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무게
학군지에 살면서 주변 분위기에 잘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잘 키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주변에 비교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 때문에 주변 엄마들과 친해질 시간이 없었다. 엄마들과의 브런치 모임은 대부분 평일아이들 등교 후 시간들이었고, 주말 아이들 생일파티에 초대받으면 눈이 반쯤 감긴 채 참석했었다. 아이들 학원 및 육아정보를 듣고 오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되곤 했다.
초등학교 때 아이가 수영수업이 끝나면 학원에서 매번 전화가 왔다. "이번에 발차기힘이 좋아졌고, 오른쪽 팔을 쭉쭉 뻗어야 하는데 그걸 힘들어해서 더 연습을 시켰어요, 아이는 뭐라던 가요?", "아, 네- 제가 아직 아이를 못 만나서요"라고 대답하곤 끊었다. "자유형 끝냈어요 평형 들어갑니다." 이 정도로만 전달해 주셔도 될 거 같은데 꼼꼼하게 전화 주는 게 부담스러웠다. 다음번에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다 다짐하며 회의에 들어가려는 순간 영어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Z 발음이 잘 안 되니 집에서 연습을 해주시고, 숙제검사를 제대로 확인해 주세요."라는 전화였다.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일은 일대로 쌓이고 아이는 아이대로 관리가 안되고 아이 봐주는 이모님께 아이 육아와 학원숙제까지 부탁을 드리자니 이모님은 이모님대로 버거울게 뻔했다. 너무 속상해서 학원전화를 끊자마자 회사 회의실에서 냅따 소리 질렀다.
아니, 내가 못 가르치니까 학원을 보낸 거지!
왜 자꾸 나한테 숙제를 주는 거야!
그럴 거면 학원을 왜 보내!
영어,수영,방문 수학만 하는데도 관리가 잘 안됐다. 학원을 여러군데 보내는 엄마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황소수학(최상위권 학생을 대상으로 선행·심화 수학 전문 학원으로, 입학시험 '황소 고시'로도 유명하다)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 황소수학을 붙여주는 백업 학원에 등록을 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숨이 턱턱 막혔다. '학원은 어떻게 알아보고, 학원숙제는 어떻게 다 봐주지? 학원 선생님한테 혼나는 전화를 얼마나 더 받아야 하는 거야?' 솔직히 나는 그걸 해낼 자신이 없었다. 엄마가 안 봐줘도 알아서 척척 잘 해내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얼떨결에 이 동네 이단아가 됐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은 놀면서 큰 거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들과 엄마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수학 경시대회, 영어스피치 대회를 준비하는지 전혀 몰랐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판에 뛰어들 자신도 해낼 에너지도 없었다. 나는 비교적 숙제 없는 학원을 보내며, 평화로운 선택을 했다. 아이들은 자기주도학습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앞에서 내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으며 느슨한 방과 후 시간을 보냈다. 여름에는 매미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초등생활을 졸업했다. 그땐 몰랐다. 이 평화로운 시간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발랄한 초등생활을 마치고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이미 학군지에서 중학생들은 고등수학을 마스터하고 올라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수업만 따라가던 아이도 학교 시험을 보고 나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신준비기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친구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아이는 한참 뒤에 그 말뜻을 알았다. 평소 고등 수업을 하는 아이들이 현행 중등공부를 하는 게 너무 쉽게 느껴 저 즐겁다는 뜻이었음을, 나와 아들 둘 다 위기감은 느꼈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믿음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이때도 주변에 누가 얼마나 했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들을 새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믿음의 사인이었다. 그렇게 묵묵히 한 학기 예습정도로 버겁게 속도를 올렸다. 그 아이가 내년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 이제라도 체계적으로 접근할 요량으로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녔다. 설명회장에서 아이의 인적성 및 성취도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기에 참여했다. 학부모 검사 항목이 있어 같이 체크해 나갔다.
학생이 시험기간이 아닐 때, 학원수업 외에 다른 과목 공부는 어떻게 하나요?
(1) 인터넷 강의 (2) 교재 및 문제집 (3) 관련 도서
검사지를 체크하던 중 질문을 읽다가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곳에서 교통사고가 난 느낌이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황한 채 온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첫 교통사고가 생각났다.
한 줄 질문이 주는 충격은 꽤 컸다. 질문과 체크 항목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왜 항목에 (4) 하지 않음.이라는 항목은 없는 거지? 왜 3번까지만 있지? 인쇄가 안 된 건가? 기타라는 항목도 없는 게 말이 돼?' 체크할 항목이 없어 볼펜이 갈 길을 잃고 한참을 주춤거렸다. 고민하던 시간이 길었는지 그다음 문항을 체크하는 순간 잉크가 볼펜 끝에 모여있다가 무겁게 종이로 볼펜 똥이 떨어졌다. 내 마음도 덩달아 무겁게 떨어졌다. 지저분해진 검사지를 보며 생각했다. 휴지로 닦아내면 더 지저분해질 텐데, 그냥 두어야 할까? 검사지는 그대로 두었지만 내 무거워진 마음은 지저분하게 닦아냈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왜 이렇게 무거운 마음인지 헤집고 싶었었나 보다. 나는 내가 아이의 공부습관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 한건 아닐까 라는 자책을 하고있었다. 아이가 질문을 하면 그것에 관련된 확장 질문과 대답들 그리고 그 주제에 관해 더 깊이 있게 찾아볼 수 있는 호기심을 키워줄 시간적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오면 학원 숙제 점검하기에 바빴고, 질문을 성의 있게 대답을 못해준 것 같았다. 한없이 가라앉은 마음과 끝없이 부유하는 내 과오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질문과 답지에는 모두가 시험기간 외에도 학원 외 다른 과목들을 공부한다는 기본값이 깔려있었다. 순간 사고가 난 것처럼 덜컹했던 건 아이가 주요 과목 외에 다른 과목을 평상시에 공부한 적도 없고 나조차도 그걸 인지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 테스트 받으러 가자고 해도 불만 없이 따라오는 중3 아들이었다. 잘하고 싶은 열망이 큰 아이에게 내가 좀 더 열성적으로 케어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쓰린 후회도 몰려왔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이상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시련과 장애물이 있을 텐데 질문지 하나에 이렇게 속절없이 무거워지는 걸 보니 난 아직도 초보엄마인가 보다. 빠른 진도와 좋은 성적이 정답 일리 없고, 좋은 학교와 직장 또한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정답이 없어 답답하지만 오답이 없어 다행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다시 아이와 믿음의 눈빛을 교환해야겠다. 아이에게다른 과목은 왜 공부 안 하냐고 다그치지 않고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