려 9년 동안이나 설움을 견디며 따낸 훈장 같다고 했다.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전화를 끊자마자 지금은 사라진 전리도 이리 기차역으로 달렸다. 첫차를 타고 빨리 손자를 보러 가야겠다는 일념하나로 바삐 올라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간 모질게 군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만큼이나 큰 가물치를 들고 등장하셨다. 푹 고운 뽀얀 가물치 국물을 마신 엄마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9년 만에 하루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고부갈등은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할머니의 고무신은 오래 기다려 왔던 간절함이었다. 색도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신었을 때 발에 감기는 촉감조차 달랐을 두 신을 신고 달렸던 그때의 할머니는 정말 짝짝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다시 신을 벗고 다른 신으로 갈아 신기가 어려웠을까? 아마 당신 발에 무엇이 신겨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토록 아들을 원했던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시대적인 분위기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결국 엄마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났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의 하루를 자주 이야기 했다. 짝짝이 고무신으로 할머니를 기억하고 이해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집착하게 된 '사물을 탐구하는 습관'은 할머니가 남겨준 특별한 선물 같은 것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필통 속 연필의 정리상태, 교복치마 주름의 빳빳한 정도, 머리핀이 꽂힌 방향등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상대의 마음이 보는 것 같았다. 사소한 물건들로 나는 세상을 알아갔다. 늘 '왜'에 집착했다. '왜 짝짝이인 거지?', '왜 이 부분은 곡선인 거야?', '왜 거친 소재인 걸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다 보면 상대의 일상과 감정에 다가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주 사용하는 담요는 내게 위안을 주었다. 담요의 귀퉁이를 만지작 거리면 마음의 편안해졌다. 담요는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숨고 싶을 때 뒤집어 쓰면 아늑한 나만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부끄러움이 많고 누군가 앞에 서기가 너무 두려웠던 그때의 나는 담요가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자주 들고 다니다 보니 담요 귀퉁이는 빳빳하게 굳어졌다. 그걸 만지며 나는 또 좀 더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자주 쓰는 물건에도 내 감정이 스며드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과장되지도, 왜곡되지도 않는 사물의 언어가 좋다. 디자인은 내게 정보이자 언어이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나만의 비밀코드이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코드를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면 나를 더 이해하고 상대를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달라지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