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구멍이 언제 생기는 거야!"
며칠째 혼자 속앓이 중이다.
최근에 작은 몬스테라 화분 하나가 생겼다. 아직은 어린잎 네 개가 전부지만 쑥쑥 자라는 게 씩씩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몬스테라 특유의 잎사귀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싹도 나지 않았다. 밝은 간접광이 좋다고 해서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시스루커튼으로 햇볕을 가렸고 식물영양제도 줬다. 환기가 더 필요한가? 아니면 분갈이를 다시 해야 하나? 몬스테라 뿌리가 크다고 하던데 화분이 작은 걸까? 요리조리 살펴보고 원인을 찾고 또 찾았다.
몬스테라는 멕시코, 파나마의 열대우림에서 주로 사는 식물로 습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숲 속에서 자라다 보니 빛과 비를 아래쪽 잎으로 전달하기 위해 잎의 갈라짐과 구멍이 생겼다. 이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열대우림의 격렬한 환경에서 잎이 찢어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구멍이 많다. 일을 꼼꼼히 한다고 했는데 꼭 한두 개씩 빠트린다.
다행히도 회사에선 꼼꼼한 동료들 덕에 큰 실수 없이 업무가 가능했고, 집에서는 야무진 집안일 스킬을 가진 남편덕에 쾌적한 집에 살 수 있었다. 글 쓸 때는 어떤가! 셀 수 없이 나오는 오타와 (워드파일과 브런치 맞춤법 검사 몇 번을 해도 나오는 게 나도 너무 아이러니하다.) 문장의 대구가 잘 안 맞는다며 수정해 주는 글쓰기모임 멤버들이 있어 매번 브런치에 글도 올린다. 구멍이 많을지 언정 빵꾸나지 않게 도와주는 내 든든한 크루들이다.
나와 다르게 모든 일처리를 빈틈이 없이 완벽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내가 본 겉치레만 그럴 수 있지만 말이다. 특히 육아와 일 그리고 집안일까지 척척해내는 이들을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 가족 일정표와 아이들 로드맵까지 막힘없이 그리는 이들은 보면 그냥 유니콘이었다. 부러운 마음에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철저한 일처리 때문일까. 누구에게도 일을 맡기지 못했고, 다른 이들도 그들 일에 관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나는 내 구멍 덕에 도움이 많이 필요했고, 덕분에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이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내 구멍이 더 뚫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지금 막지 않으면 본인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본능적으로 내게 왔다. 어떤 이유에서건 난 그들 덕분에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만족감 혹은 효능감을 느꼈다면 더없이 좋겠다.
‘Monstera’는 라틴어로 ‘이상한’, ‘기묘한’을 뜻한다. 온전하게 채워진 잎이 아닌 갈라치기 된 잎이 이상하다 여기며 지어진 이름이다. 기묘하다고 여기던 이 식물은 독특한 형태 덕분에 이제는 감각적인 인테리어 속에서 자주 만나는 식물이 되었다. 몬스테라의 구멍과 갈라진 잎은 치열한 생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잎사귀 구멍은 무언가 부족해서 생긴 결핍이 아니라 선택적 비움이었다.
내 글의 오타를 잘 보지 못하는 나는 최근 돋보기안경까지 맞추고 화면에 바짝 붙어 글을 낱낱이 살피고 있다. 하지만 또 어딘가에서 분명 오타가 숨어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일을 꼼꼼히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잘하는지는 잘 파악하는 편이다. 때문에 회사에서도 팀원들이 어떤 일을 맡을때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그에 따라 업무 분배를 하면 꽤 업무 만족도가 높았다. 실무자로 있을 때 보다 관리자로 있을 때 업무추진력이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내가 부족한 걸 알기에 그걸 잘하는 이가 누구인지 항상 유심히 살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이 회사에서 생존이 가능하니까, 나 또한 구멍은 내 생존 전략이었다.
완벽함이란 빈틈없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조금은 여백을 남겨둔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때론 결핍을 부끄러워하지만, 어쩌면 그 모자람이야말로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어떤 영역에서 내가 좀 부족하다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겠구나!' 라며 마인드 컨트롤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아침 새로운 몬스테라 잎 하나가 삐쭉 고개를 내밀었다. 돌돌 말린 잎사귀에 과연 구멍이 나 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또 기다려야 한다. 돌돌 말린 저 잎 안에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 전략적인 녀석.